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다름 아닌 잉크젯 프린터인데, 주변기기를 훨씬 뛰어넘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이 제품의 핵심 기술은 간단하다. 일렬로 배열된 노즐들이 앞뒤로 움직이면서 미세한 잉크 방울들을 종이에 뿌리는 것 뿐이지만 실제로 잉크젯 프린터의 용도는 너무나 다양해서 항공우주공학으로부터 약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프린터가 사진 인쇄에서 제트기 추진 용도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일까? 잉크젯의 전례없는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는 비결은 프린트 헤드 때문이다. 실리콘이나 복합재 판인 0.1인치 폭의 이 헤드에는 제조업체가 기술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미세한 노즐들을 만들어 넣을 수 있다. 이 노즐에 잉크를 채우면 열이나 전기력을 이용해 균질한 잉크 방울들을 분사해 낸다.
20년 동안 노즐 수가 12개에서 3,000개로 늘어나며 정교해진 잉크젯은 저렴하면서도 미세한 잉크들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최초의 양산형 기계이다. 결국 잉크젯 덕분에 미세유체학 분야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날이 미세해져 이제 바늘 끝보다도 작게 잉크 방울을 조절할 수 있는 정밀 기술이 한층 빨라진 인쇄 속도와 결합되면서 새롭고 훨씬 다양한 응용 분야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휴대폰이나 인간의 간을 인쇄할 수도 있고, 부작용 없이 약물을 보다 효과적으로 투여할 수 있으며, 유해한 부산물이 없는 연료 생산도 가능해졌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놀랍겠지만 잉크젯 혁신가들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애초에 서류 따위나 뽑아내는 단순한 작업용으로 잉크젯을 만든 게 아니었다.
사실 휴렛패커드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 1979년 최초의 노즐을 개발했을 때 제약 및 재료과학 분야용으로 마케팅을 하다가 인쇄 사업이 더 큰 돈벌이가 되리라고 판단했다. 1984년 최초의 제품이 시장에 선보인지 20년이 지난 현재 잉크젯은 시장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아 HP나 엡손, 캐논 같은 대기업들은 한 걸음 물러나 이 기계의 새로운 용도를 짜내는 방법을 알아낼 여유가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잉크젯이 얼마나 정교한 장치인지 잘 모릅니다”라고 HP의 기술 플랫폼 기구 부사장인 스테판 니그로는 말한다. “프린터 헤드로부터 초당 수백만 개의 잉크 방울이 나옵니다. 정말 놀라운 기술이죠.” 이 기술에 매료된 사람들은 기업체 사장들 뿐만이 아니다.
인쇄 속도와 노즐 크기가 향상됨에 따라 일부 연구가들은 고성능 잉크젯으로 실제 크기의 집을 인쇄하기도 하고, 피부 이식 조직을 찍어내기도 한다. 미래에 과학자들은 특정 암을 치료하는 잉크젯 출력 나노머신이나 잉크젯 애완동물들을 선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번쩍이는 신형 MP3 플레이어나 이온 헤어 드라이기, 원격조종 오토맨 같은 것들에 푹 빠져 연신 탄복한다 하더라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서 무명의 설움을 딛고 확고한 존재로 입지를 굳힌 잉크젯에도 지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칭찬을 받던 말던 잉크젯은 앞으로도 수십년간 우아하고 단순한 기술을 통해 인상적인 결과물들을 계속해 쏟아낼 것이다.
1 데스크탑 인공장기 공장 햄스터 난자와 성장 인자 투입
실험실에서의 대체 장기 생산은 멋진 아이디어이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학자들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었다. 예를 들어 수십억 개의 세포들을 손으로 꿰매어 코나 간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힘든 과정이어서 일을 끝내기도 전에 세포들이 죽어버린다.
그런데 2001년 클렘슨 대학 화학공학자 토마스 볼랜드가 대학내 폐기물 처리장에서 주워 모은 고물 잉크젯 프린터들을 짜맞춰 기발한 세포 분리 로봇을 만들어냈다. 소프트웨어 드라이버를 다시 만들고 출력 트레이가 프린터 헤드를 지날 때마다 미량씩 방출해 3-D 구조를 생성할 수 있게 한 다음 잉크 대신 햄스터 난자와 성장 인자를 넣어 볼랜드는 잉크젯을 세포 공학에 접목시켰다.
