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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 기자의 그림 이야기]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세계적인 걸작이 수없이 많은데 예술분야는 물론 의학계에서도 모나리자를 화두(話頭)로 삼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마케팅과 유명세,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묘한 행적이 일조하기는 했지만 모나리자의 명성에는 전례 없는 창의성과 예술성이 바탕이 되고 있다.

비대칭과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기법, 르네상스 미술사를 새로 쓸 정도로 평가받는 스푸마토 기법, 그리고 1mm 미만의 미세한 붓질 등은 한해 550만명이 이 그림을 찾는 근원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수수께끼 하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자기 전시실을 갖고 있는 그림·문학·미술·음악 등 예술분야에서부터 과학은 물론 정신과ㆍ내과ㆍ치과 등 의학계에 이르기까지 수 백 년 동안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67세에 그리기 시작해 죽기 전까지 20여 년간 매달린 ‘모나리자(Mona Lisa)’다.

모나리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이렇다. 몬나(Monna)가 귀부인을 부르는 호칭인 ‘마돈나(Madonna)’를 줄인 말이므로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 또는 ‘리자 마님’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라 조콘다’, 프랑스에서는 ‘라 조콩드’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세로 77㎝에 가로가 53㎝인 포플러 나무판의 작은 유화 그림이다.

신비한 미소, 빛과 어둠이 동시에 묻어나는 두 손, 어둡게 묘사된 피부에서도 배어나는 빛 등이 압권인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는 완벽주의자 다빈치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작품 중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그림이다. 또한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 가운데 가장 크며, 가장 나중에 그린 것이기도 하다.

마케팅과 다빈치 행적 유명세 보태

세계적인 걸작이 수없이 많은데 왜 그렇게 모나리자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물론 여기에는 유명세와 마케팅, 그리고 다빈치의 묘한 행적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
모나리자는 지난 1911년 8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장식가인 빈센초 페루자가 그림을 훔쳐가면서 유명세를 호되게 치르고, 2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국가적인 홍보 마케팅에 힘입어 더욱 명성을 높이게 된다.

다빈치의 묘한 행적도 플러스알파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다빈치가 그린 그림에는 꼼꼼한 기록이 있다.

또한 여러 각도에서 대상을 그린, 드로잉이 가득한 스케치북이 항상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는 유독 모나리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끝없는 에피소드를 생산해 내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는 바람을 타고 세상 끝까지 전해지는 사이클이 계속되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치아가 없으며 잇몸이 부어있다는 치과의사의 소견은 물론,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아 고지혈증을 앓고 있다는 내과의사의 진단도 있다.

여기에 동성애적 성향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는 다빈치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는 추측이 그럴듯한 근거를 갖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모나리자의 명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적인 걸작은 미술에 ‘젬병’이라도 눈길을 끄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다.

비교역사학자인 도널드 새순 런던대학 교수는 “마케터들은 유명한 작품의 명성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지 새로운 명성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며 위대한 작품성 없이는 명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 모나리자는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천상의 미소’에 비유되는 신비로운 미소가 전례 없는 창의성, 그리고 예술성을 돋보이게 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의 비밀 담겨

모나리자에 대한 끝없는 추측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력한 스토리는 다빈치가 1503년 이탈리아의 부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 디자노비 델 조콘도의 19살 아내인 리자 게라르디나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셋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였다. 다빈치는 4년 동안 그녀를 그렸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당시 다빈치는 이탈리아 예술계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에서 받던 재정적인 지원이 끊기면서 가난하게 지냈다.

마침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가 그를 후원해 주겠다며 프랑스로 초대하자 이탈리아를 떠날 각오를 하고 미완의 모나리자를 짐 꾸러미에 함께 넣는다. 모나리자가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리게 된 이유다.

과작(寡作)으로 유명했던 다빈치이기도 했지만 이 그림은 16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들이는 유난을 떨었다. 한 작품에 장기간 매달렸다는 사실은 차체하고라도 그림 속에는 수많은 비밀과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의 비결이 담겨있다.

