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음악과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AI 가수가 정상에 오른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세계 최초의 AI 배우가 할리우드 진입을 선언하며 등장하자, 음악·영화계를 중심으로 “AI가 인간 예술가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논쟁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 AI 가수, 결국 빌보드 1위…정작 팬들 “AI라서 뭐가 문제냐”
AI 생성 가수 ‘브레이킹 러스트’(Breaking Rust)의 ‘워크 마이 워크(Walk My Walk)’는 최근 미국 빌보드 컨트리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 올랐다. 다운로드 수 기준으로 집계되는 이 차트에서 AI 가수가 정상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해당 곡은 스포티파이에서도 350만 회 이상 재생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브레이킹 러스트의 다른 곡들도 수백만 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팬들은 그의 AI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실존 인물인 줄 알았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투어 언제 하냐”는 반응까지 올라오고 있다.
반면 음악계에서는 경계심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 NPR 인터뷰에서 컨트리 음악 전문매체 ‘위스키 리프’ 편집자 애런 라이언은 “누가 작곡했고, 누가 연주했는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통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장르일수록 AI 음악에 대한 반발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이미 절반은 AI가 만든 음악”…대중은 구분 못한다
AI 음악이 차트를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폭발적인 생산량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스트리밍 서비스 디저(Deezer)의 연구를 인용해 “글로벌 플랫폼에 매일 업로드되는 음악 중 약 34%, 하루 5만 곡이 AI 생성 음악”이라고 보도했다.
AI와 인간의 음악을 구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디저가 8개국 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응답자의 97%가 AI 음악과 인간 음악의 차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디저 CEO 알렉시스 란터니에는 “사람들은 자신이 듣는 음악이 AI인지 인간인지 알고 싶어 한다”며 “동의 없는 AI 학습은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제는 ‘AI 배우’ 등장…할리우드 “역겹다” 격렬한 반발
지난 9월에는 세계 최초의 AI 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ode)가 등장해 할리우드의 시선을 끌었다. 틸리 노우드는 배우이자 코미디언 일라인 반 더 벨던(Eline Van der Velden)이 설립한 AI 제작사 산하에서 만들어진 가상 캐릭터로, 현재 여러 할리우드 에이전시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더 벨던은 “틸리 노우드를 차세대 스칼렛 요한슨이나 나탈리 포트먼 같은 배우로 성장시킬 수 있다”며 “창의력은 더 이상 예산의 한계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은 즉각적으로 이어졌다. 현직 배우들은 공개적으로 AI 배우에 대한 불편함과 위기감을 드러냈다.
멜리사 바레라는 “이 AI 배우를 영입하는 에이전시라면 소속 배우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길 바란다. 너무 역겹다”고 비판했고, 키어시 클레몬스는 “그 에이전시 이름부터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라 윌슨은 “수백 명의 실제 젊은 여성 얼굴을 합성해 만든 AI다. 그중 한 명을 직접 고용하지 그랬나”라고 지적했으며, 배우 토니 콜렛 역시 비명 이모티콘을 남기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 “도구일 뿐이라더니…” 업계 “AI, 결국 사람 밀어낼 것”
AI 배우 논란이 커지자 제작사 측은 “AI는 인간을 대체하려는 기술이 아니라 창작을 확장하는 도구”라고 반박했다. 틸리 노우드를 만든 일라인 반 더 벨던은 “AI는 새로운 붓과 같을 뿐이며, 인간 연기의 가치를 빼앗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 시각은 다르다. 이미 스트리밍 확산과 제작비 절감 압박으로 노동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제작사가 휴식·시간 제약 없이 활용 가능한 AI 캐릭터를 도입할 경우 결국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저작권·초상권·AI 학습 데이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AI 창작물의 확산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예술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lia@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