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캐릭터와 패턴 같은 ‘두들(doodle·낙서)’을 주로 그리는데 이번에는 전통 한글을 접목시켜봤어요. 한글은 마치 형태를 가진 캐릭터처럼 나의 ‘두들랜드’로 자연스럽게 들어왔습니다.”
낙서하듯 즉흥적으로 그린 구불구불한 선과 캐릭터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완성한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미스터 두들(본명 샘 콕스)’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두들이 가득한 옷과 새 작품을 가리켜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글 자음의 ‘ㅇ’과 ‘ㅁ’, 모음의 ‘ㅣ’ ‘ㅖ’ 같은 형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며 “한글로 ‘두들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개인전을 열고 국내 방송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던 그는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세종특별자치시가 한글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야심차게 출범한 ‘한글 국제 비엔날레’의 사전 행사격인 ‘프레 비엔날레’를 위해서다. 이곳에서 작가는 한지 위에 색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두들링’을 한 ‘꼬불꼬불 글자’와 ‘꼬불꼬불 네모’ 등 1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 가로 20m, 세로 4m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대형 벽화를 실시간으로 그리는 ‘HANGOODLE(한구들)’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한글’과 ‘두들’을 합친 이름의 이 작품은 조치원1927아트센터 외벽에 영구 보존돼 세종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이번 도전은 그에게 여러모로 처음이었다. 한지도 한글도 처음인 데다 외벽 작업은 여러 번 해봤지만 이 정도 크기를 라이브로 완성하는 것은 영국 밖에서는 최초다. 그는 한지 작업에 대해 “6종의 한지를 테스트하다 창호지를 선택하게 됐는데 종이 뒷면이 섬유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며 “의도적으로 물감을 스며들게 한 후 뒤집어 전시해보니 마치 고대 낙서 같은 느낌도 들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구불구불한 패턴과 함께 ‘두들랜드’를 구성하는 한글은 조형적 형태와 의미를 모두 고려해 신중히 골랐다. 시민 공모를 통해 선별된 한음절 한글 리스트를 받은 뒤 한국인 아내를 둔 동생이자 매니저 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모건과 머리를 맞댔다. 그렇게 골라진 글자가 ‘예’ ‘선’ ‘연’ ‘섬’ 등이다. 작가는 “‘예쁘다’에 쓰이는 ‘예’라는 글자가 모양도 좋고 뜻도 무척 마음에 들어 작품 곳곳에 썼다”며 “선(line)을 의미하는 동시에 친절하다는 뜻을 가진 ‘선’도 좋아하는 글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벽화 드로잉 라이브 퍼포먼스도 펼친다. ‘2025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는 1일 개막해 10월 9일 한글날을 함께 축하한 뒤 10월 12일 폐막하는 42일간의 여정을 계획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개막식은 어쩌면 그의 벽화가 완성된 순간이다. 작가는 “이렇게 큰 벽에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라며 “이처럼 큰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구경을 오고 작업에 흥미를 가지게 될텐데 그렇게 작품을 공유하는 순간이 무척 즐겁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언가를 끼적이는 일(두들)은 쓸데 없거나 가치 없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나는 이것이야 말로 의도도, 목적도 없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며 “여러분도 릴렉스를 하고 싶을 때 두들링을 해보시기를 권한다”며 웃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