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스타트업에서 서비스기획자로 근무했던 30세 여성 김미연(가명) 씨는 올해 초 퇴사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사한 첫 직장이었던 만큼 애정이 남달랐던 곳이지만 반복되는 임금 체불과 대표이사의 습관성 막말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시로 월급이 밀리는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해 최근까지 정신과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김 씨는 “회사 측에서 ‘국가지원사업 지원금 수령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 등의 사유를 들길래 처음에는 믿고 견뎠다”면서 “총 다섯 번의 임금 체불을 겪고 나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때 청년 취업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벤처·스타트업을 떠나는 직장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소리 없는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어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퇴직금 미지급 등 임금 체불을 겪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정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9일 비즈니스 네트워크 플랫폼 리멤버앤컴퍼니와 함께 최근 1년간 스타트업을 퇴사한 2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1명은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타트업 퇴사자 4명 중 1명이 회사 경영난으로 인한 해고나 권고사직 등을 경험한 셈이다. 주요 연구기관이나 언론사에서 스타트업 퇴사자만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기사
업계에서는 투자 혹한기를 맞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한 것이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됐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전후 제2의 벤처 붐으로 불릴 정도로 정보기술(IT), 플랫폼 등의 분야에서 뭉칫돈이 몰리며 외형은 빠르게 키웠지만 수익 모델은 마련하지 못한 기업들이 늘어난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7월 발생한 티몬·위메프 정산금 미지급 사태 이후 발란·왓차·정육각 등 차세대 유니콘 후보군으로 주목받던 기업들이 줄줄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다. ▷관련 시리즈 4·5면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