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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勞 역풍 기업 절반 감원] 인력 10% 줄인 배관업체 "지금같은 노동환경선 충원 안할 것"

생산성 향상 불확실한데 이전보다 비용 크게 늘어

기업 83% 채용계획도 없어...고용대란 이어질듯

개별기업 여건 따라 근로단축 등 탄력적용 필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고용 환경이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경기도 김포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로자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건설용 배관을 취급하는 중소기업 A사는 내년에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건설경기가 악화하면서 올해 3·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3·4분기까지 9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경기로 매출이 고꾸라지면서 이직·퇴직 등에 따라 발생한 자연 감소 인력 10명을 별도로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허재용(가명) 대표는 “현재로서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어 당장 인건비 인상 부담이 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이미 그 이상을 받고 있는 직원들 중에서 급여를 인상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업황이 좋으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인력을 추가로 뽑겠지만 지금과 같은 노동환경에서는 고용 역시 축소 지향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9일 중견·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꾀했던 정부의 기대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이면서 현장의 불만은 거세지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은 실적이 나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의 친노동정책에 보조를 맞춰갈 수 있지만 중견·중소기업들은 그러한 여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업황 부진으로 일감이 줄고 실적이 꺾이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대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고용여건을 악화시켜 결국 최악의 고용참사를 낳았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영세한 소상공인·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의 고용여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중견·중소 제조업체의 독특한 급여 구조와도 직결된다. 제조업 현장의 근로자들은 통상적으로 총 급여에서 기본급의 비중은 낮은 반면 고정급 형태의 상여금과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있어도 기본급을 근거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인건비 부담이 추가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역대 최대 폭(16.4%)로 올린 데 이어 내년에 10.9%로 또다시 두자릿수 인상을 이어가자 중소기업계에서 속도 조절을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상여금 등을 기본급에 포함시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많은 중견·중소기업들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잠시나마 완화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이 계속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있다”면서 “인력 채용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불확실한 가운데 이전보다 비용은 크게 늘어나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 지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서울경제신문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전수조사한 이번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최저임금 인상이 오른 뒤 올 3·4분기까지 조사 대상 업종 8개 가운데 대부분의 업종에서 절반 이상의 기업이 전년 동기 대비 고용 인원이 감소했다. 종이목재업종에 속한 기업의 61.1%가 지난해 3·4분기보다 고용이 줄었고 운수장비(58.97%), 철강금속(56.25%), IT부품(52.52%), 기계(48.65%), 기계장비(44.07%), 전기전자(43.90%), 건설(35.71%)업종에서도 같은 기간 직원 수가 대폭 감소했다.

문제는 4·4분기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2,01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중소기업 일자리 실태조사’에서 전체 기업의 82.9%가 올 하반기 채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이미 현장에서는 고용시장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당장 내년부터 적용되는 근로시간 단축도 중견·중소기업의 고용 여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뜩이나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리는 300인 이상 중견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숙련직원들의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숙련인력들이 줄어든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반도체장비 업체 B사를 운영하는 김기영(가명) 대표는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편법이나 꼼수를 쓸 수 없고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 라인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경우 연간 기준 20~30%씩 급여가 줄어들게 된다”며 “계도기간이 끝나기 전에 근로시간 단축 적용에 여유가 있는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직원들 때문에 벌써부터 새해 인력 운영계획이 틀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럴 바에는 인력을 추가로 뽑기보다는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게 경영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낫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확대와 같은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중견·중소기업의 고용이 위축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정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급격한 노동정책의 변화에 대해 중견·중소기업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책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대 일방적으로 친노동정책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몰고 온 근로자들의 급여 인상 압력에, 300인 이상 중견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대비하느라 제대로 된 신규채용 계획을 짜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기업 실적마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환경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일자리 질에 초점을 맞춘 급격한 노동정책의 변화는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구인난을 가중시키고 결국 영세기업과 대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기업이 개별 여건과 환경에 따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것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심우일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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