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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20년 한국경제 다시 비상벨<5>]정권마다 메스만 들고 수술 못해…20년간 '노사로드맵' 잇단 좌절

■노동개혁 실패의 연속

성과임금제 도입·취업규칙 변경절차 간소화도 요원

"勞 투쟁 일변도 전략 벗어나 법·질서 준수 자세 필요"





“노사관계가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 관계로 남아 있는 한 기업 번영과 국가 발전은 물론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96년 4월24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재계 및 노동계, 정관계 인사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관계 개혁방안 보고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신(新)노사관계 구상’을 직접 발표했다.

정부는 이 선언을 공론의 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5월9일 노동계, 재계, 공익 및 학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각각의 주체는 ‘동상이몽’이었다. 재계는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 등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무노동 무임금 법제화 등을 원했고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 정치활동 보장 등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했다. 물론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반대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10월부터 한 달여간 관련 회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 가능하되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 협의’라는 정리해고제 관련 수정 공익안에 대해서도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과는 거리가 멀다”며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강력 항의했다.

결국 합의안은 도출되지 못했고 여당은 그해 12월26일 노동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당시 정부는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 확보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범 준수 등을 위해 노동법 개정안 처리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12월 10만명으로 시작한 파업 규모는 이듬해 1월 30만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결국 노동계 총파업 등으로 김 전 대통령은 노동법 재개정을 지시했다. 결국 복수노조는 허용됐고 정리해고제는 2년 유예됐다. 하지만 1997년 12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지 불과 2개월 만인 1998년 2월 정리해고제는 사실상 타의에 의해 도입됐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라는 메스를 꺼내 들었다. 2003년 9월 첫 모습을 드러냈고 정부가 11월 최종 채택한 로드맵에는 필수공익사업장 대체근로 허용, 무노동 무임금 원칙 유지 등과 함께 근로자가 사용자가 제시하는 노동조건의 변경을 거부할 시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변경해지제도’ 도입, 상급단체 및 대기업 노조의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 마련,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및 취업규칙 변경절차 간소화 등이 장기 검토과제로 포함됐다. 물론 노동계는 당시에도 “노무현 정부가 노사관계 로드맵을 강행해 노동운동을 말살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투쟁을 이어갔다. 로드맵 관련 법안은 그 뒤 3년이 지난 2006년 통과됐지만 장기 검토과제는 10년이 넘게 흐른 2017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이렇듯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노조는 파업 등의 방법으로 번번이 막아섰다. 일부는 외부요인에 의해, 또 다른 일부는 당초 개선안보다 축소돼 관철되기는 했지만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아예 닻도 올리지 못하고 좌초됐다. 근로기준법·파견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법 개정 없이 도입한 성과연봉제와 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양대 지침은 문재인 정부 들어 폐기됐다. 이 역시 속을 들여다보면 양대 노총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들 정부의 공통점은 결과가 어찌 됐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달성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법과 질서 확립’보다 ‘사회적 협약’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노무현·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각각 합의안을 도출하려 했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개혁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개혁 의제와 방법의 심각한 불일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역대 정부는 노동계의 저항을 무릅쓰고 제대로 노동개혁을 할 것이냐, 아니면 타협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냐 선택을 해야 했는데 모두 타협의 방법을 택했다”면서 “그랬다면 임금·근로시간 등 노동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슈를 다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전자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의제이고 임금·근로시간 문제는 후자의 방법으로 다뤄야 할 이슈라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친노동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노조가 여전히 투쟁 일변도 전략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노조는 항상 대중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데 익숙해져 노동시장의 관리자라는 주인의식이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며 “임금 인상, 고용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모든 것을 다 요구하면 합리적인 타협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노조는 사용자 밑에서 희생을 강요받기만 했던 근로자들에게 있어 유일한 방패막이로서 역할을 했고 그것이 곧 노조가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며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경영여건이 급격하게 바뀌는 상황에서 노조가 과거와 같이 투쟁 일변도 전략을 취할 경우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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