현재까지 그는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배양접시에서 박동하는 고양이 심장 반쪽과 세포관들을 만들어냈는데, 언젠가는 이세포관들을 실제 혈관들에 투입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혈관계 제작은 그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주문형 장기 생산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이다.
다음 10년 내에 성형수술용 연골조직과 피부 이식용 세포판을 비롯한 비교적 간단한 세포들을 인쇄할 수 있을 거라고 볼랜드는 말한다.
2 산타클로스 기계 장난감 휴대폰덮게 등 인쇄
만약 3-D CAD 인쇄 기술이 발달해 장난감들이나 접시, 휴대폰 덮개를 다운로드 받아 책상 위에서 인쇄할 수 있게 되는 날이면 쇼핑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3D 시스템스나 Z 코퍼레이션, 스트래터시스 같은 회사들은 이미 고해상도의 3-D 잉크젯 프린터들을 출시했다.
캘리포니아 발렌시아 소재 3D 시스템스사의 39,900달러짜리 인비전 프린터는 448개의 노즐이 달린 프린터 헤드를 통해 감광성 아크릴과 왁스를 알루미늄 판 위에 미세한 얇은 층으로 서서히 뿌리며 엔지니어들이 지시한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내 엔진 부품 원형이나 다이렉트 메일용 작은 입체상, 또는 기계장치 목업도 제작된다. 왁스 몰딩을 녹여 벗겨내면 딱딱한 아크릴 제품이 남는다.
이 회사들과 그 밖의 다른 회사들이 시장 점유율 경쟁에 나서면서 상용 복제기들이 일반 소비자들도 구입가능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데, 1000달러짜리 가정용 모델이 곧 선보일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3 잉크젯을 응용한 전자제품들 단한번에 전자제품 인쇄
UC 버클리의 과학자들은 단순한 장식용품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려고 분투중이다. 이들은 MP3 플레이어나 PDA, 휴대폰 같은 디지털 장치들을 본체에 부품들을 끼워 조립하는 대신 한 번에 제작해내고 싶어한다.
공학 교수인 존 캐니는 전도성 플라스틱인 폴리머를 3-D 잉크젯으로 집적해내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를 통해 회로 기판과 다른 부품들을 제작하는 긴 공정을 대폭 단축시켜 단 한 번에 전자제품들을 인쇄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일본 세이코-엡손의 엔지니어들은 전자제품 회로기판 정도의 인쇄는 충분히 가능함을 입증했다.
2004년 11월 이들은 구리와 실리콘 대신 각각 전도성 잉크와 절연성 잉크를 사용해 20층의 회로 기판을 단 200 마이크론 두께로 인쇄해냈다. 큼직한 재료들로 대그우드 샌드위치를 만드는 대신 이들은 미세한 노즐들이 달린 압전 프린터 헤드를 이용해 지름이 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한 전도성 은 삽입 잉크 방울들을 새롭게 개발된 절연 잉크 띠를 따라 배열한다. 재료의 크기가 작아 매우 촘촘하게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이런 얇은 기판이 2007년경 제품에 등장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휴렛 팩커드와 다른 회사들간에 회로 인쇄 실험 경쟁이 가속화 되어 이런 기판의 출시 시기는 앞당겨질 전망이다.
크기를 마음대로 잉크젯 노즐은 다양한 유체를 원하는 어떤 크기로도 인쇄할 수 있도록 조절이 가능하다. 버클리의 연구원들은 두 개의 미세한 압전 노즐에 반도체 폴리머를 채워 플라스틱 전자 부품들을 인쇄해냈다. 초박형 구조세이코-엡손은 자사의 독자적인 잉크젯 프린터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회로기판(사진)을 제작한다.
4 한계를 뛰어넘는 초미세 분무기 펄스 점화 엔진에 필수적인 부품
머지 않아 자동차 후드 밑이나 전투기 엔진 내부에서 정교한 연료 분사기 역할을 하는 잉크젯을 보게 될 것이다. 기존의 분사기는 윈덱스 병이 엷은 액체를 뿜어대듯 가솔린이나 디젤을 미세한 방울들로 뿜어낸다. 이 방울들이 증발해 공기와 잘 뒤섞일수록 탄화수소의 연소율이 높아진다.
