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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회 박사 (한국표준연구원)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5월 수상자

같은 거리라도 유난히 명동을 지날 때면 볼 것도 많지만 인파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인파가 많으면 걸음속도는 자연히 느려진다.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인파를 ‘저항’이라고 본다. 인파가 많을수록 저항이 많아져 그만큼 걸음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인파가 같은 방향으로 줄을 서서 통행하게 되면 저항은 훨씬 줄어들 수 있어 자연히 걸음 속도는 빨라지게 된다. 이처럼 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여 명동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갈 수 있는 현상을 발견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허남회 박사의 연구세계를 들여다본다. 허박사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5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거대자기저항현상 실험적 증거 제시
일반적으로 구리, 쇠, 금, 은, 알루미늄 등과 같이 전기를 잘 통하는 물질을 도체라고 한다. 보통상태의 도체에는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자유전자가 있다. 이러한 전자의 흐름은 일반적으로 자석과 같은 자기장을 걸어주게 되면 전자가 흐르는 것을 방해해서 저항이 증가하게 된다. 마치 명동거리에 인파가 많아 걷는 속도가 늦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부분의 재료에서는 자기장을 걸어주면 이처럼 저항이 높아져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게 되지만 어떤 재료에서는 자기장을 겪어도 오히려 저항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인다. 즉, 사람이 많아도 정렬되어 있으면 걸음속도가 빨라지는 명동거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저항감소 특성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현재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자기저항 헤드를 들 수 있다. 차세대 메모리로 떠오르는 자기기억소자를 개발하는 연구는 바로 이러한 특수한 원리를 이용한 대표적인 연구에 속한다.

차세대 메모리인 자기기억소자개발연구 수단계 상승
자기장을 걸어도 저항이 감소되는 재료는 주로 망간산화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망간계 산화물에서는 저항의 감소가 주로 1,000% 이상 상승하게 되는데 이러한 물질을 총칭해서 거대자기저항(Colossal Magneto Resistance : CMR) 재료라고 한다. CMR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면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져 사회시스템간 데이터 이동을 더욱 활발하게 바꿀 수 있다. 신용카드나 지하철 패스의 경우에도 현재의 넣고 빼는 방식이 아닌 터치톤 형식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은 자기장을 느끼기 만해도 저항이 획기적으로 감소돼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왜 망간계 산화물에서만 발견되는지에 대한 이론은 아직까지 딱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만 스핀, 전자, 궤도, 격자가 아주 강하게 속박되어진 환경에서만 가능하다고 추론되어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거대자기저항 현상이 유독 망간계 산화물에서만 발견되는 이유나 기본 메커니즘 규명 연구분야는 재료 물리학 분야에서의 핵심 연구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허 박사는 이러한 재료에 대해 연구를 한 결과 특이하게도 자유로운 스핀들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얼려진 상태인 스핀 유리 현상이 재투입(reentrant spin glass)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자기적 특성 조사를 통해 최초로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재투입 현상은‘복합다체계 시스템’인 망간 산화물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CMR 기본 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국내에서 이러한 CMR 재료와 관련된 연구기반이 취약했던 지난 96년부터 저항의 급격히 감소되는 재료개발과 물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자기저항현상 자체에 대한 존재 여부는 지난 50년대부터 이루어졌지만 그동안 상용화의 길이 없어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보통신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저항이 더 증가되고 더 많은 산업에 응용이 가능한 새로운 자성재료의 개발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볼 때 허 박사의 CMR재료와 관련된 선도적인 연구들은 국내 자기기록매체와 관련된 연구분야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리학 권위지들 주요논문으로 평가
허 박사는 CMR관련 연구논문을 3년간 40여편을 냈을 정도로 이 분야의 왕성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최근 물리학계의 최고 권위지인 지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은 CMR 현상의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는 주요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연구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허 박사의 유일한 취미는 연구원에 심어져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 주위로 매일 한 차례 즐기는 산책. “산책은 체력을 유지시켜 줄 뿐 아니라 머리를 맑게 해준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은 1년 365일 한 차례도 빠지지 않는다. 어려운 과학현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허 박사는 “복잡한 과학현상을 대중이 쉽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며 “과학자가 직접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과학을 전파해야 과학에 관심이 생기고 훌륭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훈기자 <isur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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