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앵귈라(Anguilla)가 인공지능(AI) 붐 덕에 뜻밖의 돈벼락을 맞았다. 국가 인터넷 도메인인 ‘닷 ai’가 AI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전 세계 기업과 개인이 앞다퉈 등록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이다.
BBC는 1일(현지시간) 앵귈라 정부가 지난해 도메인 이름 판매로 1억550만동카리브달러(한화 약 544억 원)를 거둬들였다고 보도했다. 이는 앵귈라 국가 총수입의 약 23%를 차지하는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도 앵귈라의 도메인 판매 수익은 3200만 달러(약 447억 원)에 달했다.
AI 열풍이 확산하면서 기업뿐 아니라 개인까지 ‘닷 ai’ 주소를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이러한 횡재의 배경이 됐다. 도메인 등록 현황을 추적하는 웹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닷 ai’ 웹사이트는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최근 1년 사이에만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20년 5만 개 미만이던 등록 건수가 현재는 85만 개를 넘어섰다.
‘닷 ai’ 도메인의 비용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으나, 약 150~20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2년마다 갱신료가 부과된다. BBC는 “인기가 높은 도메인 이름은 경매에 부쳐져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앵귈라가 ‘닷 ai’를 얻게 된 건 단순한 배정의 결과였다. 1980년대 인터넷 확산 당시 각국은 ‘국가 최상위 도메인(ccTLD)’을 받았고 한국은 ‘닷 kr’을, 앵귈라는 ‘닷 ai’를 할당받았다. BBC는 “당시 앵귈라는 이것이 미래에 큰 돈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앵귈라 정부는 도메인 수입 관리를 위해 인터넷 도메인 이름 등록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기술 기업 ‘아이덴티티 디지털’과 5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구조는 앵귈라 정부가 판매 수익 대부분을 챙기고 해당 업체가 약 1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국가 도메인으로 뜻밖의 수익을 거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역시 과거 자국 도메인 ‘닷 tv’를 캐나다 기업에 5000만 달러에 매각해, 그 수익을 전력 공급과 장학사업에 쓰고 유엔 가입 발판까지 마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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