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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기르는 원자력발전소

Ocean Farm by Nuclear Plant

원자력발전소는 매초마다 수십 톤의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바다로 쏟아낸다. 이를 온배수라고 하는데, 자연 상태의 바닷물보다 온도가 약 7℃ 높다.

최근 한국해양연구원이 이렇게 버려지는 온배수의 열에너지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온배수의 배수구 주변에 온수성 어류들이 좋아하는 최적의 서식환경을 조성함으로서 돌돔, 감성돔 등 고부가가치 어종들을 양식하는 ‘해양목장’이 바로 그것. 이 같은 해양목장이 현실화되면 수산자원 고갈 방지는 물론 어민 소득증대, 관광자원 활용 등 다양한 환경적·경제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골칫덩이 온배수의 변신
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의 고열을 활용해 증기를 만들어낸 뒤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쓰인 증기는 냉각공정을 거쳐 다시 물로 만들어진 후 원자로에 재투입돼 위의 공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증기의 온도가 수백℃에 이르 다보니 원자력발전소의 냉각공정에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냉각수가 쓰인다. 1,000㎿급 원자력발전소 1곳의 냉각수 사용량만 무려 1초당 50~60톤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고리·울 진·영광·월성 등 국내 4개 원자력발전 단 지에서 쓴 냉각수의 총량은 227억2,000만 톤이나 된다. 이쯤 되면 이 냉각수를 과연 어디서 충당 하는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정답은 바다다. 사실상 바다 외에는 이만한 물을 1년 365 일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가 하나같이 바닷가에 건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냉각수로 사용된 바닷물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배수구를 통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이를 온배수(溫排水)라 고 하며 자연 상태의 바닷물, 즉 냉각수로 쓰이기 전의 온도보다 약 7℃가량 높아진 상태 로 배출된다.

문제는 막대한 양의 온배수 배출에 의해 냉각수 배수구 인근 해역의 온도가 상승한다는 것. 이는 김, 미역처럼 저온의 물에서 잘 자라는 해조류나 냉수성 어류 등의 양식장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또한 냉수성 어류들이 사라지고 온수성 어류가 모여드는 생물종의 변화가 일어나며, 기존 어류들의 숫자 및 다양성 감소로 어업 피해가 유발될 수 있다. 실제 지난 1990년부터 2006년까지 고 리·영광·울진 등 3개 원자력발전소에서 총 11건의 온배수 피해가 확인돼 1,766억 원 의 보상금이 지급된 바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입장에서 보면 온배수는 전기 생산을 위한 불가피한 결과물이자 골칫덩이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골칫덩이를 오히려 어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토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해 양연구원 산하 동해연구소의 박철원 박사 연구팀이 농수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 중 인 해양목장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불러온 혜안
해양목장이란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가 확산되는 해역에 인공 어초, 해중림(海中林) 등 을 조성해 온수성 어류들을 위한 수중도시를 만들고 그곳에 특정 종(種)의 물고기를 방류 해 기르는 새로운 개념의 친환경 양식기법이다. 해중림이란 어류들이 숨거나 뛰어놀 수 있도록 다양한 해조류로 숲을 조성한 것.

아직 정확한 마스터플랜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박 박사는 동해연구소 인근에 위치 한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 확산 해역에 총 355억 원을 투자, 해양목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양식 대상 어종은 돌돔, 감성돔, 능성어 등 고부가가치 어류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해양목장이 기존 가두리 양식과 다른 점 은 물고기를 가둬두는 울타리가 전혀 없다는 것. 물고기들이 도망가지 않을지 걱정되지 만 안심해도 된다. 박 박사는 “수온, 서식환경 등 모든 조건을 맞춰주면 물고기들은 그 지역을 떠나지 않는다”며 “소를 축사에 가둬 놓고 키우는 것이 가두리 양식이라면 해양목장은 방목쯤 된다”고 설명했다.