잉크젯은 이런 용도에 제격이다. 휴렛 팩커드의 연구원들은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단일 분사기 장치 대신 수백 개의 미세한 노즐에 각자 액추에이터를 달아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중이라고 말한다. 미세 잉크젯 기반 연료 분사 장치는 이미 미 해군의 실험적인 펄스 점화 엔진(PDE)에 필수적인 부품이 되었다.
이 엔진은 격렬한 연료 폭발력을 모아 제트기를 마하 3의 속도로 추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 점화장치는 폭이 50마이크론에 불과한 연료 방울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TDA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짐 내비티는 잉크젯 노즐을 이용한다. 잉크젯 노즐의 미세한 연료 방울들은 빠르게 증발하며 점화되어 다른 수퍼소닉 엔진에 버금가는 추진력을 발생시킨다고 내비티는 말한다.
5 주문형 꿈의 집 전자 청사진으로부터 맞춤식 주택지어
잉크젯은 작은 물질을 미세하게 다루는 데 유리하지만 약간만 기본적인 변형을 하면 대규모의 기적도 일으킨다. 남가주대의 엔지니어 베로크 코쉐네비스는 거대한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버튼만 누르면 전자 청사진으로부터 맞춤식 주택을 지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코쉐네비스가 콘투어 크래프팅이라고 부르는 이 자동화 장치는 머리 위에 운반기가 달려 있어 노즐이 이곳을 타고 앞뒤로 움직이며 빠르게 굳는 콘크리트를 부어 내 벽을 만든다[오른쪽 그림]. “종이에 인쇄하는 것과 거의 똑같습니다”라고 그가 직접 만든 30,000달러짜리 장치를 가리키며 말한다. “하지만 옆으로만 움직이는 잉크젯 프린터 헤드와는 달리 이장치의 노즐은 벡터 플로터처럼 사방으로 움직입니다.” 그는 건축가와 시공사, 부동산 전문가들과 협력해 남가주대에 콘투어 크래프팅 연구소 설립을 추진중인데, 그는 이 장치로 2,000평방피트짜리 주택을 지붕과 배관, 배선을 포함해 단 하루만에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 만화같은 장치들 17인치 고화질화면
지금부터 3년 후 필통 크기만한 통에서 전자식 신문을 꺼내 요가용 매트처럼 펼쳐지는 17인치짜리 고화질 화면으로 최신 주요 기사나 휴가때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볼 때 쯤이면 잉크젯 기술에 감사해 할 것이다.
전세계의 수십 개 회사들이 유연한 플라스틱 스크린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일례로 필립스는 256개의 압전형 노즐들이 달린 4헤드형 산업용 잉크젯 프린터로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를 컴퓨터와 텔레비전 화면에 인쇄한다. 영국 브리스톨 소재 HP 엔지니어들은 잉크젯을 이용해 미세한 액정 점들을 플라스틱 기판에 인쇄하는데, 이것들이 픽셀 기능을 한다. 휘어지는 플라스틱내의 전극들이 이 액정들을 켜고 끄면서 컬러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결국 해상도면에서 인쇄된 페이지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플래스틱 로직사는 유연한 디스플레이 제품을 2007년경 출시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액정 대신 산업용 잉크젯을 이용해 전자 잉크를 유연한 플라스틱에 인쇄해 어떤 각도나 조명하에서도 왜곡없이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7 가장 효과적인 약물 투여법 2~20마이크로의 방울분사
크고 불균질한 끈적이는 약품 방울들을 뿜어대던 기존의 흡입기는 약품이 폐에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천식 치료용으로는 쓸만했다.
하지만 혈류에 투입해야 하는 대부분의 다른 약품 투여에는 그다지 이상적인 수단이 못 되었다. 흡입기 내부의 열 프린트 헤드가 미세하고 균질한 약품 방울들을 뿜어내는 디지털 에어로졸이 올해 말 출시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다.
호주 회사 인젯 디지털 에어로졸이 개발해 캐논에 라이센스를 준 이 에어로졸은 건전지형 흡입기처럼 보인다.
이 제품은 직경 2~20마이크론의 방울들을 분사하는데, 방울들이 작아서 페를 통해 흡수되기 쉽고 때로는 직접 혈류로 스며들기도 한다. 인젯은 이 흡입기가 약물을 알약이나 패치보다 더 빠르게 투여하고 주사 바늘보다 통증이 적으리라고 예상한다. 니코틴을 채운 흡입기를 금연 장치로 시험하는 임상실험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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