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성장할 인센티브는 별로 없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그런 환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최태원 대한상의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기업 생태계와 한국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배경에 ‘계단식 규제’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업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할수록 규제와 경제 형벌의 벽이 높아지는 국내 경제 환경의 제도적 개선을 역설한 것이다.
대한상의는 이날 한국경제인연합회 및 한국중견기업연합회·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및 국회와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플랫폼인 기업성장포럼을 발족했다. 최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규제가 존재하는 한 중소기업에 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기업을 쪼개는 등 사이즈를 일부러 늘리지 않기도 한다”며 “상법에도 2조 원의 허들이 있는데 그 허들이 어떻게 작용할지 생각하면 자산이 1조 9000억 원이 된 회사는 (자산을) 절대로 늘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2023년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진입률은 평균 0.04%, 중견기업의 대기업 진입률은 1.4%에 그쳤다. 한편 중견기업에서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비율은 6.5%에 달했다. 계단식 기업 규제가 지속될 경우 중견기업은 사라지고 중소기업만 남게 되는 셈이다.
기업의 매출 성장 하락세도 이어지고 있다. 상의는 대기업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2004~2014년 10.0%였지만 2014~2023년에는 2.6%로 크게 낮아졌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도 9.3%에서 5.4%로 떨어졌다.
상의는 기업 성장을 촉진하려면 계단식 규제를 완화하고 인센티브 위주의 성장 지향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상의와 김영주 부산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차등 규제 전수조사에 따르면 경제 관련 12개 법안에 343개 기업별 차등 규제가 있고 경제 형벌 관련 조항은 6000여 개에 달한다. 연구팀은 “일본 소프트뱅크는 90조 원 이상의 외부 자금을 모아 전략적으로 투자하는데 국내 지주회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외부 자금을 모을 수 없다”고 짚었다.
또 수십 년간 명확한 근거 없이 유지된 상법상 자산 2조 원 대기업 기준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의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는 “기업 성장을 위해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 스스로 성장 로드맵을 구축할 수 있도록 시장에서 안전장치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사회수석부의장, 김은혜 국민의힘 원내정책수석부대표 등이 참석했다. 구 경제부총리는 “세계 무역 질서가 자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로 변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물론 대기업도 비상 상황에 처해 있다”며 “기업들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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