인위적 서식환경 조성, 방목 형태의 양식 측면만 보면 해양목장은 현재 경남 통영에서 성공리에 운영되고 있는 바다목장과 기본개념이 동일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도 근본적 차이가 하나 있다.

바다목장은 자연 그대로의 해수를 이용 하지만 해양목장은 자연 해수에 가해진 온배수의 열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 통영 바다 목장 건설의 주역이기도 한 박 박사 자신이 바다목장과 해양목장을 구분해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박 박사가 처음 해양목장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데에는 바다목장의 성공이 토대가 됐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 되면서 대책을 찾던 중 온수성 어종을 대상으로 한 바다목장이라면 온배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지역만큼 최적지가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 친 것. 국내에서 양식하는 어류들 대부분이 온수성 어종이며, 온수성 어종에 고부가가치 어종이 많다는 점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 용했다.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온배수 의 최대 단점이 최대 장점으로 탈바꿈한 것 이다.

생리대사 활성화로 경제성 탁월
그렇다면 이 같은 해양목장을 통해 얻게 될 메리트는 무엇일까. 단순히 온배수의 영향권 내에 수중 양식장을 만들어 어민들이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류 양식에서 온배수가 제공하는 효용성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그 중 핵심은 온배수의 열에너지가 물고기의 생장발육 촉진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 다는 것. 박 박사는 “물고기는 모두 냉혈동물로서 온혈동물과 달리 체온유지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며 “수온이 높아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면 생리대사 활성도가 좋아져 성장속도가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어류는 적정 수온 범위 내에서 온도가 높아지면 발육도 좋아진다는 얘기다. 일례로 7~28℃의 수온에서 살아가는 우 럭은 10℃보다 20℃에서 성장속도가 훨씬 빠르다. 냉수성 어류보다는 온수성 어류, 온 수성 어류보다는 열대어류가 더 빠르고 크게 자라며 분포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 가 쉽다.

이는 지난 1995년과 1998년부터 원자력 발전소 인근의 지상에 온배수 양식장을 운영 하고 있는 영광과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사례 에서도 확인됐다. 박 박사는 “10~27℃에 서식하는 넙치를 대상으로 10월부터 3월까지 자연 해수와 온배수에서 월동시켜 성장성을 비교했다”며 “그 결과 온배수로 키운 넙치의 중량이 무려 5배나 무거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성장촉진 효과만으로 어민들이 얻게 될 경제적 이득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 하다.

관광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해양목장은 관광자원으로서도 웬만한 아쿠아리움을 능가하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 울진 해양목장의 조감도를 보면 어린 물고기를 키워내는 치어 성육 장을 비롯해 어미고기 성육장 등 양식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중도시에 더해 어민 및 관광객들을 위한 외줄낚시 어장과 인공낚시터도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만 잡을 수 있었던 씨알 굵은 고가의 물고기들이 이곳에는 1년 내내 넘쳐나는 만큼 짜릿한 손맛을 느끼려는 전국의 강태 공들이 줄을 이어 찾아올 것이 자명하다. 또한 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이 동해의 해저 생태계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수중테마공원도 조성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해양목장 전체에 별도의 울타리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육지와 연결된 해저터널을 만들어 수중 및 수상 전망대를 운영한다는 것. 해양목장 하나로 어민 소득증대, 수산자원 고갈 방지, 관광객 유치,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박 박사는 이번 울진 해양목장 프로젝트 가 성공적으로 완수될 경우 앞으로 국내에 건설될 원자력발전소의 친환경성이 자연tm럽게 일반인에게 인식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역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직접적 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 박사는 “그동안은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 인근 해역을 수산 활동 제한구역으로 지정, 이곳에서 조업하던 어민들에게 고액의 피해보상을 하고 조업권을 환수해 왔다”며 “이것이 종종 지역주민의 이탈, 일하지 않는 주민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해양목장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원자력발전소와 지역산업이 모두 활성화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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