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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o]가족을 위해 전쟁을 피해 고난의 2,000㎞...오늘도 그들은 死線을 넘는다

■'지옥길' 건너는 난민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급증

작년 말 기준 2,540만명 달해

2015년 크루디 죽음에 세계 주목

사우디 등 잘사는 이웃국선 거부

극심한 생활고·폭력조직 위협에

브로커에 수천弗씩 주고 유럽행

살아서 도착하면 행운이지만

난민심사 거부당하면 당장 추방

"전 세계 머리맞대 해법 찾아야"

중동 내전과 생활고를 피해 유럽행을 택한 중동 난민들이 그리스의 주요 난민 이동경로 중 한 곳인 이도메니를 지나고 있다. /이도메니=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5년 9월2일 터키 남부 보드룸 휴양지 인근 해변에서 세 살배기 꼬마가 발견됐다. 감청색 반바지에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마치 엎드려 잠든 것 같은 모습의 아이는 숨진 상태였다. 고요한 해변에 덩그러니 놓인 아이의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터키 해안경비대원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이는 시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보트를 타고 그리스로 밀항하던 난민 아일란 쿠르디였다.

내전이 한창이던 시리아 국경에서 살던 쿠르디 가족은 늘 목숨이 위협받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국을 떠나 독일까지 2,000㎞가 넘는 험난한 여정에 올랐다. 시리아를 무사히 탈출한 가족은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보트에 몸을 실었지만 지중해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며 부모는 살아남고 쿠르디와 다섯 살 난 장남이 목숨을 잃었다. 쿠르디 가족의 불행은 난민사태의 참혹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전 세계를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이 지역이 극심한 정치불안에 시달리면서 전 세계 난민 수는 해마다 빠르게 증가해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누적 난민 수는 약 2,540만명. 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 수(약 5,000만명)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 중 3분의2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아프리카 국가에서 발생한 난민으로 대부분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목숨을 걸고 유럽 대륙으로 향한다. 내전이나 분쟁 등 극심한 정치 불안으로 생활고를 겪는 것은 물론 생명에도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가족 단위로 고국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등 부유한 이웃 걸프국 대신 머나먼 유럽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 걸프국이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시리아의 경우 주로 가장들이 먼저 유럽에서 일자리를 구해 정착한 뒤 처자식을 데려오는 방법을 쓴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이 택할 수 있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다. 중동 난민들은 터키로 들어와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거친 뒤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를 지나 독일 등을 최종 목적지로 삼는다. 아프리카 난민은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를 통과한 뒤 이탈리아 최남단 시칠리아 해협에 위치한 람페두사섬을 찍고 유럽으로 들어간다. 두 코스 모두 2,000㎞가 넘는 대장정으로, 일명 ‘죽음의 길’로 불린다.

중동 코스를 통해 현재 독일에 정착한 한 시리아 출신 난민이 dpa통신 인터뷰에서 밝힌 여정은 험난 그 자체다. 전쟁통에 미혼모가 된 이 시리아 여성은 전 재산 3,000달러를 주고 브로커를 통해 아이와 함께 시리아를 탈출했다. 어렵게 도착한 터키에서는 고무보트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발을 디뎠다. 이후 그리스 내륙으로 이동해 난민캠프로 운영되는 아테네 태권도경기장에서 생활하다 심사를 통과하면 다시 유럽 대륙을 관통해 독일로 들어가는 것이다. 브로커 비용 때문에 돈이 떨어져 아이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버겁지만 그나마 그는 살아서 독일에 정착했다는 점에서 행운아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유럽으로 향하다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 수는 지난 한 해 동안만도 6,163명에 달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남수단 출신 난민이 AFP통신에 털어놓은 탈출과정도 고난의 여정이기는 마찬가지다. 혼자 남수단 국경을 넘은 뒤 이집트·리비아를 거쳐 19시간 동안 나무보트를 타고 이탈리아로 들어온 그에게 이탈리아 도착 전 사흘간은 고통의 기억이다. 사흘 동안 4시간밖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든 여정을 거쳐 프랑스에 도착하기까지는 다시 한 달이 더 걸렸다. 정부의 탄압으로 급하게 탈출하느라 아내와 일곱 살 난 아들을 두고 온 그는 최근 프랑스 정부로부터 난민인정을 받고 가족결합제도(고향에 남은 가족들을 부를 수 있는 권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아직 고국이 내전 중이라 가족과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두라스와 베네수엘라·과테말라 등 중남미 난민들의 여정도 녹록지 않다. 주로 정부의 부패와 마약·폭력조직의 괴롭힘에 따른 궁핍한 삶이 싫어 고향을 떠난 이들은 일명 ‘카라반’으로 불리는 가족 단위 그룹을 이뤄 브로커에게 수천달러를 주고 멕시코를 통해 미국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꿈꾸던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전 단계인 난민신청을 해야 한다. 난민신청자들은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가 없고 난민캠프에서 생활해야 한다. 구직활동도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무엇보다 난민심사에서 ‘거부’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추방된다. 꿈이 좌절되는 순간이다. 특히 최근 유럽 내 일부 국가들이 노골적인 반난민 기조를 강화하고 나서면서 난민들의 앞날은 더욱 험난해졌다. 유럽연합(EU)이 24일 난민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여는 비공식 정상회의에 헝가리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이른바 ‘비세그라드 4개국(V4)’은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최고대표는 “늘어나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부 국가들 위주로 감당하기보다 전 세계가 동참하는 새롭고 더 포괄적인 해결방식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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