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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둔 남구로 인력시장] 부모님 용돈 마련하러 나왔는데... 최저임금에 일감 구하기 별 따기네요

건설경기까지 바닥으로 일자리 반토막

"지난주 이틀만 일해...오늘도 허탕이네요" 긴한숨

새벽부터 1,000명 몰려 80% 이상이 중국교포

투잡족 늘며 경쟁치열 '최후보루' 마저 직격탄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는 줄었는데 건설 경기까지 바닥을 치고 있어 일당 벌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추석 명절을 닷새 앞둔 19일 새벽4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난 김형덕(49·가명)씨는 이렇게 말하며 웅크리고 앉아 자판기에서 뽑은 500원짜리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골조공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그는 “공사판 인생 30년 중 올해가 가장 힘들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인력사무소에 나오면 10년 이상 경력 있는 인부들을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이 붙었다”며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일감이 반 토막 난데다 조선족이 이쪽 바닥으로 밀려들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현장 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시장에 불어닥친 쓰나미가 구직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일용·임시직 노동시장마저 휩쓸고 있다. 지난 8월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000명 늘어난 데 그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일용·임시직 취업자 수도 625만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 줄었다. 정부에서 연일 쏟아내는 고강도 부동산정책으로 건설경기가 더욱 얼어붙으며 가뜩이나 쪼그라든 현장의 일용·임시직 노동시장은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투영된 듯 국내 최대 일용직 인력시장인 남구로역 일대는 일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어진 한국 경제를 응집해 보여주고 있었다.

19일 오전 5시 남구로역 일대에서 인부들이 현장으로 가는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다. /심우일기자




새벽4시30분이 되자 남구로역 사거리에는 일감을 구하려는 사람들과 이들을 태워가려는 승합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추석을 앞두고 일당이라도 벌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5번 출구 앞에 모인 50대 중반 남성들은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며 “이번 추석에 고향 어머니한테 용돈이라도 드려야 할 텐데”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리기사를 하다 일감이 너무 없어 이날 처음으로 나왔다는 이채형(46·가명)씨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입이 줄어든 직장인들이 대리기사나 배달기사 등으로 투잡을 뛰면서 일용직·임시직 일자리는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대리기사로 새로 뛰어든 분들 중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식당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내쫓긴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남구로역 사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어림잡아 1,000명이 족히 넘어 보였다. 이들 중 80% 이상은 길 건너편인 하나은행 사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중국 교포들이다. 횡단보도 중간중간에는 중국말과 억양 섞인 한국말이 섞여들었다. 옆에 있는 인부에게 물어보니 “보통 5번 출구 쪽에는 한국인 구직자들이, 하나은행 앞에는 중국 교포들이 모인다”고 귀띔했다. 하나은행 앞 좁은 도로에만도 500명이 넘는 중국 교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발 디딜 틈도 없어 근처 차도로 나가 있었다.

5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박춘수(68·가명)씨는 건너편 하나은행 쪽에 모인 중국 교포들을 가리키며 “저 녀석들이 우리 일감을 다 빼앗아가고 있다”며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오히려 중국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일당 10만원 넘는 알짜배기 일감은 확 줄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20년 넘게 목수로 일했다는 구경석(62·가명)씨는 최근까지만 해도 지방 곳곳을 돌며 일감을 구하다가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남구로역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지방에서도 일거리는 씨가 마른 상황”이라며 “지방에서는 그나마 60대를 받아주는 곳도 있지만 서울에서는 55세만 넘어도 건설현장에서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일 구하기 어려운 것은 중국 교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은행 앞에서 만난 최화룡(가명)씨는 인력시장에서 목수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는 “불경기에 일감을 찾지 못해 일용직으로 밀려 나온 조선족 인력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우리끼리 경쟁하는 지경”이라며 “저도 지난주에만 (현장에) 두 번 나간 것이 다였다”고 했다. 또 다른 중국 교포인 주현(가명)씨는 “곧 있으면 중추절(중국 추석)이라 본토에 돈을 더 많이 보내주고 싶은데 마음만큼 일감이 따라주지 않아 속이 상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5시20분께 인력을 모두 태운 차량이 남구로 일대를 빠져나가자 일감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한 인부가 인력사무소 직원을 잡고 “혹시 남은 일자리는 없냐”고 물었지만 “오늘 모집은 다 끝났다”는 답을 듣고 고개를 떨궜다. 인력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정우직(가명)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6시가 다돼 모집이 끝나곤 했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일용직 시장에도 일감이 씨가 말라 5시가 조금 지나면 필요한 인력을 다 모아 현장에 보낸다”고 말했다.

승합차가 모두 떠난 6시30분,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남아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며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해 서울로 왔다는 구씨를 5번 출구 앞에서 다시 마주쳤다. 구씨는 손에 들고 있던 정보지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짧게 눈인사를 한 후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지방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상경했던 그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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