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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박원순의 여의도 건축특구 실험

권구찬 논설위원

한강 둘러싸여 도시계획 최적

건축주인 주민참여 배제논란

특혜시비 허들 넘지 못하면

'한강 르네상스' 실패 되풀이





신한금융투자(옛 쌍용투자증권) 사옥은 여의도 증권가 빌딩 숲에서도 돋보이는 건물이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그저 그런 빌딩이겠거니 하겠지만 1995년 준공 당시에는 꽤 주목받은 수작으로 꼽힌다. 작은 블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듯한 외관은 실용성을 추구한 여느 증권회사 사옥과는 분명 비교된다. 설계는 고(故) 김수근의 제자인 윤승중 회장이 이끄는 원도시건축이 맡아 랜턴을 모티브로 삼았다. 서울의 맨해튼인 여의도와 그 주위를 랜턴처럼 환하게 밝힌다는 콘셉트다. 한데 건축물의 백미가 상부와 옥상인데도 사선(斜線)제한으로 층고를 억지로 낮춘 탓에 짓다 만 느낌을 준다. 흡사 위에서 짓눌러버린 듯한 모습이다. 이 작품은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상 후보군에 올랐지만 완성도가 떨어진 탓에 본상 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20년도 더 된 얘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형 사고’를 쳐서다.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하겠다며 건축 특례까지 시사했다. 외관이 뛰어난 건물에 대해서는 용적률 인센티브 같은 건축 특례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여의도 구상은 아무래도 그가 방문한 싱가포르의 뛰어난 도시계획과 탁월한 빌딩 조형미에서 자극을 받은 것 같다.

한강에 둘러싸인 여의도는 창의적 건축 실험의 장으로 욕심날 만한 곳이다. 도심과 분리된 강 속의 섬이라 독립적 도시계획이 가능하다. 수변 공간과 화려한 야경, 뛰어난 건축물의 결합은 ‘성냥갑 도시’ 서울의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다. 시드니 하면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리듯 서울도 그런 랜드마크를 갖고자 하는 것이 비단 박 시장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박 시장의 구상에 태클을 걸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에서다. 그럴 만하다. 여의도 도시계획 새판 짜기는 용도지역 변경을 통한 용적률 완화를 전제로 한다. 여의도는 특이하게도 아파트가 주거·상업지역에 뒤섞여 들어서 있는 곳이다. 35층 이상 짓지 못하는 주거지역을 50층 이상 높일 수 있는 상업지역으로 전환해야 ‘통 개발’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스카이라인에 획기적 변화를 주고 실험적 건축물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더 큰 난제는 건축주인 아파트 소유자의 수용성이다. 한 명도 아니다. 자그마치 1만명에 육박한다. 의견 통일이 되지 않거나 싫다고 하면 여의도 건축특구 실험은 공염불이다. 백지 상태에서 도시계획을 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존 시가지를 통째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어지간한 강단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실패한 ‘한강 르네상스’는 타산지석이다. 여의도 아파트에 대해 건축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기부채납을 요구했지만 주민 분담률을 두고 갈등을 빚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관건은 서울시가 추구하는 공공성과 건축주가 관심을 두는 수익성 사이의 타협이다. 이를 풀지 못하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서울시가 잠실 5단지 재건축 디자인을 국제 설계 현상 공모한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파격이지만 설계 과정 참여는 물론이고 당선작 선정에서도 건축주를 배제해 지금껏 홍역을 치르고 있다. 건축주를 배제한 설계는 어불성설이다. 특혜 시비는 더 넘기 어려운 허들일 수도 있다.

대규모 개발계획을 겁 없이 쏟아내는 박 시장의 파격 행보를 두고 차기 대선용이 아닌가 하고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여의도가 각자도생식 재건축으로 난개발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땅이라 통합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을 굳이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니다. 누군가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반세기 전 당시로서는 최고 높이인 12층짜리 아파트를 지은 곳이 여의도다.

여의도 구상이 잠재적 대권가도의 꽃길이 될지 가시밭길이 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오 전 시장 시절처럼 장밋빛 환상에 그칠 수도 있다. 박 시장이 이런 허들을 넘을 자신이 없으면 건축 실험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차기 시장에게 넘기시라.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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