우선 비대칭과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들 수 있다. 이는 과학적이라고 표현해도 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러면 모나리자의 얼굴을 반으로 갈랐을 때 왼쪽과 오른쪽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얼굴은 무표정한 데 반해 오른쪽은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고, 머리의 가르마는 당시 여인들과 달리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이는 관람객이 모나리자의 눈을 쳐다보면 모나리자가 더 크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다시 입가를 보면 무표정한 얼굴로 보여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시각과 관련된 비밀이 숨어 있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마거리트 리빙스턴 하버드 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왼쪽의 무표정한 부분은 우뇌의 작용에 따라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며 “이는 다빈치가 시각적 메커니즘의 원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대칭에 대해 한창희 창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물리학 측면에서의 해석을 시도했다. “만유인력·전기력·자기력·핵력 등을 하나로 통합한 ‘통일장 이론’이 바로 자발적인 대칭성의 깨짐에서 비롯된다.

우주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시공간의 한 점에서 함께 생겼다가 소멸한다. 우주 전체로 보면 반물질은 없고 물질만 존재하니 우주는 크게도 아니고 아주 살짝 비대칭적으로 생겨먹었다.” 한 교수는 모나리자의 비대칭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우주의 신비로움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콘트라포스트 완벽하게 소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에 표현한 것은 오늘날 사진관에서 즐겨 사용하는 자세인 콘트라포스트(contrappost) 비법에 담겨있다.

그리스 조각에서 비롯된 이 기법이 회화에서 무르익기까지는 수 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콘트라포스트는 주인공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으로 그림 속 주인공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사진처럼 묘사하기 위한 시도다. 앉아 있는 사람이 몸통 방향과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으면 전체 모습이 역동적으로 보이는 원리다.

많은 중세 화가들을 좌절에 빠뜨렸던 콘트라포스트 기법은 대부분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복잡한 구도가 적용되는 그림에 사용됐다. 모나리자처럼 개인의 초상화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기법이었다. 다빈치가 초상화에 콘트라포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완벽하게 성공해 낸 혁신의 순간이다.

여기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완성시킨 미술적인 기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르네상스 미술사를 새로 쓸 정도로 평가받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다.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 속으로 사라지다’는 의미다. 마치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깔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도록 부드럽게 옮겨가도록 하는 명암법을 말한다.

모나리자는 다빈치 공력의 산물

프랑스 화가 겸 미술사가인 자크 프랑크는 다빈치의 엄청난 공력으로 모나리자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시력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인 4분의 1㎜에 이르는 초단 길이의 선으로 색칠하기를 반복한 뒤 극도로 엷게 희석한 물감을 층층이 그림 전체에 덧칠하고 다시 미세한 붓질로 색을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그림을 완성시켰다는 것.

다빈치의 붓질은 결코 1~2㎜를 넘어가지 않았다고 자크 프랑크는 단언한다. 특히 그림의 중요한 부분에서는 3분의 1~4분의 1㎜ 크기의 붓질로 채색을 해 가면 화면을 채웠다.

스푸마토 기법은 모나리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해 주는 주요 지점인 눈가와 입가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효과를 줘 얼굴의 표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당시 화가들은 계란 노른자를 섞어 비교적 잘 마르는 템페라 물감을 많이 사용했지만, 다빈치는 템페라보다 더디 마르는 유화를 택했다. 한번 칠한 붓질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다시 작업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림이 커질 수 없는 요인이기도 했다. 유화는 기름의 농도에 따라 수채화처럼 투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빈치 혁신의 흔적이 발견된다. 남들이 쓰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되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해한 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혁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다빈치는 말하고 있다.

한해 550만명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보석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제일 처음 보고 싶은 그림으로 모나리자를 꼽는다.

이탈리아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2000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주관식 질문에 응답자의 85.8%가 모나리자라고 답할 정도다.

프랑스를 문화 강국으로 만든 주역 중 모나리자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모나리자는 시대적 아이콘으로 거듭 변신하면서 프랑스를 문화 강국으로 만들어줬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스타의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해 준 주인공이다.

서양장기인 체스의 명인 에드워드 거펠드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경기를 ‘조콘다 경기’라고 불렀으며, 제이 리빙스턴과 레이 에번스는 1945년 영화 ‘캡틴 케리 USA’에서 부른 ‘모나 리자’로 돈방석에 올랐다. 이 노래는 1950년 7월 미국 인기순위 1위에 올랐고,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됐다.

팝아트를 비롯해 현대 미술에서 모나리자를 다루지 않은 유명 작가가 없을 정도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모나리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16세기 천재화가 다빈치가 남긴 ‘신비의 미소’는 500년 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학교에서는 물론 기업에서까지 창의력과 상상력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요즘 다빈치가 남긴 명작 모나리자는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장선화 서울경제 기자 indi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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