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트럼프 스톡커] '엡스타인 성접대 명단' 나오면 지지율 바뀔까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트럼프 지지율 38~39%…2기 집권 이후 최저

엡스타인 공약 접고 수사 종료…MAGA '흔들'

사교계 성접대설…클린턴, 앤드루 왕자도 거론

민주당 e메일 공세에 공화당도 만장일치 찬성

의혹 벗어도 내년 선거까지 '관세發 고물가' 발목

제프리 엡스타인.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며 재집권 10개월 만에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이제는 공화당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부에서도 균열이 일어나며 내년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착취범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의 혐의에 연루됐거나 적어도 그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여권의 충성도는 관세와 안보 등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연쇄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이다.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해 한국과 관련한 여러 대미 협상 사안에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까닭이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엡스타인 의혹으로 증폭됐지만, 그 이면에는 관세로 촉발된 물가 상승과 저소득층의 불안정해진 생활 여건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엡스타인 수사 문건 공개를 승인한 트럼프 대통령이 혹여 의혹을 벗더라도 지금 같이 엇나간 경제 정책과 일방통행식 정치를 계속할 경우 중간선거까지 지지율을 쉽게 올리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트럼프 지지율 38~39%로 재집권 최저…고물가 불만에 엡스타인 의혹이 불붙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14∼17일 미국 성인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3%포인트)를 18일(현지 시간) 공개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재집권 이후 최저치인 3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오차 범위 안쪽이기는 하지만 이달 초 조사에서 기록한 40%보다 2%포인트 떨어진 수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당시 지지율 47%와 비교하면 9%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는 집권 1기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 33%, 35%에 근접한 숫자이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인들은 생활물가와 미성년자 성착취범 엡스타인 조사 관련 처리에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트럼프대통령의 대표적 경제 정책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관세 인상이었으나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생활물가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26%로 이달 초 29%에서 더 떨어졌다. 물가 관리를 잘못한다는 응답자는 65%로 이를 크게 웃돌았다. 공화당원 가운데 3분의 1도 생활물가 부문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의 고객 관련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고 믿는 응답자는 70%에 달했다. 민주당원의 87%, 공화당원의 60%가 이를 믿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엡스타인 사건 처리 방식을 지지한 응답자는 20%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찍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또 있었다. NPR·PBS와 여론조사 기관 마리스트가 지난 10∼13일 성인 14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9일 공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3.0%포인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9%로 나왔다. 이는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사태 이후 최저치이자 지난 9월 조사 때 기록한 41%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지금 중간선거를 치른다면 어떤 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5%가 민주당을, 41%가 공화당을 꼽았다. 양당 지지율이 오차 범위 바깥까지 크게 벌어진 셈이다. 대선 때인 지난해 11월 조사 때만 하더라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율은 48%로 동률이었다.

이 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부진의 최대 요인은 물가 상승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응답자의 57%가 ‘물가 인하’를 택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69%, 무당파의 62%가 물가 인하를 핵심 과제로 지목했고, 공화당 지지자의 40%도 이에 가세했다.

학력 속이고 월가 억만장자 삶…사교계 성접대 혐의 받다가 교도소서 돌연 사망


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내 대표적 복합 문화공간인 ‘버스보이스 앤 포엣츠’ 앞에 세워진 동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이 사이 좋게 손을 잡은 모습을 형상화했다. AP연합뉴스


이달 생활물가 상승으로 악화된 민심에 불을 지핀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의심스러운 엡스타인 사건 처리였다.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난 앱스타인은 대학 학위도 없이 사립 학교 달튼스쿨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다가 세계적인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 회장 아들의 과외 선생이 되면서 팔자를 바꾼 인물이다. 뉴욕 월가의 5대 IB였다가 2008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한 그 베어스턴스다.

미국 뉴욕대를 중퇴한 앱스타인은 학력을 속이고 1976년 베어스턴스에 입사한 뒤 5년 만에 퇴사하고 1981년 월가에 자신의 투자회사를 세웠다. 그는 여기에서 유명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레슬리 웩스너 최고경영자(CEO) 등 초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엡스타인은 이 과정에서 1994~2004년 미성년자들을 꾀어서 사교계 거물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36명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2008년 조사를 받았지만, 석연치 않은 감형 협상(플리바게닝)으로 단 2건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13개월만 선고받았다. 수감 기간에도 호텔처럼 편하게 생활해 뒷말을 낳았다.

