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기업들이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호적인 금리 환경을 기반으로 크레디트 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차환, 신규 투자 등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자금 마련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다만 기준금리 4연속 동결로 금리 인하기 종결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 자산에 투자) 청산 공포가 다시금 확산하며 전 세계적으로 금리 불확실성이 높아진 점도 회사채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올해 들어 이날까지 발행한 회사채는 67조 6516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발행액(66조 5673억 원)을 뛰어넘었다. 이는 대규모 회사채 발행액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그룹별로는 ‘빅 이슈어’로 꼽히는 SK그룹이 12조 6968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전체 대기업 발행액의 18.8%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SK그룹은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가 지난해 연간(9조 1194억 원) 대비 40% 가까이나 늘어났다. 이어 한화(4조 1720억 원), 농협(3조 6100억 원), 현대차(3조 3700억 원), LG(3조 3600억 원) 등이 상위권에 자리했다.
이처럼 올해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회사채 시장을 방문한 이유로는 우호적인 금리 환경이 꼽힌다. 지난해부터 금리 인하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 차이(스프레드)가 지속적으로 좁혀지는 등 기업들의 조달 비용이 낮아지자 발행 확대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은 “올해 한국은행이 세 차례 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장금리도 내리고 스프레드도 축소됐다”며 “기업 입장에서 조달 비용이 낮아지니 저금리 기조에서 만기 구조를 길게 구성할 수 있는 회사채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하반기 들어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며 회사채 시장도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한은이 4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인하기가 종결됐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년에도 대기업들이 올해만큼 회사채 시장을 방문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구조적으로 기업들의 회사채 만기가 상반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1분기 시작부터 발행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기준 대기업 회사채 발행액은 43조 6274억 원으로 64.5%가량을 차지했다.
여기에 3개월과 6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대기업의 회사채 규모도 각각 26조 1883억 원, 23조 4914억 원에 달하는 만큼 상반기에 발행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1월부터 4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큰 편”이라며 “기업들이 차환 목적으로 회사채 발행을 이어갈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내년 회사채 발행 관건은 금리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으로 금리가 상방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역시 금리를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다. 국내 회사채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국고채 금리가 오를 경우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변동성이 커진 국채금리의 안정화가 선행돼야 크레디트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연초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달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 인하 단행 가능성과 차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대표적 비둘기파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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