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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읽는 모호한 스토리...讀法은 관객의 몫"

■ 소설 '그믐...' 연극무대 올린 연출가 강량원·작가 장강명

강 "표현 쉽지않은 시공간·스토리...신체행동 연기서 실마리 찾아"

장 "소설 의도 꿰뚫은 연출 감사...무대서 어떤 힘 발휘할지 궁금"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왼쪽)와 강량원 연출 . /송은석기자




소설의 활자가 무대 위 말과 몸짓이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한 줄 짜리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만일 배경 전환이나 상상, 꿈 따위를 관객 눈앞에 현현한 장면으로 만들어야 하고, 동시다발적인 사건을 보여주는데도 무대라는 공간은 곧바로 제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생 시절 동급생을 죽인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동급생의 엄마까지 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를 뒤섞어 놓은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은 더욱 간단치 않은 소설이다. 모호한 공간 설정에 시점은 뒤죽박죽이고, 소설과 주인공이 쓴 소설이 끊임없이 뒤섞이며 독자들을 허구와 진실 사이 어딘가를 끊임없이 헤매게 만드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인 혼돈을 연극의 미덕으로 살릴 연출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영원히 지면 위 활자의 세계에 갇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이야기의 힘을 연극의 힘으로 당겨줄 연출과 배우들을 만났다. 강량원 연출과 그가 이끄는 극단 동이다. 연극 ‘그믐’의 4일 개막을 앞서 강 연출과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가 자리를 함께 했다. 두 사람은 소설 속 남자와 여자가 그랬듯 활자가 주선하는 인연에 몸을 맡겼고 이날 처음 마주 앉았다.

소설을 통한 만남은 지난해부터였다. 강 연출은 “장 작가의 소설은 작은 이야기의 조각들을 모아 전체 세계를 이루는 작품들이 많다”며 “배우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행위의 조각이 모여져 하나의 이야기가 이뤄지는 연극을 줄곧 해온 극단 동과 잘 맞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그믐’을 연극으로 만들어보기로 하고 지난해 출판사를 통해 무대화를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왼쪽)와 강량원 연출 . /송은석기자


강 연출이 배우들과 장 작가의 책들을 하나하나 독파하고 장 작가 마니아를 자칭하는 정진새 연출과 각색작업을 진행하며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내심을 발휘한 쪽은 장 작가였다. 장 작가는 “연극이 연출자의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판권에는 마음대로 작품을 바꿔볼 권리도 있는 것이니 늘 궁금한 마음이 있어도 참고 기다렸다”며 “앞서 연극으로 만들어진 ‘댓글부대’를 보며 원작보다 더 나아간 연출자의 해석이나 결말을 보며 즐거웠는데 이번에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왼쪽)와 강량원 연출 . /송은석기자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막상 무대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모호한 시공간과 동시다발적인 이야기를 무대로 풀어놓기 위해 평소 강 연출이 추구했던 메소드인 신체행동연기가 큰 힘을 발휘했다. 이를테면 감정을 표출하거나 말로 설명하는 대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몸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계속되는 현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관객에게 직접적인 이미지나 의미를 전달하는 대신 관객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극을 받아들여 각자의 이야기로 품게 하려는 의도다. 강 연출은 “행갈이도 없이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부터 ‘그믐’은 독자에게 끊임 없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독법을 요구한다”며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인상을 관객이 느끼는데 초점을 두고 연출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강 연출의 연출의도를 들은 장 작가의 눈이 빛났다. 장 작가는 “‘그믐’은 속죄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자 진실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메타픽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소설가로서 소설에 대한 소설을 반드시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써내려간 작품인데 강 연출이 그 의도를 꿰뚫고 연극에 대한 연극으로 풀어낸 점이 반갑고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강량원 연출(왼쪽)과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 /송은석기자


극중에서 주인공 남자는 그의 몸 속으로 들어온 ‘우주알’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강 연출과 장 작가가 각각 연극과 소설을 통해 관객과 독자에게 건네는 우주알 역시 같은 힘을 지닐까.

“소설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소설을 쓰지만 소설의 몸이 완성되고 나면 그 소설은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믐’을 통해 제 나름의 질문을 발견했고 그 질문을 재료로 연극을 만들어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이 순환을 만들어 내는 힘이 ‘우주알’ 아닐까요.”(강량원)

“우리는 늘 내 입장에서 기억과 진실을 재구성하게 되죠. ‘우주알’은 개인의 관점을 벗어나 비인간적인 관점으로 내가 속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소설을 통해 제가 심어 놓은 우주알에는 메시지나, 몸이 빠져있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이 무대라는 실제 공간을 만나면 어떤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집니다.”(장강명) 16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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