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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 CCTV 보니 기특하더라"…피해자 김진주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수호의 리캐스트]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출간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 '매너스' 구축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CCTV 영상을 돌려보면 맞는 순간에 나도 가해자를 공격하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영상을 볼 때면 남들은 마음이 아프다고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진다.”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中)

부산 돌려차기 사건 CCTV 장면




2022년 5월 22일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 없는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성폭행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가 공개된 후 국민들이 분개할 때 피해자 김진주(필명·29)씨는 당시 가해자를 반격하려 했던 스스로를 기특해 했다. 그가 ‘피해자다움’이란 편견을 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건 이후 3년여가 흘렀다. “매일매일이 재밌고 소중하다”는 진주씨는 “이제 즐기면서 싸우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2022년 사건 공론화를 위해 진주씨가 네이트판에 올린 글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30대 남성 이모씨가 새벽 시간대 혼자 귀가하던 진주씨를 뒤따라가 폭행해 의식을 잃게 만든 사건이다. 당초 이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강간살인 미수가 적용돼 대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을 확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진주씨는 CCTV 영상과 포렌식 결과 등 1600쪽이 넘는 수사 자료를 혼자 모 모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12년 뒤에 저는 죽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는 등 사건을 직접 공론화했다. 길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김진주씨가 저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표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수호 기자


사건 당시 “홀로 무인도에 갇힌 느낌이었다”는 진주씨는 또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범죄 피해자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지난해 3월엔 그간의 분투를 엮은 저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펴냈다. “첫째, 보복범죄를 방지해야 한다. 둘째, 사건과 관련 없는 양형 기준은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피해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진주씨가 책에 적은 ‘모든 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다.

범죄 피해자 지원, 어디까지 왔나


대법원 전경. 뉴스1


다행히 최근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오는 9월 19일부터 형사소송에서 피해자 등의 소송기록 열람·복사를 원칙적으로 허가한다. 허가하지 않는 경우 신청인에게 그 이유를 통지한다. 피해자 권리를 구제하고 재판절차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난 7월 ‘소송관계인 개인정보 보호조치’가 도입되어 범죄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에서 개인정보 노출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때 원고의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가 피고인 가해자에게 공개됐다. 이 때문에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씨는 출소 이후 진주씨를 찾아가 보복하겠다고 협박한 바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회복과 성장을 위한 2026년 예산안'에는 △취약계층 범죄피해구조금 지원 확대 △경상피해자 대상 긴급생활안정비 도입 △스마일센터(범죄 피해자 심리치유기관) 야간·주말 운영 확대 등도 담겼다. 진주씨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첫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주씨는 “법은 여전히 가해자 쪽에 기울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씨에게 1억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진주씨가 그로부터 받은 돈은 20만원이 전부다. 교도소 수감 중인 이씨에게 받을 수 있는 건 ‘영치금’뿐인데, 영치금을 압류하려면 매번 교정 당국과 통화하고 통장·신분증 사본을 제출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씨의 동의 없이는 영치금 잔액조차 조회할 수 없다.

이에 진주씨는 "앞으로 20년 동안 영치금을 묻기 위해 몇 통의 전화를 해야 하는지 두렵다"며 "영치금은 압류명령이 내려졌을 때 피해자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인 만큼 관련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글항아리


“피해자의 가족들을 보며 ‘제3의 피해자’라는 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 외에도 그의 가족, 지인, 피해자를 치료하는 이들까지 피해자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中)

진주씨는 “범죄 피해자 안에 가족이나 지인은 물론 소방관, 경찰관, 상담사 등이 다 포함돼 있다는 인식이 없다”면서 “이들 모두를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또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 과정이 복잡해 안 받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가 쉽고 간단하게 ‘온라인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너스 BI. 사진 제공=김진주씨


◇ 피해자가 숨지 않는 세상을 위해 = 2022년 5월 이후 진주씨는 누구보다 바쁜 피해자가 됐다. 또 다른 피해자들을 돕고, 대변하고, 글을 쓰고, 본업인 디자인도 한다. 요즘은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 ‘매너스’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주씨는 “매너스를 통해 피해자에게 필요한 적시적소의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교육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는 진주씨의 인생 모토로 끝을 맺는다. “무수한 범죄로 걱정이 많은 분들께 끝으로 인사를 전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 범죄가 발생하는 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만 피해자는 혼자가 아니다. 피해자들 곁엔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진주씨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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