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술 축제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를 앞두고 국내 문화예술계가 일찌감치 들썩이고 있다.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의 서울판 ‘프리즈 서울’과 한국 화랑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키아프’가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동시에 막을 올리며 세계 미술계를 주름 잡는 유력 인사들이 속속 서울에 도착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미술계의 슈퍼스타들이 줄줄이 대형 전시를 여는가 하면 새롭게 문을 여는 미술관과 갤러리도 줄을 잇는다. 서울 삼청동과 청담동 등 주요 화랑가도 야간 개장 채비를 마치고 관람객을 위한 파티를 준비하는 등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1일 미술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키아프리즈’ 기간 글로벌 스타 작가들의 대형 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열며 세계 미술 애호가의 눈길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이날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 리움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이불의 대규모 전시 ‘이불 : 1998년 이후’의 개막을 알렸다. 이불은 한국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정면 외벽에 조각 4점을 전시하고 한국 최초로 세계 최정상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와 전속 계약을 맺는 등 ‘최초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작가다. 한국 미술계의 흐름을 뒤집은 선구자로 세계 주요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는 작가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가 없었다. 리움과 홍콩 M+가 4년간 준비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요작 150여 점을 선보이는 국제 순회전으로 서울에서 첫 막을 올리게 됐다.
같은 날 ‘슈퍼플랫’ 미학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도 글로벌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다카시는 전통 일본화와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결합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가와이(귀여움)’ 문화를 고급 예술로 끌어올리며 경계를 무너뜨린 그의 작품은 경매 시장에서 수십 억원을 호가하는 등 컬렉터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날 서울에서 기자들과 만난 다카시는 “2023년 부산에서 회고전을 열기는 했지만 서울 개인전은 2013년 이후 12년 만”이라며 “상업 전시는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안 되니 대중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을 골라봤다”며 유쾌하게 말했다.
이밖에 서울에서는 영국의 ‘국민 작가’인 세계적인 철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신작 개인전이 글로벌 정상급 갤러리 두 곳의 협업으로 열리는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미국 현대미술 거장 마크 브래드포드와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 등도 놓치기 아쉽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갤러리들이 프리즈 등 아트페어뿐 아니라 미술계 스타들의 대규모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울의 아트파워가 강력해졌다는 의미”라며 “안정적인 컬렉터와 다양한 미술관이 공존하는 서울의 탄탄한 미술 인프라도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아프리즈’를 앞두고 미술관과 갤러리 등 새로운 전시 공간을 여는 곳도 많다. 독일 갤러리인 마이어 리거와 프랑스 갤러리 조슬린 울프가 합작해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여는 ‘마이어리거울프’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개관전 ‘지난밤 꾼 꿈’과 더불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설명했다. 두 갤러리는 2022년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공동 부스를 운영했고 3년 만인 올해 마침내 공동 갤러리까지 서울에 낸 것이다. 한국의 ‘단색화’ 흐름을 주도한 하종현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 ‘하종현아트센터’도 이날 파주 출판도시에서 개관했다. 이밖에 서울 강남에서 3개관 규모로 론칭하는 아셀아트컴퍼니 등 갤러리들이 서울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진 기회를 적극 활용해 출발을 알렸다.
‘키아프리즈’의 진짜 재미로 꼽히는 미술관·갤러리의 야간 개장 ‘네이버후드 나잇’도 이날 막을 올렸다. 1일 을지로를 시작으로 2일 한남, 3일 청남, 4일 삼청 네 구역에 자리한 갤러리들이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는다. 각 갤러리가 무료 식음료를 제공하는 등 저마다의 매력으로 서울의 가을 밤을 수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들뜬 분위기 속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미술 시장의 침체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트페어의 본질인 미술품 거래가 순조롭게 진행될지 자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트바젤 같은 대형 아트페어의 거래도 침체된 상황에서 서울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지 기대 반 의심 반의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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