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손흥민(26·토트넘)과 토니 크로스(28·레알 마드리드)는 그라운드에서 4분간 짧은 만남을 가졌다.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였다. 스페인 원정 1차전에 89분에야 투입된 손흥민은 추가시간까지 4분밖에 뛰지 못했다. 웸블리 홈 2차전에는 결장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팀은 거함 레알을 상대해 1차전 1대1 무, 2차전 3대1 승리로 콧노래를 불렀다. 레알은 대신 지난달 챔스 우승까지 내달렸다. 크로스는 토트넘과의 2경기와 결승 모두 풀타임을 뛰었다. 이적시장전문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크로스의 시장가치는 8,000만유로(약 1,040억원)에 이르며 손흥민의 가치는 5,000만유로(약 650억원)다.
손흥민과 크로스가 소속팀 유니폼 대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다시 만난다. 27일 오후11시(한국시각) 카잔아레나에서 열릴 2018러시아월드컵 한국-독일의 조별리그 F조 최종전은 두 팀 에이스 손흥민과 크로스의 발끝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이 걸린 한판이다. 2패로 조 최하위인 한국이 손톱만큼인 16강 희망을 현실로 만들려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한국은 57위)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 2골 차 이상이면 가장 좋은데 16강 진출을 위한 모든 경우의 수는 같은 시각 있을 멕시코-스웨덴전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긴다는 전제가 따른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겨주지 못하면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잡는 대회 최대 이변을 쓴다 해도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들 수밖에 없다. 멕시코를 밀어내고 조 1위를 차지하려는 독일도 다득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크로스는 대표팀에서도 레알에서처럼 뛰면 된다. 고개를 들면 월드클래스 동료들이 볼을 기다린다. 손흥민은 처지가 다르다. 사실상 매 경기가 고군분투다. 멕시코와 2차전 뒤 쏟아낸 눈물이 그동안 혼자 감당해온 무거운 책임감을 말해준다. 독일전에는 주장 완장을 찰 가능성도 크다. 캡틴 기성용(스완지시티)이 2차전에 입은 부상으로 낙마했고 부주장 장현수(FC도쿄)는 잇따른 수비 실수 탓에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수 손흥민과 플레이메이커 크로스는 포지션은 다르지만 대표팀 에이스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둘은 나란히 2차전 종료 직전에 득점에 성공하며 어깨를 폈다. 손흥민은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으로 멕시코 골망을 갈랐고 극도로 부진하던 크로스는 그림 같은 측면 프리킥으로 스웨덴을 무너뜨렸다. 손흥민에게는 두 번째 월드컵의 두 번째 골이었다. 크로스는 월드컵 최근 5경기 3골(2도움)째였다.
5세 아들과 2세 딸을 둔 가장인 크로스는 독일이 통일되던 해 동독의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다. 한자 로스토크 유소년팀을 거쳤는데 감독이 아버지였다. 손흥민이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 손웅정씨의 지도로 하루에 슈팅 1,000개씩 연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손웅정씨는 춘천 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이다. 손흥민이 2013-201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 입단하기 전에 크로스는 바이에른 뮌헨 출신 임대선수로 2009-2010시즌까지 두 시즌을 레버쿠젠에 몸담았다.
크로스는 스웨덴과의 2차전 뒤 “사람들의 비난 글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런 글들이 우리에게 우승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성과는 선수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결승까지 오를 실력을 갖췄다”고 힘줘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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