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자원의 고갈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돈이 있어도 석유를 수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신재생 에너지, 그 중에서도 수소 에너지가 해법일 수 있다. 하지만 수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수소경제시대의 도래는 아직도 멀다.
석유경제시대와 수소경제시대의 괴리를 메워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할 주인공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꼽는다. 특히 원자력 발전 기술을 이용하면 대량으로 수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에 안전한 핵폐기물 처리, 그리고 원자력 발전 기술의 수출까지 이루어진다면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수소는 가연성 가스로서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우주 질량의 약 75%, 분자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무궁한 에너지이자 이용 자체가 지구온난화 방지대책이 된다.
하지만 수소는 석탄이나 석유같이 채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1차 에너지가 아니다. 수소를 함유한 물질을 분해해야 얻을 수 있는 2차 에너지다. 현재로서는 물 분해를 통해 수소를 얻고 있는데, 투입되는 전기량에 비해 생산되는 양이 적어 에너지 효율성을 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할 주역으로 원자력 발전 기술의 하나인 초고온가스로(VHTR)가 부상하고 있다. 초고온가스로는 수소경제시대 진입의 핵심 걸림돌 중 하나인 수소의 대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수소 생산하는 초고온가스로
초고온가스로는 원자로에서 발생되는 고온의 열을 이용해 열화학적인 방법으로 수소를 값싸게 생산한다. 특히 이 기술은 전력 생산만 가능했던 기존 원자력 기술의 활용영역을 확대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동안 수소 생산은 전기를 이용한 물 분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투입되는 전기의 양에 비해 생산되는 양이 적어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노출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초고온가스로는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950℃의 고온을 이용해 물을 열화학적으로 분해, 수소를 생산한다. 열화학적 수소 생산 방법은 황(H2SO4)과 요오드(HI)가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는 분젠반응에 물(H2O)과 고열을 공급해줌으로서 수소를 분리해 내는 것이다.
기존 원자로의 경우 열교환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열이 300℃ 내외인 것과 달리 초고온가스로는 3배 이상의 고온을 얻을 수 있도록 개발될 예정이다.
다만 초고온가스로는 원자로 노심의 온도가 1,200℃에 달하기 때문에 고온을 견디며 안정적으로 핵분열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핵연료는 흑연으로 감싸는 구슬형을 사용하며, 냉각재 역시 고온에 대한 안정성이 뛰어난 헬륨가스를 사용하게 된다. 헬륨가스는 원자로의 온도를 냉각시키며, 열교환기를 통해 수집된 열을 수소 생산을 위한 열화학 공정으로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초고온가스로가 수소 생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소생산 공정에 사용된 후에도 고온이 유지되는 헬륨가스로 발전용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경수로는 열 출력의 33%를 전기로 바꿔주는 수준이지만 초고온가스로의 경우 헬륨가스터빈을 이용하면 열 출력의 50%를 전기로 바꿔주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고효율 원자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수소생산원자로기술개발부의 이원재 박사는 “국가 차원의 개발의지가 반영된다면 2023년께 초고온가스로 건설이 가능하다”며 “전력생산을 위한 헬륨가스터빈의 국내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약 55%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듐냉각고속로(SFR) 같은 고속로와 병행한다면 핵연료의 심층 연소를 통해 초고온가스로에서 사용한 연료를 고속로에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고온가스로는 열 출력 200㎿급 실증시스템 개발이 이뤄지면 이후 열 출력 600㎿급 상용로 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다. 초고온가스로의 경우 열 출력 기준으로 100㎿당 연간 1만 톤의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중소형 원자로이기 때문에 열 출력 3,000㎿급 경수로와 비교해 동일한 부지 내에 600㎿급 5기를 건설할 수 있다.
핵폐기물 태우는 SFR
현재의 원자력 발전 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인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이 검토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소듐냉각고속로다.
소듐냉각고속로는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중성자의 속도를 그대로 사용해 에너지 효율이 높다.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 사용하는 기존 원자력 기술과는 반대인 셈이다.
