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는 창업주인 고(故) 장학엽 회장이 1924년 10월 3일 평남 용강군 진지동에 진천 양조상회를 설립하면서 출발했다.
기업 역사로는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오래된 회사다.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에 순곡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 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는 제조공정에서 빌어온 로(露)를 붙여 지난 1975년부터 진로라는 회사명을 사용해 왔다.
술집에서는 ‘두꺼비 한 병 주세요’라는 주문이 익숙할 정도로 두꺼비는 진로의 이미지를 대변하지만 창업 당시 진로의 캐릭터는 원숭이였다.
당시 서북 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福)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 그 후 남쪽에서는 원숭이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진로가 전국으로 영업을 개시한 1954년 원숭이 대신 두꺼비가 새 캐릭터로 등장했다.
진로 홍보실 이규철 부장은 “떡 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낳으라는 덕담에서 유래했다”며 “두꺼비에서 연상되는 왕성한 번식의 이미지가 진로 소주에 딱 맞아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실제 진로 소주의 판매 기록은 승승장구한 두꺼비의 역사를 대변해 준다. 1924년 창업 이래 2006년 말까지 생산된 진로 소주는 360ml 병으로 약 324억병. 소주 650 상자가 적재되는 11톤 트럭으로 166만대 분이다.
소주 병을 눕힌 길이(21.5cm)로 연결하면 서울-부산간(428Km)을 8,138회 왕복할 수 있다. 또한 지구 둘레를 174회 돌릴 수 있으며,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를 18번 연결할 수 있는 규모다.
2006년 한해만 놓고 보더라도 진로의 연간 생산량은 약 18억병, 하루 평균 생산량은 560만병이 넘는다.
매월 약 1억4,000만병의 참 이슬이 판매된다. 이 같은 엄청난 생산 및 판매량은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은 수준이다.
진로 소주는 2001년부터 전 세계 위스키, 보드카, 럼, 진 등의 판매량을 훨씬 앞질러 세계 증류주 시장(Distilled Spirits)에서 판매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희석식 소주의 강자 삼학과의 싸움 이겨
하지만 80년이 넘는 세월에 위기가 없을 수는 없는 일. 첫번째 위기는 지난 1965년에 찾아왔다. 정부가 식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을 증류해 빚는 증류식 소주의 제조를 금지하면서 주정에 물을 타는 희석식 소주로 제조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
이미 희석식 소주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삼학(三鶴)의 독무대에 진로는 과감하게 도전, 경품 행사, TV·신문 광고 등을 통해 필사적으로 시장 확대를 꾀했다.
삼학과의 경쟁이 끝날 무렵 마침내 행운의 여신은 진로에게 미소 지었다. 당시가 1970년. 이후 현재까지 37년간 진로 소주는 소주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년이 넘는 태평성대가 계속되던 진로에 또 한번의 위기가 닥친다. 각 도(道)마다 1개의 소주업체를 두는 자도주 의무 구입제가 1996년 위헌 판결을 받은 후 지방 소주 업체들의 방어가 심해지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던 진로가 다음해 9월 부도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진로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도로 인해 진로라는 한 기업의 역사는 물론 한국 소주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된다.
진로가 1998년 10월 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탄생시킨 대나무 숯 여과 소주 ‘참眞이슬露’가 바로 주인공이다.
참이슬은 출시 6개월 만에 1억병, 9개월 만에 2억병을 돌파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당시 시장 점유율은 38%였지만 2년 만에 단일 브랜드로 전국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참이슬의 성공으로 진로는 경영 정상화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참이슬이라는 이름이 기업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고 기업 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한 효자상품이 된 셈이다.
참이슬은 대나무 숯의 효능을 소주 제조과정에 접목시켜 잡미와 불순물을 제거한 제품으로 깨끗한 맛과 숙취가 없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특히 참이슬 제조방법에 도입한 대나무 숯 여과공법은 ‘죽탄과 죽탄수를 이용한 주류의 제조방법’으로 기술특허를 취득, 종전의 소주 제조공정과는 다른 신공법으로 평가 받았다.
참이슬 브랜드 위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참이슬 브랜드의 위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5월에는 출시 7년 7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00억병을 돌파, 국내 주류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단순하게 계산해 봐도 100억병은 지금껏 국내 성인(3,500만명 기준) 한 사람이 285병씩 마신 양이다.
진로 홍보실 전영태 차장은 “하이트 맥주가 출시한지 9년 만에 100억병을 넘어섰고, 박카스는 44년 동안 152억5,000만병이 팔렸으며, 칠성 사이다는 50년 만에 100억병을 돌파한 국내 다른 장수 브랜드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참이슬의 판매량은 대단하다”고 자평했다.
소주 시장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기는 했지만 진로는 아직 정상적인 기업이 아니었다. 지난 1998년 화의를 거쳐 2004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매각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2005년 3월 30일 공개 입찰을 앞두고 알짜 기업인 진로를 인수하기 위해 롯데, 두산, CJ 등 내로라 하는 국내 기업은 물론 일본기업 등 10여 개 업체들이 뛰어들었다.
