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당시 체코 원자력발전소 신설 사업 수주를 위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공사가 웨스팅하우스(WEC)와 불공정한 내용이 다수 포함된 합의문을 체결한 것이 알려지자 여당을 중심으로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은 WEC가 차지한 일감(물품 및 용역 계약)도 결국 한국 기업들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고려하면 불리한 협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한전·한수원과 WEC 사이에 체결된 협정문에 대해 “이전부터 체코 수주 계약을 둘러싸고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며 “정부 차원의 진상 파악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협정문 체결 과정에서 전 정권의 부당한 압박이 없었는지 정부 차원에서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전 수주를 풀기 위해 불평등 계약을 맺은 것이 확인됐다”며 “주권을 팔아먹고 국부를 유출하는 매국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홍보 실적이 다급했던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기술 주권을 내팽개쳤다”며 “안덕근 전 산업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고 김동철 한전 사장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결산 점검을 위해 열린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에서도 협정문 원문을 공개하고 이 같은 협상을 추진한 경위를 밝히라는 여당의 요구가 쏟아졌다. 권향엽 민주당 의원은 “협상 체결 당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이었다”며 “이 사안 역시 내란 특검에서 다뤄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 역시 “협상문에 담긴 로열티가 다른 업종의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적정했는지 검토하는 절차가 있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협상을 다시 해야 할지 검토해야 한다”고 따졌다.
정부와 한수원은 겉으로 보기에 불공평해 보이는 내용이 담겼더라도 결국 원전 수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팀 코리아’에 이익이었다고 항변했다. WEC는 설계 기술만 있을 뿐 제조 기술이 없어 일감을 배당받고 특정 시장을 차지해도 결국 한국 기업에 장비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황 사장은 “WEC는 공급망이 없다”며 “결국 어느 정도 수주해도 공급망이 있는 쪽으로 와서 주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협상 과정에서 WEC의 요구가 지나쳤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저희가 감내해 내고도 이익을 남길 만했다”고 반박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역시 “WEC는 엔지니어링 기업이라 결국 제조 역량이 강한 우리 기업에 상당히 플러스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한수원이 기술 자립을 강조해온 탓에 불리한 협상을 체결하게 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도 “애초부터 한수원은 한국의 원전 기술이 100% 우리 기술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며 “상업적으로 들어가면 결국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협정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달라는 여당 의원들의 요구에는 김 사장과 황 사장, 김 장관 모두 “국회가 출구를 열어줘야 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정문에 양측의 비밀 유지 의무 조항이 담겼지만 정부와 국회 등이 공식 의결 절차를 거쳐 정보 공개를 요구할 경우 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