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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검찰 개혁, 문제는 공정성이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표적수사 논란 없애자는 취지지만

쌓아온 노하우·역량 사장 가능성

경찰통제 실패땐 공정성 훼손 우려





고등학생 시절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과목이 있었다. 바로 공업과 기술이었다. 수학을 좋아했던 내가 문과를 선택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공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은 나중에 검사로 근무하면서도 큰 장애가 됐다. 어느 날 구속 사건이 배당됐는데 해외에서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감춘 사기 사건이었다. 컴퓨터라고 해봐야 인터넷 검색과 문서 작성 정도만 하는 필자로서는 절망의 벽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를 잘한다는 검사와 수사관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조사를 마치고, 며칠 고민 끝에 피의자를 기소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필자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검사들이 법률에는 전문가였지만 다른 분야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문 분야를 수사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금융과 증권 관련 범죄, 산업 기술 유출 범죄였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간부가 되고 나서 사건을 배당하는 것이 무척 신경 쓰였다.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국 검찰청별로 전문 검찰청이 생기고 ‘증권·금융범죄 합동수사단’이나 ‘산업기술수사부’ 같은 전담 부서가 신설되면서 그나마 우려를 줄일 수 있었다. 때마침 대학에서 경제학이나 경영학, 공학을 전공한 검사들이 많아지면서 부서원 전체가 공대 출신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요즘 검찰 조직을 개편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핵심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문제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표적 수사 논란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것이 형사 사법권의 집중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조금은 부실하게 취급되고 있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바로 범죄에 대한 대응 역량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노력이다. 검찰은 수사를 잘하고 경찰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수사에도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역량이 사장될 우려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국가 수사권을 유지하는 두 축은 공정성에 대한 신뢰와 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처다. 그래야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으며 사회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

중대범죄수사청을 법무부 소속으로 둘 것인지,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둘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통제할 수 있지만 행안부 장관은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엄정 대처하라’거나 ‘배임죄 적용에 신중하라’는 일반적 수사지휘권이 경찰에는 작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통제의 실패로 인해 공정성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선의에 기댄 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이다.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방식은 언제나 통제의 대상이었다. 결코 신뢰의 대상일 수 없다. 그것이 제도를 개편하는 기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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