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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IEW] 라이브, 노희경은 최고다 정말 최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동안 연락한번 없었다고 욕하다, 내가 잘났네 니가 잘났네 싸우다, 사는게 왜이리 힘드냐며 한탄하다, 말이 끊어져 소주잔 들고 짠 하고 부딪힐 때. 그때 느낌이 ‘라이브’와 꼭 닮았다.

22일 방송된 14회에서도 사건사고가 몰아쳤다. 신나게. 화장실에서 피를 흘리던 학생은 생리대를 살 돈이 없었다. 한정오(정유미 분)는 학교에서 성교육에 대한 소신발언을 했다가 민원이 발생할 위기에 처했다. 사과할 수 없다는 그를 보며 염상수(이광수 분)는 백마디 말보다 나은 위로를 건넸다. 송혜리(이주영 분)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김민석(조완기 분)은 지구대에서 자해한 주취자에게 독직폭행으로 고발당했다. 안장미(배종옥 분)는 사건을 해결했음에도 홀로 징계를 받게 생겼다. 기한솔(성동일 분)의 전보신청은 은경모(장현성 분)의 귀에 들어가 오해를 샀다. 그리고 불명예 퇴직해 경비원으로 일하던 기한솔의 선배 민수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고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구대에도, 그들의 일상에도. 단 한회 방송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에피소드들이 방대하다. 예측할 수도, 정신 차릴 시간도 없이 몰아치는 사고. 그것이 직장이든 가정이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고 말하는 듯 하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고. 헤쳐나가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노희경 작가가 그리는 인물은 입체적이지 않다. 구체적이다. 몇 마디 대사만으로 그의 성장과정과 성격, 눈앞에 닥친 사건을 그려낸다. 배우들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을 옷 입듯 그냥 입어버리게 만든다. 사건에 대처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결코 연기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는다. 배성우가 오양촌으로만 보이는 것처럼. 노희경의 극본은 배우들의 마음부터 깊이 후벼판다.

에피소드들은 모두 있을법한 이야기들이다. 노 작가의 세계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법이 없었다. ‘라이브’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서운 계산이 깔려있다.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내면서도 본인이 작품마다 내걸었던 메시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모두가 적절히 배분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라이브’는 사람의 인생 전반을 훑는다. 아이의 탄생, 살인자의 자식으로 살게된 아이들,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된 청소년, 데이트폭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청년, 취업전쟁, 사회 초년병, 결혼과 이혼, 직장내 승진과 징계, 자녀의 결혼과 부모의 죽음, 정년퇴직, 그리고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

누구에게나 닥칠 인생의 큰 순간들. 지구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저마다의 사건을 모아보면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미 지나쳤을, 아니면 곧 마주하게 될 사건에서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주인공의 판단오류를 냉정하게 끼워넣고 사람에게 위로받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오양촌의 고백은 그래서 가치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 그는 나의 강점이 사실은 약점이었음을 고백하고 눈물 흘린다. 후회나 미련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더 큰 어른이 되었다고 할까.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내면 그 바닥에 깔려있던 고백끝에 건넨 “난 네 옆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듣고 안장미는 답한다. “어디 멀리 가지마. 그래도 내 인생에 네가 있다는건 큰 힘이고 빽이야. 내 인생에 자기마저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둘은 다시 손을 맞잡는다.

가슴 한켠이 텅 비어있던 한정오의 마음도 사람으로 채워진다. 과거 사건에 대한 전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우리 뛰자”는 염상수. 뒤에 처진 채 함께 달리며 눈물 흘려주는 그에게 한정오는 “어제 오늘 내 얘기 듣고도 아무말도 없고 위로도 안해주냐”고 묻는다. 틀에 박힌 말 대신 눈물을 쏟던 염상수는 “슬퍼. 너무 슬퍼서 아무말도 안나와”라고 답한다. 그런 그를 보며 한정오는 다시 말한다. “상수야 나 너무 시원해.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나봐. 너에게라도 말할 수 있어 너무 시원해”

‘라이브’는 ‘살다보면 그런일이 있지’라며 입에 발린 위로를 하지 않는다. 더 깊이 끌어내리고, 극한에 이르렀을 때 밑바닥에 있던 진짜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예쁘고 강해보이는 인물 뒤에 숨어있는 고통. 그것이 노희경 작가가 사람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보는 이들에게까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인물의 감정이 과거에는 시청률 면에서 뒤처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작가의 글이 유연해지고 대중적인 소재를 입은 현 시점에서 ‘라이브’가 그려내는 인생이야기는 단순한 수치로는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노희경은 최고다.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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