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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칼럼] 회색 코뿔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설실장
10년간 150조원 투입에도
출산율은 갈수록 뒷걸음질
사회적 인식 변화 못보고
인프라 지원에만 매달리면
인구절벽 극복하기 어려워

[오철수칼럼] 회색 코뿔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대표는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다. 가게마다 내걸린 ‘영업 종료’ 팻말 등에서 위기의 신호가 포착됐다. 투자자들은 채권을 대량으로 내다 팔고 있었다. 부커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고 월가 경영진에게 아르헨티나 채무 30% 탕감을 권고했다. 하지만 은행가들은 주저했다. 결국 9개월 뒤 아르헨티나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 투자은행들은 70%의 손실을 입었다.

부커가 2016년 저서 ‘회색 코뿔소가 온다’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회색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는데다 육중한 몸무게 때문에 쉽게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빤히 보이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부커가 2013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회색 코뿔소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급격한 출산율 하락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4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다. 인구 밀집지역인 서울(0.84명)과 부산(0.98명)은 1.0명에도 못 미친다. 2001년 합계출산율이 1.297명으로 떨어진 이래 17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초저출산 기준으로 제시한 1.3명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소멸국가 1호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2006년부터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1차(2006~2010년)와 2차(2011~2015년) 대책기간 출산 장려에만 80조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고령화 대책까지 포함하면 15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입됐는데도 왜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은 주거와 육아·진학, 일자리 창출, 일·가정 양립 등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뒀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사회 인식 변화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결혼과 자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이 43.3%에 달했다. 미혼그룹에서는 ‘결혼 후 자녀가 없어도 무방하다’는 비율이 35%를 넘었다. 자녀가 없어도 되는 이유로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서’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해서’ 등이 지적됐다.

이런 맥락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혼외 출산을 죄악시하는 사회적 편견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혼외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정부 지원에 힘입어 1995년 33.5%였던 혼외출산율이 2012년 47.6%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1.71명에서 1.92명으로 늘었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와 차별이 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인식도 정책지원도 결혼을 통한 전통적인 가족관계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는 저출산을 노사정 대타협 과제로 올려놓는 실정이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서 합의만 하면 출산율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효과가 있을 리 있겠는가. 결혼과 자녀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 변화는 옳다 그르다식으로 볼 사안은 아니다. 이미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만큼 이를 감안한 정책을 펴야 한다.

최근 들어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생산가능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 호조 속에서도 내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은 주 소비층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가는 인구절벽을 피할 수 없다. 이쯤에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인지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처럼 엉뚱한 곳에 혈세를 쏟아붓는 것으로는 안 된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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