‘미투 운동(성폭력·성희롱 피해 경허을 공개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 운동)’에 따른 잇딴 폭로로 2018년 혐의를 재조명 받은 엡스타인은 결국 2019년 7월 6일 2002~2005년 미성년자 20여 명에 대한 인신매매·성매매 등을 벌인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엡스타인은 자신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섬과 뉴욕 자택, 플로리다주 팜비치 개인 자택 등에 카메라를 설치해 저명 인사들과 미성년자 소녀 간 성관계 장면을 녹화하고 이를 협박 정보로 보유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문제는 엡스타인이 수감 직후인 2019년 8월 10일 뉴욕 교도소에서 돌연 사망했다는 점이다. 뉴욕시 검시관은 그가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판단했으나, 24시간 감시를 받는 교도소 안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엡스타인 쪽 변호사들은 사망 당일 카메라가 촬영되지 않은 데다 간수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점에서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엡스타인이 성접대 명단(리스트)이 존재한다는 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이자 찰스 3세의 동생인 앤드루 전 왕자 등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7월 10일 플로리다주 출신의 사업가 조지 호우라니의 발언을 인용해 “1992년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28명의 여성이 참여하는 ‘캘린더 걸’ 대회를 진행했다”며 “이 자리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 밖에 손님이 없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성년자 성접대 의심을 받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자신이 당선되면 해당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의혹을 정면 돌파하는 척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8일 미국 법무부가 성접대 명단은 존재하지 않으며 엡스타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발표와 함께 수사를 종료하자 논란은 되살아났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6월 5일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파일에 포함돼 있어 공개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머스크 CEO 본인도 엡스타인 리스트에 포함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받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성접대 리스트 공개” 공약하더니 수사 종료…민주당 e메일 폭로


2020년 7월 2일(현지 시간) 뉴욕 남부지방검찰청이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미성년 소녀 여러 명에 대한 성착취·학대 혐의로 그의 여자친구인 기슬레인 맥스웰을 기소하면서 혐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은 이달 12일 미국 민주당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해제와 함께 엡스타인의 e메일 3통을 공개하며 대대적으로 확산됐다. 민주당이 공개한 편지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2011년 4월 여자친구이자 공범인 기슬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e메일에서 “그(트럼프 대통령)와 함께 내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며 “그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짖지 않은 그 개가 트럼프라는 것을 알아두기를 바란다(I want you to realize that that dog that hasn't barked is Trump)”고 적었다. 맥스웰은 이에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답장했다.

맥스웰은 성매매와 인신매매 공범 혐의로 2020년 체포돼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인물이다. 민주당은 맥스웰이 지난 7월 토드 블랜치 법무부 부장관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이 부적절한 상황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데 대해서도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형을 요청할 목적의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본격 데뷔한 뒤인 2015년 12월에도 “언론이 트럼프에게 너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는 언론인 겸 작가 마이클 울프의 e메일을 받고 “그(트럼프 대통령)를 위한 답변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느냐”고 물었다. 체포되기 몇 달 전인 2019년 1월에는 울프에게 e메일을 보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소녀들에 대해 알았다(knew about the girls)”고 말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즉각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을 중상모략할 가짜 서사를 만들기 위해 e메일을 선택적으로 유출했다”며 e메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의 집에서 몇 시간을 보낸 것으로 언급된 피해자는 지난 4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故) 버지니아 주프레라고 주장했다. 주프레는 엡스타인을 고발한 미국계 호주인 사회운동가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연방의회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파일 가운데 엡스타인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e메일 23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6년 전후를 시작으로 언급 빈도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대체로 엡스타인이 친구들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기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넘기거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담긴 문건도 500건이 넘었다.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한 2015년 이전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관한 내용도 일부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앤드루 전 왕자,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 출신의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빌 게이츠의 전 과학 자문인 보리스 니콜리치 등의 이름도 검색됐다. 엡스타인 논란으로 서머스 전 총장은 최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NYT와 블룸버그를 포함한 주요 언론도 그의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앤드루 전 왕자는 이에 앞서 엡스타인 의혹에 연루된 죄로 지난달 왕자 직위를 박탈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당했다.

NYT는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과 웩스너 CEO는 물론 부동산 거물이자 뉴욕 데일리뉴스의 소유주였던 모티머 주커만,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거물 사모펀드 투자자 레온 블랙, 찰리 로즈 전 CBS 앵커, 영화감독인 브렛 래트너와 우디 앨런 등도 e메일에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2015년 이 언론사의 기자에게 “우리 집 부엌에서 비키니를 입은 소녀들과 함께 있는 트럼프의 사진을 볼 생각이 있느냐”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NYT는 “e메일에 월가의 억만장자들, 언론계의 중량급 인사들, 정치인들, 오랜 자금력을 갖춘 사교계 인사들로 이뤄진 그룹의 황혼기가 묘사됐다”며 “이들 가운데 여럿은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엡스타인의 7층짜리 저택에 모이곤 했다”고 설명했다.

