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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통(通)’했나요?

안병민의 ‘경영 수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12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고객행복’이 아닐까 싶다. 나 덕분에 행복해진 고객이 다시 나를 찾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케팅이라는 얘기다. 고객행복은 고객과의 소통과 공감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특히 음식점 같은 면 대 면 서비스 현장에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마케팅의 본질은 고객행복이다. 고객행복은 소통과 공감으로 만들어진다.







오리양념구이로 유명한 어느 맛집에 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까칠한 혀를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킨 감칠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함께 간 일행과 즐거운 수다를 곁들여 맛난 식사를 했습니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남은 고기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게 별미랍니다. 기꺼이 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식당 사장님이 밥을 가져오더니 불판 위에 놓고 지글지글 볶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밥만 볶으니 어색한 침묵이 밥상 위에 흥건합니다. 그러길 5분여, 무표정한 얼굴에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밥을 볶던 사장님이 “이제 드셔도 돼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곤 쌩하고 가버립니다. 불현듯 속이 불편해졌습니다.

많은 식당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 “밥 달라” 해서 밥 줬고 “볶아 달라” 해서 볶아줬으니 잘못된 건 없습니다. 하지만 마케팅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이게 최선일까, 의문이 남습니다. 고객과의 소통이란 측면 말입니다. 고객은 단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경험입니다. 고객이 구매와 관련해 겪을 수 있는 총체적인 경험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려내는 식당이라 해도 손님을 맞는 심드렁한 표정과 귀찮은 듯한 말투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품질만 좋다고 제품이 잘 팔리는 게 아닌 것처럼, 식당도 단지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밥을 든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다가옵니다. “고기는 맛있게 드셨어요? 저희 집 오리는 유기농 사료만 먹여 키우는데요. 고기도 며칠을 숙성시켜 쓰기 때문에 아마 맛이 다를 겁니다. 양념도 맛있지 않던가요? 저희가 다 집에서 직접 만든 건데요. 며느리한테도 안 알려주는 비법 양념이에요.” 밥을 볶으며 붙임성 있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니 손님도 자연스레 말을 받습니다.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고요. 지금껏 먹은 오리고기 중에 최고였어요.” “아, 그러셨어요? 그러면 제가 한 턱 쏘아야겠네요.” 유쾌한 웃음과 함께 서비스라며 음료수도 한 병 갖다 줍니다. 어색한 침묵만 내려앉던 그 자리가 정겨운 소통의 자리로 바뀐 겁니다. 단지 기계적인 거래관계에 불과했던 위 상황과 기분 좋은 교감을 만들어낸 아래 상황. 어떤 상황이 고객에게 더 매력적일지는 불문가지입니다.

세상사 다 그렇듯, 본질은 단순하고 핵심은 간결합니다. 마케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정의하는 마케팅은 ‘고객행복’입니다. 나 덕분에 행복해진 고객이 다시 나를 찾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마케팅입니다. 그런 고객행복은 고객과의 소통과 공감을 토대로 만들어집니다. 특히 음식점 같은 면대면 서비스 현장에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게 무척이나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똑같은 식당인데도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고객의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냐 아니냐’에 따라 실제 매출 차이가 생기더라는, 어느 식당 사장님의 경험담이었습니다. 수많은 가게가 있는데도 우리 가게를 찾아줘서 너무나 고맙다는, 그런 진심 어린 눈빛이 고객의 마음을 엽니다. 그런 소통이 천객만래(千客萬來), 천 명의 손님을 만 번 다시 오게 만듭니다. ARS 기계음 같은, 영혼 없는 친절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목소리를 음계 ‘솔’에 맞추어 고객을 대하고 손님에겐 45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라는 형식적 교육은, 그래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관건은 진심이고, 그 진심이 통하면 행복한 고객경험이 만들어집니다.



고객과의 소통과 관련해선 자포스(Zappos)의 사례가 큰 울림을 줍니다. 자포스는 창업 10년 만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한 미국의 온라인 신발쇼핑몰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우리에게 엄청난 경쟁사가 될 것이라 우려해 아마존이 1조2,000억 원을 주고 경영권을 인수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이런 눈부신 성장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역시 ‘대(對)고객 소통’입니다. 온라인쇼핑몰에 있어 주요 KPI(핵심성과관리지표) 중 하나는 ‘콜 당 소요시간’입니다. 빨리 전화를 끊어야 다음 콜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매출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포스 콜센터는 한 고객과 무려 일곱 시간 동안 통화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해당 직원이 그날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한 일은 전화 한 통 뿐입니다. 고객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통화하면 신발은 도대체 언제 파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자포스 CEO 토니셰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먼저 전화를 건 것도 아니고 고객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준 겁니다. 고객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우리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런 기회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고객이 자포스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화를 걸어주는 것, 그 시간을 우리는 고객과 평생 함께 하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니 일곱 시간의 통화는 비용의 낭비가 아닙니다. 무척이나 의미 있는 투자인 셈입니다.

다들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준이 아이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 좋은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니 아이가 좋아할 리 없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어떤 거야?”라는 질문에 “돈 많이 벌어오는 아빠가 아니라 함께 잘 놀아주는 아빠”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접점이 생길 수 없습니다. 서로 평행선만 달릴 따름입니다. 마케팅이 문제라면 답은 바로 고객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혼자 끙끙댈 뿐입니다. 정답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교감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마케팅의 화두는, 그래서 ‘통할 통(通)’입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세상입니다.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표현되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에 대해선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립니다. 특히 일자리에 대해선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은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습니다. 인간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일은 인간에게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속도와 효율의 반복업무는 기계를 따라갈 수 없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교감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소통인 겁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자문(自問)할 일입니다. 나는 내 일, 내 삶의 고객과 제대로 통(通)하였는지, 그리고 통(通)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통(通)해야 사는 세상입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글_안병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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