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특검(조은석 특별검사)과 김건희 특검(민중기 특별검사)이 기소한 사건들이 증인신문 절차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각 재판부는 특검법을 언급하며 재판의 ‘신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속도전에 치중할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판부로서는 ‘신속’과 ‘충실 심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는 오는 10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2차 공판기일을 연다. 이날 재판부는 증인 2명에 대한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검이 기소해 법원으로 넘어간 사건들은 대부분 공판준비기일을 마치고 본격적인 공판 절차에 들어갔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방조 혐의로 재판을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은 이달 13일 2차 공판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대통령실 CCTV에 대한 증거조사와 서증조사, 그리고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같은 달 15일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으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2차 공판기일이 열린다. 김 여사 사건 역시 이날부터 증인신문이 시작될 예정이다.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첫 공판은 17일 진행된다. 이 밖에도 ‘통일교 청탁 의혹’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건진법사 전성배 씨 등 특검이 기소한 사건들이 10월 중순부터 줄줄이 본격 심리에 들어간다.
각 재판부는 특검법상 신속재판 조항을 근거로 일정 압박을 받고 있다. 특검법은 특검이 공소를 제기한 사건의 재판을 다른 사건보다 우선 처리하도록 규정한다. 1심은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전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 내에 선고해야 한다는 이른바 ‘6·3·3원칙’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각 재판부는 공판기일을 일괄 지정하거나, 주 1회 이상 재판을 열어 법정 기한을 최대한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윤 전 대통령의 추가 기소 사건은 12월 중순까지 기일이 일괄 지정됐고, 김 여사 사건은 주 2회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속도전 재판’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피고인이 신청한 증인이 있더라도 신속심리 원칙 때문에 ‘증인 신청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변론 준비 시간이 줄어들면서 만기 보석이 어려워지는 등 방어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수사기관은 긴 수사기간 동안 여러 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모아놓은 자료를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할 수 있지만, 피고인 측은 이를 방어할 기회가 사실상 제한된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조사가 간이하게 이뤄질 경우, 특검 측의 시각이 반영된 기록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일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주신문을 먼저 일괄 진행하고, 반대신문은 이후에 하는 방식’을 택한 점도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여사 사건 재판부는 10월 한 달 동안 특검 측 핵심 증인 27명에 대한 주신문을 모두 마친 뒤, 11월부터 제대로 된 반대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판중심주의의 취지는 증거조사를 하나씩 진행하며 법관이 심증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주신문에서 나온 진술의 신빙성을 반대신문으로 즉시 확인해야 하는데, 주신문만 일괄 진행하면 이미 형성된 재판부의 심증을 뒤집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수사기관이 먼저 묻고 싶은 내용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놓는 셈이라, 피고인에게 불리한 선입견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특검 사건이 잇따르면서 법원도 원활한 진행을 위해 내부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법원은 특검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는 일반 사건 배정을 최소화하고, 윤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 사건 재판부에는 법관 1인을 추가 배치하는 등 인력 지원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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