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해 미국산 장비 반입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미세공정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추가 투자와 판매 확대에도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거센 추격에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피해까지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이 입을 수밖에 없는 ‘이중 덫’에 걸린 모습이다.
31일 업계와 미국 연방관보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장비 반입 권한을 철회했다. 중국 다롄의 인텔 법인을 SK하이닉스가 인수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 반도체 기업만을 겨냥한 조치다.
미국 정부는 2022년 10월 미국 장비 회사가 중국 반도체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은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조건부로 규제를 풀어줬는데 해당 자격을 무효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내년 1월부터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미국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미국 장비 반입을 전면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 공장의 매출 전략과 설비투자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중국 공장은 구형 메모리 생산기지로 전락하며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패키징 공장, 다롄에서 인텔로부터 인수한 솔리다임의 낸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이기심에서 출발해 수출통제를 도구화한 것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공급망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만들었다”며 “중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해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우리 기업의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피해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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