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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너 때문에 代 끊긴다"…당신의 말 한마디에 '사회적 난임' 낳다

"결혼했는데 왜 아이 없냐"…두번 상처 받는 난임부부

딩크족 선언하자 "불임인데 핑계 아냐" 수근수근

쌍둥이면 "시험관아기냐"…시부모·며느리간 갈등도

男 난임 10년새 3배 급증했지만…'여자만 책임' 낙인





‘난임 포비아’에 빠진 한국 사회의 이면에는 사회적인 편견과 냉소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난임부부의 또 다른 이름은 ‘죄인’ 이거나 ‘이기주의자’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의학적 난임이 사회적 난임으로 변질되면서 난임부부를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얘기다.

7년 전 결혼한 회사원 김초롱(35·가명)씨는 올해 초 직장 동료들에게 ‘딩크족(DINK族)’임을 선언했다. 맞벌이를 하되 아이는 갖지 않는 딩크족이 주위에도 적지 않았고 마침 남편도 아이 없이 사는 데 적극 동의해 선택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아이가 안 생기니까 핑계로 딩크족이 된 것 아니냐”는 ‘뒷담화’를 들어야 했다. 김씨는 “결혼과 출산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사회는 아이가 없다는 것에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부부만 잘살겠다고 아이를 갖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전형적인 이기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난임부부에게는 의례적인 인사도 자칫 상처가 된다. ‘자녀분은 어떻게 되냐’고 무심코 던지는 질문이 난임부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자녀 유무를 개인의 신체적인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적인 능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인 박철훈(38)씨는 10년째 아이가 없어 난임치료를 받고 있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섯 살 된 아들이 있다고 둘러댄다. 만나는 고객마다 “아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데 종신보험과 태아보험을 주로 판매하는 자신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을 밝히면 왠지 능력이 부족한 보험설계사로 비칠 것 같아서다. 박씨는 “난임부부에게 ‘아이가 어떻게 되냐’는 어떤 의미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것보다 더 잔인한 질문”이라며 “아이가 없으면 어떤 식으로든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난임 포비아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대형 법무법인에 다니는 윤지영(39)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변호사 며느리를 뒀다며 자랑하던 시부모님이 돌변한 것은 지난해 무렵이었다. 3년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서 난임검사를 한 윤씨는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시댁은 ‘며느리가 집안에 잘못 들어와 대가 끊기게 생겼다’며 모든 책임을 윤씨에게 돌렸다. 윤씨는 “시부모님이 ‘남들은 다 손주 보고 사는데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말년에 이 고생이냐’고 말할 때가 제일 속상하다”며 “행복한 결혼과 가정의 전제조건이 왜 출산이어야 하는지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국내 최다 시험관아기 시술자인 이성구 대구마리아병원장은 “25년 가까이 난임부부를 진료해왔지만 의학적 난임보다 더 큰 문제가 난임부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적 난임”이라며 “난임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바뀌지 않고서는 난임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낳은 부부에게도 난임 포비아는 현재진행형이다. ‘둘째는 언제 갖느냐’는 질문과 난임치료로 쌍둥이를 얻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대표적이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도 계속되는 사회적 편견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와 고통을 안긴다.

직장인 최지영(41)씨는 5년 전 첫째를 낳은 뒤 둘째를 계획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 고민이다. 하지만 최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둘째를 꼭 낳아야 한다’는 시댁의 끈질긴 안부전화와 현실적으로 난임치료를 받기 어려운 직장 분위기다. 최씨는 “하나만 있으면 외로워서 안 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둘은 있어야 한다고 매번 재촉하는 시댁의 전화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했다”며 “둘째를 갖기 위해 난임치료를 받고 싶지만 일주일씩 휴가를 쓸 바에는 퇴사를 선택하라고 하는 직장문화 탓에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지난해 쌍둥이를 낳은 회사원 박정미(38)씨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불쾌한 경험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소중한 아이를 얻었지만 동료 산모로부터 “어느 병원에서 했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다둥이를 가질 확률이 높은 난임시술인 시험관아기로 쌍둥이를 낳은 것 아니냐는 질문은 지금도 박씨를 따라다닌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남성 난임에 여전히 관대한 사회적 인식도 난임 포비아의 단면이다. 스트레스와 음주·흡연·비만 등으로 남성 난임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지원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남성 난임환자는 2004년 2만2,166명에서 2016년 6만3,114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여성 난임환자가 같은 기간 10만4,699명에서 15만4,949명으로 1.5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난임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했지만 남성 난임환자 지원책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의료계에서는 국내 난임부부 10쌍 중 3쌍이 남성난임이라는 통계도 내놓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던 과거에는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며느리가 구박을 받았고 지금은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똑같이 사회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의료기술 발전으로 의학적 난임은 정복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사회적 난임이 이를 가로막으면서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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