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다. 그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수의 무성의한 지도 아래 허송세월한다. 대학은 미국 사회가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1969년 이후 대학 등록생 수는 600만 명이나 증가했다. 정부의 학비 보조와 ‘모두를 위한 대학’이라는 수사 등이 대학 인구 증가에 기름을 부었다.
구직자들에게 요구되는 불합리한 자격 조건도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는 주요인이다. 기회균등연구재단(FREO) 소속이었던 프레스턴 쿠퍼는 2023년도 보고서에서 마케팅 차량 ‘오스카 마이어 위너모빌’을 운전하는 연봉 3만 5600달러짜리 일자리에 지원하려면 학사 학위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3만 5600달러의 연봉을 받는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석사 학위 소지자 비율은 2000년까지만 해도 16%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24%로 늘어났다. 1990년에는 비서직과 행정 전문직 종사자의 9%가 석사 학위 소지자였지만 오늘날에는 33%로 뛰었다.
‘학위 천장’은 주와 지방정부에서 특히 심각하다. 4만~6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주 정부와 시 정부 공무원들 가운데 63%가 학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다. 민간 부분의 이 수치는 28%에 불과하다. 버닝글래스인스티튜트와 스트라다교육재단의 최근 보고서는 대학 졸업자의 52%가 불완전 취업 상태로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하지 못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 분야의 일자리 75만 개는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는 “학생들이 공부에 쏟아붓는 시간도 이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지적한다. 1961년에 주당 평균 24시간이었던 4년제 대학 학생의 공부 시간이 지금은 14시간으로 짧아졌다. 노동통계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2016년도 자료에 따르면 “대학 재학생이 수업 등 교육 관련 활동에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76시간, 주당 19.3시간에 그친다.
2011년 나온 책 ‘학문의 표류’도 1년 차 대학생들이 수업 준비에 매주 14.3시간을 할애한다고 밝혔다. 수십 년 전에 비해 50%가량 줄어든 수치다. AEI는 요즘 학생들이 수업 준비에 고작 주당 4.9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교수진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취업 학생 비중이 1990년대 중반 79%에서 현재 40%로 떨어졌음에도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많은 학생들이 750단어짜리 에세이는 길어서 쓰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학생의 64%가 학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답했지만 공부와 과제물을 처리하는 데 주당 20시간 이상을 사용한다는 응답은 고작 6%였다. 2024년에는 1학년의 74%가 책을 11쪽 이상 읽거나 5쪽 이상의 에세이를 쓰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4학년의 51%도 마지막 학년에 11쪽 이상의 작문을 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성적은 오른다. AEI는 “하버드와 예일 같은 곳의 중간 평균 학점은 3.7 이상이고 전체 학생의 80%가 최소한 A-를 받는다”고 말한다. 경제학자인 아널드 클링은 학문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들의 수가 제한적임에도 대학원은 2022년에만 약 6만 명의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는 등 학부생 등록률 증가분을 상회하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계속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클링은 “대학들이 간소화된 수업과 학점 인플레이션을 통해 여기에 적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교수들의 수업 감소도 문제다. AEI는 “가벼운 수업 부담이 전문인 지위의 상징이 됐고 이로 인해 학교는 점점 대학원생 혹은 시간제 겸임 강사에게 의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년 보장 교수나 정년 보장 경로를 밟고 있는 교수들의 수업 담당 분량은 갈수록 가벼워진다. 또 교수들은 가르치는 것 대신에 연구비를 받으려 여기저기 쫓아다니거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출판 인플레이션’에 가담한다. 사정이 이러니 출판물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2015~2019년 발표된 21만 5000건의 논문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 대입자격시험(SAT) 주관사인 칼리지보드는 대학 입학을 위해 SAT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500~750단어 길이의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해독 능력을 더 이상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지문은 소셜미디어를 훑어보면서 형성된 청소년들의 집중력에 맞춰 25~150단어로 구성된다. 칼리지보드는 본 칼럼과 비슷한 ‘연장된 분량’의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은 대학 진학의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고등교육 실태에 관해 이보다 더 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