오는 2028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소듐냉각고속로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을 거쳐 추출된 플로토늄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2~4%로 농축된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기존의 원자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20기의 원자력 발전소중 16기의 경수로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이다. 이 두 가지 구성 성분 중 핵분열을 일으킨 우라늄-235는 플루토늄-239로 바뀐다.
하지만 전체 연료의 95.2%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사용 후 핵연료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즉 사용 후 핵연료는 표면만 그을린 목재나 석탄처럼 태울 수 있는 연료의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
소듐냉각고속로는 바로 고속 중성자를 이용해 사용 후 핵연료를 모두 태워버리는 원자로다.
현재 한국은 비(非) 핵확산 협정에 따라 사용 후 핵연료를 실험이나 상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용 후 핵연료의 금속 피복을 벗겨내 내용물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핵연료 재처리에 해당하며, 이를 원자폭탄 제조에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이 같은 비 핵확산 협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방법으로 찾아 낸 것이 바로 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이다.
이 기술은 기존의 사용 후 핵연료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플로토늄만 추출하는 습식 재처리와 달리 건식 재처리로 플로토늄과 함께 핵종으로 불리는 방사능 물질을 함께 추출해 사용한다. 즉 파이로 프로세싱을 거친 플로토늄 연료(TRU)는 플로토늄만을 추출해 핵무기용으로 전용하는 것이 어렵고, 핵물질 감시체계에 쉽게 감지되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소듐냉각고속로는 원자력 발전의 뜨거운 감자인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줄이면서도 최근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우라늄 연료 수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수출산업으로 진화 필요
이처럼 차세대 원자력 발전 기술을 이용해 대량의 수소를 생산하거나 핵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원자력산업 규모가 세계 6위임에도 불구하고 수출 실적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 기술의 진화뿐만 아니라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진화도 필요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에 나서기 어려운 상태다. 이는 원자력 기술 도입 초기에 이루어진 족쇄 때문이다.
즉 미국 등으로부터 원천기술을 습득하면서 수출을 할 경우 원천기술 보유국으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한 것.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수출에 나설 수 있는 영역은 연구용 원자로 건설, 그리고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소형 일체형 원자로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연구용 원자로 수출을 추진 중인 곳은 네덜란드가 2016년 가동할 예정인 팔라스(PALLAS). 최대 열 출력 80㎿급인 팔라스는 연구용 원자로로서는 상당히 크며, 사업 규모 역시 1조원에 달한다.
네덜란드는 지난해 9월 입찰 자격이 있는 후보기관에 대한 선정을 시작해 지난 6월 한국의 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과 프랑스의 아레바(AREVA),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인밥(INVAP) 등 3개사를 입찰 대상자로 압축한 상태다.
연구용 원자로 수출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본부의 하재주 본부장은 “현재 세계 각국에는 250기의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 중이지만 노후 등으로 인해 교체 수요가 예상 된다”면서 “개도국의 신규 수요도 우리나라가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국이 보유한 연구용 원자로는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각종 방사선 의료장비와 비파괴 검사용 장비에 사용되는 방사선 생산을 담당하고 있어 교체를 할 때 용량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원자로 역시 수출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열 출력 330㎿급으로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했고, 원자로의 핵연료와 주변장치들이 하나로 일체화됐기 때문에 핵확산 문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실제 스마트 원자로는 기존 상용 원자로와 달리 냉각장치, 증기 발생기 등이 원자로 내부에 일체형으로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원자로 외부에 증기 터빈 발전기를 부착하면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 연결하면 증기의 열을 이용해 담수를 생산할 수도 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대형 원자로 투자가 어려운 개도국에 적합하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물 부족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해수 담수화 시장 공략도 가능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김긍구 박사는 “스마트 원자로는 소형으로 국내 상용 원자로의 5분의 1수준인 5,000억 원으로 건설이 가능하다”면서 “전력수요가 크지 않은 개도국의 경우 먼저 1기를 건설하고, 전력수요에 맞춰 추가 건설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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