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지난주 주요 저축은행 대표와 임원들이 금융감독원에 다녀온 후 정책금융상품 대출이 아예 중단됐다”고 최근 상황을 설명했다. 한투 등 주요 저축은행들이 햇살론과 사잇돌대출 등 정책서민금융상품 대출 업무를 중단한 배경에는 정부의 강한 입김이 작용했다.
발단은 빠른 속도로 늘어난 가계대출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344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만 141조원이 증가했다.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마저 줄이며 ‘경기부진→실질소득 감소→빚 증가→소비 위축’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가구당 실질소득은 지난해 0.4% 줄어들었고 지난해 가계 이자수입에서 이자지출을 뺀 이자수지는 5조6,5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해 은행권에 소득 심사 등을 까다롭게 보는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을 적용한 데 이어 대출에서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비중을 높였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자 금리가 더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지난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여전사들의 대출증가액은 44조8,000억원으로 2015년(23조7,0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상호금융(34조4,000억원) 대출이 급증했고 저축은행(4조6,000억원), 여전사(5조8,000억원)도 대출이 늘었다.
제2금융권 대출이 뛰자 당국은 또 규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월 ‘제2금융권 가계대출 간담회’을 열고 3월부터 상호금융 등에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동시에 대출이 잘 이뤄졌는지 특별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이달에는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여전사가 고위험대출에 대해 충당금을 더 쌓게 하는 사실상 대출 총량규제도 내놓았다. 금융위는 이날도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을 주재로 ‘제1차 상호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신협·농협·수협·산림조합과 저축은행은 50%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난 104개 조합과 금융사는 현장점검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농협·신협 등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은 올해 가계대출의 증가목표를 절반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보험사 역시 가계대출 증가율을 지난해의 60% 수준으로 설정한 상태다.
하지만 규제 강화에 따른 불똥이 일부 저축은행의 정책금융이 중단되는 등 서민금융상품으로 튀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중금리(10% 내외)인데다 연체율이 지난해 말 기준 12.9%에 달하는 햇살론 등을 취급하는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규제책을 내놓으며 올해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의 공급을 지난해 5조7,000억원에서 7조원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업계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소득 등을 엄밀히 따져 대출을 해주면 되는데 저축은행들이 쉽게 일을 하기 위해 수익이 나는 높은 금리 상품만 취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상품 이용이 막힌 대출자들이 금리가 더 높은 대부업으로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은행권 대출이 막히자 지난해 4·4분기 기타금융기관(대부업 등) 대출액은 8조5,000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3조2,000억원이나 뛰었다. 한 민간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 수요는 그대로 있는데 규제만 하면 당연히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서민들이 자금을 융통할 통로는 만들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경우·이주원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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