매각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의 술인 두꺼비를 일본에 내줄 수 없다’며 네티즌들이 진로 매각 반대 서명을 벌이는 등 두꺼비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새삼 달아오르기도 했다.
곡절 끝에 두꺼비를 품에 안은 것은 하이트.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하이트는 진로 매각 입찰에 참가한 10곳의 컨소시엄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3조4,100억원을 써내 진로를 최종 인수했다.
하이트는 당초 공개 입찰의 10여개 기업 물망에도 거론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비밀 작업을 거쳐 진로 인수에 성공, 소주와 맥주로 대표되는 국내 주류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새 주인을 맞은 진로는 올해 재 상장(IPO)을 추진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통해 세계 초우량 주류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진로에 대한 도전 여전, 9대 1 싸움 벌어져 하지만 진로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진로 매각 절차가 마무리 되자마자 두산주류BG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해 2월 소주 신제품인 ‘처음처럼’을 내놓은 것.
처음처럼은 참신한 브랜드 명을 채택한데다 여성 애주가들이 증가하는 트렌드를 간파, 알코올 도수 20도의 순한 소주를 표방하면서 시장에서 약진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선양, 금복주 등 지방 소주 업체들도 신제품을 출시, 호시탐탐 수도권 시장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어 두산을 포함한 9개 지방 소주업체와 경쟁하는 9대 1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진로는 지난해 8월 알코올 도수 19.8도의 ‘참이슬 후레시(fresh)’를 새롭게 출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참이슬 후레시는 지리산 및 남해안의 청정지역에서 자란 3년생 대나무를1,000도에서 구워 만든 숯으로 정제해 빚은 천연 알칼리 소주로 미네랄이 풍부하며 깔끔하고 깨끗한 맛이 특징이다.
참이슬 제조에 필요한 천연 대나무 숯은 한달 평균 12톤에 이를 정도로 진로는 대나무 숯의 정제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기존 참이슬의 천연 대나무 숯 정제 공법의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BCA공법과 메링 시스템 등 신기술을 도입했다.
BCA(Bamboo Charcoal Agitation) 공법은 물이 소용돌이 치며 도는 와류작용을 이용해 물과 대나무 숯의 접촉 공간을 증대 시켜 대나무 숯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 칼륨이온 등 필수 미네랄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공법이다.
또 메링(Marrying) 시스템은 고급 위스키를 제조할 때 사용되는 공법을 빌린 공정으로 대나무 숯 정제과정을 거쳐 제조한 소주의 모든 성분에 미세한 운동작용을 지속적으로 가해 각각의 성분이 유기적인 분자구조로 안정화, 균질화됨으로써 첫 맛부터 끝 맛까지 깨끗하고 깔끔한 맛을 유지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하진홍 진로 사장은 참이슬 후레시 출시 행사에서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소주의 맛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지만 80년 전통의 노하우와 소주 정제 원천기술을 통해 소주 알코올 도수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던 20도의 벽을 허물었다”고 밝혔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법칙 아래 소비자들의 저도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50개국에 수출… 브랜드 인지도 높아
참이슬 후레시는 출시 2개월 만에 1억병 판매를 돌파한데 이어 5개월 10일만에 3억병을 판매, 초기에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지방 소주 업체들이 16.9도짜리 신제품을 내놓는 등 저도 소주가 시장의 대세인 만큼 진로는 참이슬 후레시를 국내 시장을 선도할 대표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로는 이제 세계 시장을 겨냥한 대장정에 올랐다.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의 박문덕 회장은 진로 인수가 최종 마무리된 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메시지에서 “이제 두꺼비를 들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진로와 하이트의 진정한 시너지와 가치는 내수 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에 따른 국내 주류시장 보호와 성장, 그리고 국민 대표주인 진로 소주의 무한한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시장에서 진로 참이슬의 브랜드 인지도는 이미 높은 편이다. 진로는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 등 세계 50여 개 국에 수출되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 진로의 활약상은 이미 성공사례로 꼽혔다. 앞으로 진로는 중화권 시장과 북미권 시장 등을 개척, 오는 2010년까지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 매출 비중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장기 비전을 제시해 놓고 있다.
이 같은 비전을 바탕으로 진로가 올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중국. 무한한 잠재력을 보유한 중국 대륙을 공략해 일본에 이어 제2의 해외시장 거점으로 육성,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창조하겠다는 것.
중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이 늘어나면서 기존 백주 대신 저도주를 점차 선호하는데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브랜드에 대한 젊은 소비자들의 호응도 높다.
더욱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상하이 월드 엑스포 등 대형 국제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시장 확대를 노려볼 만한 호재를 갖고 있다.
진로는 연내 중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신규 대리점 모집을 통해 유통망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공략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2009년까지 중국에대한 수출액 1,000만 달러, 전체 수출 가운데 점유율 86%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업의 흥망을 가를 만한 위기와 시련 속에서도 매번 어려움을 헤쳐 나온 진로의 도전은 앞으로도 쭉 계속돼야 한다.
진로의 생명수이자 한국의 대표 장수 브랜드인 진로 참이슬이 세계 속의 브랜드로 빛나는 그 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는 까닭이다.
이효영 서울경제 기자 hylee@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