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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정책·노조 눈치에...구조조정 '뒤죽박죽'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영향

큰 그림없이 임기응변 처방





지난 6월 베트남 국영기업 푸꾸옥 페트롤리움이 발주한 가스전 ‘블록 B’ 입찰. 수주 경쟁에 뛰어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아연실색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입찰에 명함을 올렸기 때문이다. 올 초 대우조선에 혈세를 추가 투입하며 “해양플랜트는 접고 상선과 특수선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설명이 공염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 조선사 임원은 “역시 ‘화장실에 가기 전과 후가 다른가’ 생각했다”며 “국민 혈세가 10조원 이상 투입된 업체가 별다른 제재도 없이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업에 다시 뛰어드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푸꾸옥 페트롤리움 가스전 프로젝트는 공급 과잉, 취약 업종을 대상으로 한 산업 구조조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업종에 대한 큰 그림 없이 임기응변적 처방에만 매달리다 보니 원칙과 방향성이 실종된 지 오래다. 조선 업종만 해도 정상 기업인 현대와 삼성중공업, 부실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을 동렬에 놓고 자산을 일률적으로 30%씩 줄이라는 것이 정부 정책의 뼈대였다. 그 결과 세 곳 중 어느 하나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설상가상 구조조정 난맥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심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핵심 정책인 일자리 대책과 배치되면서 정책 당국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이다. 여기에 노조 친화적 정부에 기대 막연히 시간 끌기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시장에서는 중형 조선사인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회생안을 두고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채권단과 정부 부처 일각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설을 흘리고 또 다른 부처는 두 기업 모두 회생 가능성이 낮다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처 간 엇박자도 문제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아예 버티기를 염두에 둔 듯한 목소리마저 나온다. 해당 조선 업체 임원은 “내년 6월 지방선거 탓에 (정부와 채권단이) 당장이 아니라 지방선거 이후에 (합병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이 정부가 일자리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구조조정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책 의지도 퇴색되고 일관성도 떨어지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 구조조정이 불황 너머를 보지 못하는 점도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가 확실히 키를 틀어쥔 것도, 해당 기업에 구조조정 작업을 일임하지도 못하는 새 주력 산업만 망가지고 있다. 해운 업종이 대표적이다. 한진해운 침몰은 한국 해운업의 선복량(확보한 선박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 양)을 6m 컨테이너 106만개에서 51만개로 쪼그라뜨렸다. 정부와 채권단이 ‘대마불사는 없다’는 원칙에 집착한 결과 해운업은 ‘원상복귀’를 위해 수십조원의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생존과 파산의 갈림길에서 판단 미스가 얼마나 큰 기회비용으로 귀결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무역대국을 뒷받침했던 해운업의 몰락은 조선과 철강 등의 산업으로 연쇄 파급되면서 한국 산업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칼을 쓰려면 업종 간 연결고리를 감안하고 또 불황 이후 활황까지 계산해야 한다”며 “그만큼 세심해야 하는데 재무적 구조조정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노조 입김이 지나치게 세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하려 해도 관성적 파업이 공식처럼 따르니 어렵다”며 “노사 관계가 후진성을 벗어나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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