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자산운용사 1위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AI)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부동산 업계에서 AI 인프라 구축과 디지털 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공간 임대 뿐만 아니라 AI 시대에 필요한 통합 플랫폼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의 AI 오피스 전략은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월 준공한 성수동 ‘팩토리얼 성수’는 ‘탭&컨트롤룸’이라는 독자적인 빌딩 운영체제(OS)를 탑재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 받아 지난해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와 현대차의 로봇 기술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작동하며 스마트폰 앱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제어할 수 있다. 팩토리얼 성수는 준공 전 임대율 100%를 달성했다. 로봇이 택배와 커피를 배달하고, AI가 건물 환경을 자동 제어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지스는 2031년 서울역 일대에 들어설 ‘이오타 서울’에서 한층 진화된 ‘AI 오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팩토리얼 성수보다 20배 큰 규모의 이오타는 AI 시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인프라를 통합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AI 오피스에 주력하는 배경에는 오피스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전략리서치실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 시장은 극심한 양극화를 겪을 전망이다. AI, 반도체, 바이오 등 성장 산업의 인재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고의 업무 환경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CBD 초대형 오피스의 임대료는 소형 대비 2010년 1.9배에서 지난해 2.5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시장 변화에 대응해 이오타 서울은 AI가 개인별 업무 환경을 최적화하는 휴먼 센트릭 디자인과 고출력 전력을 갖춘 ‘AI 레디’, 실시간 탄소 데이터 관리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넷제로’ 등 7가지 핵심 기능을 구현할 방침이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AI 플랫폼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오피스와 데이터센터를 결합한 상품이다. 입주 기업이 사무 공간을 계약하면 빌딩 내 자체 데이터 인프라나 외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AI 시대 기업들의 최대 과제인 데이터 처리 인프라를 도심 한복판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AI 오피스와 함께 또 다른 축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I 시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전략이다. 국내 자산운용사 최초로 하남에 40MW 규모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성공적으로 개발했고, 현재 경기 고양, 안산과 부산, 울산 등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부산과 울산에서는 지역 산업과 연계한 AI 생태계를 구축한다. 부산에는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데이터센터를, 울산에는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제조 AI 오픈랩 등이 포함된 'AI 스마트 허브'를 조성한다.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지역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28.3%씩 성장해 약 85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구글, MS, AWS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100조 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국내에서도 SK(034730), 네이버(NAVER(035420)), 카카오(035720) 등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미 하남 데이터센터를 통해 부지 확보부터 개발, 운영, 매각까지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이지스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부동산 운용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며 “건물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AI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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