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꿈꾸는 세계 질서를 꽃으로 장식해놓은 것 같네요.” 중국 베이징 옌칭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2019년 베이징 세계원예박람회’ 행사장에서 지난주 말 기자와 만난 한 40대 재중 교포는 이번 박람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은 아름답지만 박람회장 배치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세계’라는 이름에도 부채꼴로 꾸며진 총 5.03㎢ 면적의 박람회장을 장식한 것은 대부분 중국의 꽃이나 나무들이다. 중국 외 참가국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의 조공 체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중국의 이상향, 이른바 ‘중화(中華)질서’를 형상화한 모양새다.
박람회장은 베이징 시내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30분 정도를 달리면 도착하는 베이징 옌칭구에 위치해 있다. 정문을 통해 박람회장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넓고 곧게 놓인 큰길이 나타나고 다시 한참을 걸어가면 ‘중국관’에 이른다. 중국관은 박람회장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꽃밭이 넓게 펼쳐진 중국관 앞 광장에서는 관람객들이 서로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2층짜리 중국관 내부에는 각 성(省) 단위 지방정부별로 부스가 마련돼 있다. 베이징과 톈진을 시작으로 성마다 자랑하는 꽃과 난초·분재들이 각양각색으로 관람객들을 맞는다.
다만 중국관은 경이로움과 함께 과도한 우월감으로 특히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박람회장 가운데 우뚝 선 중국관은 전체 박람회장을 굽어보는 형태로 설치돼 있다. 중국관에 붙어 허베이관·네이멍구관 등 중국 내 지방 성 단위의 전시관이 있고 한국관·일본관 등 다른 참가 국가관은 다시 그 외곽에 배치돼 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국가는 총 28개국뿐이다. 이 외에 유네스코관 등 13개의 국제기구·지역관이 있다. 무역전쟁 등으로 최근 불편한 관계인 미국관·캐나다관은 당연히 없다. 개별 주제관으로서 국제관이나 생활체험관·식물관 등도 잘 꾸며져 있기는 하다.
면적이 2,065㎡인 한국관을 대표하는 것은 전남 순천시가 후원한 ‘한국정원’이다. 연자루라는 누각을 중심으로 화계와 연못 등이 있다. 한복체험 등이 있지만 콘텐츠 부족은 아쉽다. 다행히 오는 25일 ‘대한민국의 날’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일본관은 꽃꽂이가 주제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일본에서 온 플로리스트가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관(조선관)도 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을 반영한 듯 꽃 전시와 교류보다 우표나 공예품 등 물건 판매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제 행사라기보다 대규모 ‘동네잔치’에 가깝다고 할 법한 이 박람회에는 중국적 세계질서를 과시하겠다는 중국의 노림수와 함께 자국의 농업, 특히 꽃·분재 등 화훼산업을 차세대산업으로 키우려는 당국의 의지가 녹아 있다. 규모에서는 세계 최대지만 품질은 낮은 화훼산업을 일으켜 내수경기를 부양하고 이른바 ‘삼농(농업·농민·농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박람회 개막식 연설에서 “자연에 순응하고 생태를 보호하는 녹색 발전을 해야 미래가 있다”며 “중국은 각국과 함께 아름다운 지구를 건설하고 인류 운명공동체를 함께 구축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화훼산업은 최근 도시화의 확대와 국민소득의 증가로 소비가 늘어나면서 점차 생산이 늘고 있다. 중국 첸잔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내 화훼 재배면적은 1만4,100㎢, 시장 규모는 1,562억위안(약 26조8,7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 대비로는 각각 2.92%, 6.04% 증가에 그치지만 절대적인 규모는 한국 시장의 40배가 넘는 세계 최대급이다. 연구원은 2024년까지 화훼시장 규모가 2,215억위안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화훼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생산성인데 이는 화훼 선진국인 네덜란드나 일본에 한참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화훼도 대규모로 재배되고 유통되지만 이것이 생산지역 인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돼버린다. 생산된 화훼의 품질이 조악하고 물류 서비스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화훼는 시간을 다투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물류가 특히 중요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베이징대표처에 따르면 중국 화훼 생산자의 대부분은 영세농이다. 지난 2017년 기준 1인당 재배면적은 2,200㎡로 한국의 3분의1에 불과하며 화훼산업 종사자의 평균 매출소득은 3만6,000위안(약 619만원)으로 한국의 22% 수준이다. 이는 농지가 농촌공동체의 집체소유로 돼 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이를 도급하는 데 불과해 생산성 향상의 유인이 작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유통되는 인기 생화와 분재의 90% 이상은 수입품종이라고 KOTRA는 전했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영세한 생산 농가를 재편하고 품종을 개발하며 물류구조를 정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 화훼산업 물류 분야의 대표는 윈난성에 있는 쿤밍더우난화훼시장이다. 시장면적 8,000㎡에 하루 거래량이 1,000만위안 이상으로 중국 1위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국은 2016년 공개한 제13차 5개년 ‘농업발전규획(2016~2020년)’에서 화훼산업을 중점사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까지 국가 화훼 종자 지원창고 90개, 중점 화훼생산기지 100곳, 화훼시장 58곳, 화훼물류센터 14곳, 대형 화훼기업 100개 등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 예산이 연간 20억위안(약 3,400억원) 이상 투입되고 있다.
장쩌후이 중국 화훼협회장은 베이징 세계원예박람회 개막에 즈음해 중국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의 화훼산업과 관련해 품종 혁신, 기술 개발, 생산경영, 시장 유통, 사회화 서비스 및 화훼문화 등 여섯 가지를 2050년까지 현대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중화질서 과시와 화훼산업 육성이라는 당국의 의지가 담긴 이번 박람회는 10월7일까지 계속된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