MAGA 최측근도 등 돌려…‘엡스타인 파일 공개’ 공화당까지 만장일치급 찬성


마조리 테일러 그린(오른쪽, 공화·조지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지난해 3월 9일 조지아주 로마에서 열린 선거 행사에서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연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공세에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거래 문제로 경쟁하던 2004년께부터 엡스타인과 교류를 끊었다는 입장을 그간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민주당은 셧다운과 매우 많은 문제에서 얼마나 형편없이 대처했는지에 대해 시선을 돌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하기 때문에 엡스타인 사기극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며 “아주 나쁘거나 멍청한 공화당원만이 그 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14일에는 트루소셜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서머스 전 총장, JP모건 등에 대해 법무부에 조사하라고 요청하겠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저항은 공화당 진지층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특히 엡스타인 문건에 민주당 인사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야당 공세용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마가 진영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엡스타인과 관련한 방대한 수사 기록이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적 시각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 “민주당이 공개한 e메일 내용이 마가 내부에 반(反)트럼프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3일에는 미국 워싱턴DC 내 대표적 복합 문화공간인 ‘버스보이스 앤 포엣츠’ 앞에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이 손을 잡은 동상이 또 등장하기도 했다. 신원 미상의 예술가 2명이 만든 이 청동 조형물은 지난 9월과 10월 두 차례 워싱턴DC 의회 앞 내셔널몰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바 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마가 진영의 대표 정치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공화·조지아) 연방 하원의원까지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녀는 14일 정치 매체 폴리티코를 통해 “엡스타인 파일 공개는 가장 쉬운 일인데 그걸 막으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좌경화됐다”며 그린 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에도 트루스소셜에서 그린 의원을 ‘반역자(Traitor)’라고 몰아세우며 “좌파로 돌아서서 공화당 전체를 배신했다”고 힐난했다. 그린 의원은 16일 CNN과 인터뷰를 갖고 “나를 가장 아프게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나를 배신자라고 부른 것”이라며 “이는 극도로 잘못됐고 이런 종류의 발언은 사람들을 나에 대해 극단적이 되도록 하고 내 생명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엡스타인 사건 자료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은 18일 결국 양원 만장일치 수준으로 의회 문턱을 넘었다. 정원 435명의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찬성 427표, 반대 1표로 가결했다. 공화당도 몰표를 던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클레이 히긴스(공화·루이지애나) 의원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지 몇 시간 뒤 정원 100명의 상원도 같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궁지 몰린 트럼프 “공개하자” 정공법 선회…내년 중간선거까지 핵심은 ‘서민 경제’


1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바토의 한 코스트코에 진열된 소고기. AFP연합뉴스


공화당까지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 탓에 방어 수단이 사라진 트럼프 대통령은 입장을 바꿔 정공법을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트루스소셜에서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에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며 “우리는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에 대한 설득이 힘들어지자 마치 의원들이 자신의 뜻을 받들어 찬성표를 던진 것처럼 포장해 망신살이를 피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에도 백악관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백악관 태스크포스(TF)’와 회의를 하다가 취재진에게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이 올라오면 전적으로 서명할 것(all for it)”이라고 자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그의 친구들은 전부 민주당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양자 회담을 갖다가도 취재진에게 “나는 엡스타인과 아무 관계가 없다”며 “난 그가 역겨운 변태(sick pervert)라고 생각해 오래전에 내 클럽에서 쫓아냈고 결국 내 판단이 맞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엡스타인 이슈는 민주당의 사기(hoax)”라며 “엡스타인이 돈을 건넨 정치인들 명단이 담긴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19일 법안에 서명하고 문건 공개를 허락했다.

18일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의회의 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 처리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에 한계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셧다운 사태 때도 트럼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폐지 요구를 묵살하며 변화한 당내 기류를 보여준 바 있다. 공화당은 필리버스터 종결 투표의 의결정족수를 60명에서 단순 과반인 51명으로 낮추는 ‘핵옵션’을 쓰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끝내 무시했다.

의회 장악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데다 엡스타인 의혹으로 지지율까지 급락한 트럼프 대통령이 입지를 다시 세울 방법은 결국 경제적 업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생활 물가가 크게 오르자 14일 소고기, 커피, 토마토,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과 견과류, 향신료 등 농산물에 대한 상호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으로 커피 생두 수입 가격과 소매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19%가량 급등했다. 바나나 값도 7% 상승했다. 미국 축산업 전문지 비프매거진에 따르면 소고기 가격은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박스 포장 소고기 가격은 13% 뛰었다. 모두 서민들이 물가를 매일 피부로 체감하는 품목들이다. 생활 물가가 크게 뛰는 상황에서도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셧다운 사태 영향으로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엡스타인 명단 공개 문제가 어떻게 끝나든 미국 서민 경제가 안정되지 못하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도 극단적인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도 이달 4일 지방선거에서 극심한 물가 부담에 대한 불만 여론을 파고들어 대승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개최된 미국·사우디아라비아 투자 포럼에서 “내 여론조사 수치는 방금 떨어졌지만,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크게 올랐다”며 “3월 이후 계란 가격은 86%나 내려갔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도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언뜻 들으면 자신에 찬 듯한 발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언급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스로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지지율 하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