올해 들어 중소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과 딥테크 기업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벤처투자 시장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경기침체 국면 속에 높은 인지도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알짜 기업’과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3일 중소·벤처기업 전문 M&A 자문사 더블유엠디(WMD)에 따르면 올해 1~5월 동안 중소기업 대상 M&A 사례는 2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유가증권·코스닥시장 등 외부에 공표된 계약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거래금액 기준으로는 B2C 업종과 전통 제조업에 속한 기업들이 상위권을 대부분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스튜어드파트너스는 올해 초 헬스케어업체 풀리오의 경영권을 매수해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인수가격은 1000억 원대로 전해졌다. 풀리오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넘게 늘어난 1905억 원을 기록하는 등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가장 규모가 큰 거래는 화장품 업종에서 나왔다. 사모펀드 케이엘앤파트너스는 올해 5월 코스메틱 브랜드 마녀공장을 사들였다. 마녀공장 최대주주인 엘앤피코스메틱은 지분 51.87%를 케이뷰티홀딩스에 매각했다. 케이뷰티홀딩스는 케이엘앤파트너스가 마녀공장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전통 제조기업에 대한 매수 수요도 꾸준했다. WWG자산운용과 기앤파트너스는 800억 원을 투입해 산업용 접착제를 만드는 이노켐을 인수했다. 이노켐은 1984년 설립된 이닉스에서 분할된 회사로 자동차, 전기차, 건설 등 다양한 산업에 고기능성 접착제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이밖에 LX인베스트먼트는 폐배터리 관련 기업인 새빗켐을, 이브이첨단소재는 실계·시공·조달 분야의 SC엔지니어링을 인수했다.
반면 AI와 딥테크 분야에서는 유의미한 규모의 M&A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탄탄한 수익성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중소기업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일회계법인이 최근 발간한 ‘국내 중견·중소기업 M&A 시장 내 사모펀드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사모펀드가 참여한 M&A 거래 중 중견·중소기업 비중은 43%(거래금액 기준)에 달한다.
최근 들어 수익성과 인지도를 입증한 기업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다. 블랙스톤이 최근 국내 1세대 프리미엄 미용실 프랜차이즈 준오헤어의 기업가치를 약 8000억 원으로 평가하고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준오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약 3000억 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370억 원대다. 이례적으로 EBITDA 대비 20배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 받아 화제가 됐다.
국내 세탁 프랜차이즈 1위 업체인 크린토피아도 최근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JKL파트너스는 2021년 이범택 전 크린토피아 회장에게서 지분 100%를 약 1900억원에 인수했다. 4년이 지난 현재 시장에 알려진 매각가는 5000억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곽상빈 더블유엠디 부대표는 “최근 들어 투자 회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실적이 뚜렷하게 우상향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선호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국내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서도 알짜 중소기업 인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최종 매각 가격이 시장 전망치를 훨씬 상회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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