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통해 미국의 산업기술체험관들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전시물의 설치와 구성, 업그레이드, 그리고 운영자금 마련에 이르기까지 전 부분에서 기업들의 전(全)방위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실제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의 주 요 전시실과 전시물은 기업 또는 기업가들이 후원한 것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산업기술체험관 익스플로러토리엄은 기업과 기업가의 후원금 비중이 전체 예산의 40%나 되며, 이를 바탕으로 체험형 전시물을 직접 제작하고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미국의 산업기술체험관은 기업들이 만들고 기업들에 의해 운용되는 메이드 인 엔터프라이즈 산업기술체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기술체험관의 동반자, 기업
미국 산업기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를 보려면 시카고의 하이드파크에 가라는 말 이 있다. 바로 그곳에 미국 산업기술체험관 의 대표주자인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이 둥 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과학산업 박물관은 미국의 유명 유통업체인 시어스 로 벅 앤드 컴퍼니의 줄리어스 로젠왈드 회장 이 산업기술문화 진흥을 위해 건설한 것으로 '눈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기술'을 모토삼아 지난 1933년 개관했다.
여기에 처음 들어서는 관람객들은 누구 나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3개층 5만6,000㎡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전시장, 그리고 그에 걸맞은 초대형 전시물 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온 몸이 압도되는 것.
하지만 홍보담당자인 리사 마이너는 "이 곳이 미국 산업기술체험관의 모태로 불리게 된 것은 75년의 전통이나 규모 때문이 아니 다"며 "그 진가는 기업과 함께 생동하는 전시 물에 있다"고 강조한다. 무슨 뜻일까.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전시 물을 살펴보니 과연 기존의 산업관이나 과 학관과는 다른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주요 전시실과 전시물마다 거의 어김없이 붙어있 는 기업들의 로고와 기업인들의 이름이 그 것이다. 마이너는 "이것들은 각 전시실의 설치를 후원했거나 전시물을 기증한 기업과 기업 인"이라며 "급변하는 산업기술 트렌드에 맞 춰 산업기술체험관도 항상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메세나 활동은 산업기 술체험관의 알파요, 베타"라고 말했다.
실제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많 은 전시물들은 기업 및 기업가들의 후원, 제 품 기증, 합작으로 일궈낸 메세나 활동의 산 물이다. 일례로 현대 농업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2층 '팜 테크' 전시실의 대형 트랙터는 농기 구 제조업체인 잔디어가 기증했다. 또한 모 토로라는 3층 산업기술관 내 기획전시실에 자사의 초기 모델인 핸디-토키부터 최신 모 델인 레이저에 이르는 모든 기종을 전시하며 휴대폰 기술과 디자인의 변화를 일목요연하 게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의 상징물이 된 U 보트(U-505)와 보잉 727 항공기 실물 또한 각각 미 해군과 유나이티드 항공의 기증품 이다. 이외에도 UPS, 보잉, JC페니 백화점, L.L.빈 등 다양한 기업들이 전시장 곳곳에 자사 제품을 중심으로 산업기술의 변천사를 조망할 수 있는 체험공간을 설치·운용하고 있다.
메이드 인 엔터프라이즈
이 뿐만이 아니다. 기업과 기업가들의 메세 나는 기부금으로도 이어져 산업기술체험관 살림에 직접적 도움을 주고 있다. 한 해 예 산의 10% 이상이 이들의 기부금으로 충당 되고 있으며, 그 비중은 매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7년의 경우 전체 예산의 13%에 해당하는 377만 달러의 기부금이 답지했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은 이렇게 모인 기부 금을 통해 최신 전시물 수준을 유지하고 산 업기술 인재양성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규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 자체가 기업인에 의해 설립 됐다는 점에서 기업이 만들고 기업에 의해 운용되는 '메이드 인 엔터프라이즈 산업기술 체험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 2007년 4월 시카고 과학산업박물 관이 총액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 형 기금모금사업인 '과학의 재발견(Science Rediscovered)' 프로젝트를 선뜻(?)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기업들의 메세나 활 동과 무관치 않다.
