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는 현대미술가 고 강서경(1977~2025) 교수의 유족으로부터 갤러리에 위탁된 유작 일체를 기증받았다고 2일 밝혔다. 고인이 작고하기 전 모교 이화여대 박물관에 기증했던 작품 일부를 포함한 400여 점에 이른다. 예술가의 유작이 대학 등 공공기관에 이처럼 대량으로 기증된 사례는 이례적이다.
이화여대 동양학과를 졸업한 고 강서경 교수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모교의 동양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실험적이고 공감각적인 작품 세계를 펼친 작가다. 접착제 없이 오직 실의 마찰로만 최소한의 접점을 유지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작품 ‘그랜드마더 타워’로 2018년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발로아즈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강 교수는 회화는 물론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 들며 전통과 동시대를 잇는 예술 세계를 펼쳤다. 조선시대 악보 ‘정간보’ 기호에서 영감을 받은 ‘정 井(Jeong)’ 연작, 궁중 무용 ‘춘앵무’에서 착안한 화문석 연작 ‘자리(Mat)’ 연작, 회화 언어의 기본 단위로 설정한 ‘모라(Mora)’ 연작 등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역에 대한 섬세한 고찰을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암 투병 중이던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버들 북 꾀고리’와 2024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마치 MARCH’는 관람객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4월 향년 48세로 별세한 강 교수의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모아 모교이자 생전 교수로 재직했던 이화여대에 유작 기증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유족은 “기증 작품이 이화여대의 학문과 예술 교육 발전을 위한 자산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학교에 전했다.
이화여대는 관련 위원회를 신설해 작품의 보관 및 활용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기증작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적 기여를 널리 조명할 수 있도록 전시회와 심포지엄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은 “고 강서경 교수는 예술을 통해 전통과 오늘을 잇고, 시대를 사유하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며 “그의 유작은 이화의 교육과 예술적 상상력에 영감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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