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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가혹한 정치의 고통이 사나운 호랑이의 위험보다 크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전쟁 등의 비상사태가 아니면 사람은 낮에 일하고 저녁에 휴식을 취하는 생활 패턴을 반복한다. 올여름 한반도에 전쟁은 없지만 시민들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편한 잠자리를 잘 수가 없다. 야간의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가 전국적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대로 서울의 경우 22일 무렵 야간의 기온이 25도 밑으로 내려간다고 해도 올여름 열대야는 30일간 지속하게 된다. 이 기간은 1994년 36일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된다. 결국 한 달 가까이 시민들이 잠자리를 설치며 피곤한 생활을 하는 셈이다. 2016년 여름의 기온이 얼마나 덥고 위험한지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있다. 온열질환자 수치다. 8월15일 질병관리본부(KCDC)의 집계에 따르면 8월7일~13일 주간에 열경련·열부종·열사병·열실신·열탈진 등 온열질환자가 수가 520명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역대 최고치에 해당된다. 7·8월의 사망자도 1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보면 더위는 단순히 수치로 파악되는 여름 정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유해 환경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치명적인 유해 환경에 놓이면 각자 생존의 방법을 찾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여름의 더위와 열대야를 이기려면 선풍기와 에어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 때문에 시민들은 에어컨을 맘껏도 아니고 눈치껏도 아니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정치권에서는 2016년 여름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개선의 방향을 두고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임시방편으로 접근하고 있다.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혹서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결국 앞으로 그때마다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야 한다. 국민이 더위와 열대야로 고통을 겪고 있고 심지어 질환과 사망으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2016년 여름의 해법에만 갇혀 있다.

‘예기’ 단궁에 보면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2016년의 한반도를 비춰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태산을 지나다가 어디선가 나는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공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로더러 깊은 산속에서 왜 울고 있는지 사연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여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여인은 산속에 살다가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남편도 같은 화를 당했다. 근래에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환(虎患)은 분명 위로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인의 슬픔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깊은 산속에 사니 호랑이의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시아버님의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라도 도시에 나가 살았더라면 남편과 자식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공자는 여인에게 왜 산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산속에는 가정(苛政·몹시 모질고 혹독한 정치)이 없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세금과 부역 등 가혹한 정치의 고통이 사나운 호랑이의 위험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사람은 물건을 사고팔 때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016년 여름의 전력 사용은 소비 활동이 아니라 질병과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생존 훈련이자 치료 행위다. 그간 에어컨 없이 살던 사람도 내년에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더위의 영향은 치명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요금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 현상은 전기요금이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21세기판 가정맹어호의 사례가 된다. 개인의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의 우려, 한국전력공사의 수익 구조 악화 등을 이유로 혹서와 혹한의 전기요금 체제 개선을 임시방편으로만 접근한다면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망각하는 일이 된다. 누진제 개선은 단순히 요금의 완화 여부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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