정부 출연금이 610만 달러에 불과해 사실 상 기업들의 후원 여부에 사업의 성패가 좌 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업 추진 7개월 여 만인 지난해 11월까지 1억2,800만 달러의 재원이 확보됐는데, 이중 5,080만 달러가 기 업과 후원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된 것. BP 재단, 모토로라 재단, 아메리칸 패밀리 인슈 어런스, 보잉, 혼다, 페오플레스 가스, 애보 트, 올스테이트, 백스터, 컴애드, 도미닉스 등 무수한 기업들이 산업기술문화 진흥을 위 해 거금을 내놓았다.
특히 기업가를 중심으 로 한 개인들의 기부금은 무려 7,150만 달러 에 달했다. 마이너는 "그동안 기업들과 쌓아온 유기 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산업기술체험관의 사 회적 역할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주 효한 것 같다"며 "올해 상반기쯤에는 목표액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은 이 자금을 바 탕으로 '창조적 리더십을 갖춘 차세대 공학 도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 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기존 전시 물의 교체와 체험형 전시물의 보강, 그리고 관람객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 및 워크숍을 강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오는 2011년까지 전체 전시장의 90% 이상을리모델링할 예정이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의 데이비드 모제나 관장은 "기업과 기업인들의 후원은 산업기술체험관의 궁극적 수혜자인 그들이 그 같은 혜택을 공공과 나눌 수 있는 사회문화적 접점"이라며 "이는 부족한 정부 재원에 의존하고 있는 여러 산업 기술체험관들에게 하나의 모범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원금으로 전시물도 직접 제작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과 함께 산업기술 체험관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익스플로러토리엄이 다.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의 제조에도 참 여했던 세계적 물리학자 프랭크 오펜하이머 가 설립한 것으로 산업기술 체험이라는 측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을 보유 하고 있다.
익스플로러토리엄 역시 미국 내 여타 산 업기술체험관과 마찬가지로 메세나로 대변 되는 기업 친화적 경영구조를 갖추고 있다. 약 330만 달러에 이르는 한 해 예산중 기업 과 기업가의 후원금 비중이 40%나 된다. 실 제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포드, HP, 시티 은행, 도이치뱅크, 인텔, 구글, 바이엘, 시스 코, 어도비시스템 등 굴지의 기업들이 기부 금 또는 전시 후원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지 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중 소니는 최근 진 행한 중국 순회전시에 재정적으로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익스플로러토리엄의 데니스 바텔 관장은 “전시 규모 면에서는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라 빌 레트 과학산업관 등에 뒤지지만 700 여종의 작동형 전시물들을 필두로 전 체 전시물의 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부 한다”며 “산업기술체험관으로서의 효 용성에 주목한 기업들의 후원이 잇따르 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익스플로러토리엄의 최대 강점은 예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각종 체험형 전 시물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기술에 대한 친근감을 형성하고 호기심 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의 니즈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춤화된 전시물을 다수 확보해야 한다는 전시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익스플로러토리엄은 자체적으 로 전시물 제작 능력을 갖춘 수십 명의 전문 엔지니어와 공학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전시관 2층에 별도의 개방형 공작실을 마련, 전시물의 모든 제작과정을 관람객들에게 공 개해 또 다른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텔 관장은 “축구를 해보지 않으면 축구 에 흥미를 느낄 수 없듯이 산업기술 인재양 성도 산업기술에 대한 체험에서 시작된다” 며 “재미있는 산업기술체험관은 제2의 빌 게 이츠, 스티브 잡스, 그리고 헨리 포드를 탄생 시키는 인큐베이터와 같다”고 강조했다.
현재 익스플로러토리엄의 전시관은 100 여년 이상 사용해 낡고 노후화된 상태다. 이 에 따라 오는 2011년까지 총 3,000만 달러의 기금을 확보, 연면적 3만㎡ 규모의 최신식 전시관으로 확대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이 를 위해 익스플로러토리엄은 입장수입과 상 점판매 수익의 일부를 적립하고 있으며, 미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원도 받을 예정이 다. 물론 기금의 대부분은 기업과 기업가의 기부금으로 조성될 전망이다.
시카고·샌프란시스코=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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