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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나도 모르게 떼가는 '준조세' 年 21조, 퇴출 판정받고도 '요지부동'

■ 부담금 관리 이대로 좋은가

10년짜리 복수여권 발급비용 5만3,000원에는 국제교류기여금이라는 부담금 1만5,000원이 포함된다. 사진은 종로구청의 여권 발급 창구. /권구찬기자






영화관람·여권발급·출국 때

간접세처럼 꼬박꼬박 징수

행정편의주의·재정판 ‘나꼼수’비판

부처 이기주의에 잡초처럼 ‘생존’

10년 만기가 다 돼 새로 여권을 만드는 데는 5만3,000원의 비용이 든다. 미성년자의 5년짜리 여권 발급수수료는 4만5,000원이다. 아이 둘은 신규 발급을 받고 본인 것을 갱신하려면 14만5,000원이나 든다. 제작비와 각종 행정비용 등을 고려해도 수수료가 왜 이렇게 비싼가 하는 의구심을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것이다. 비밀은 국제교류기여금이라는 법정 부담금에 있다. 외교부는 여권을 발급할 때 1만5,000원씩 기여금을 꼬박꼬박 떼간다. 국제교류기여금은 단수여권(만기 1년·1회 사용)에는 5,000원, 복수여권에는 1만5,000원이 부과된다. 여권을 만들 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지갑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기여금은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재원이 돼 한국학 보급과 지한 네트워크 구축 등에 쓰인다.



부담금이란 특정 공익사업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이용자와 수익자 등에게 부과하는 조세 외 금전지급 의무를 의미한다. 공익재원을 국민에게서 걷는다는 측면에서 세금과 유사하지만 특정 사업과 관련된 수익자 등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세금과는 구별된다. 대개 준조세라고도 부르지만 법정 용어는 아니다. 세금에 비해 국민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징수하기도 쉽다. 일반 예산에 비해 사업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사용처의 재량권도 크다. 부처 입장에서는 이보다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도 없다.

정부가 한전공대 설립·운영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끌어다 쓰려는 것도 부담금이 가진 ‘쌈짓돈’ 속성 때문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한전공대에 전력기금을 투입할 것이냐’는 질의에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매월 전기요금의 3.7%를 걷는 부담금은 전력 산업 기반 조성에 투입되는 재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이 4조원을 웃돈다. 전기사업법에 징수 근거가 있으니 시행령에 사용처 규정만 살짝 바꾸면 손쉽게 빼다 쓸 수 있다.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연합뉴스


부담금은 재정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운 공익사업을 지원하거나 부정적 외부효과를 줄이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지우는데다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마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익사업과 납부자의 인과성이 없어 타당성이 결여된 부담금이 적지 않은데다 일몰기한 연장도 다반사다.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로 대표적인 행정규제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그래서다. 재정 판 ‘나꼼수’라는 혹평도 있다.

부담금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도로건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원인자 부담금을 처음으로 징수한 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익을 핑계 삼아 앞다퉈 신설했다. 1980년대까지 34개에 불과하던 부담금은 1990년대 들어 95개로 폭증하면서 국민과 기업의 주름살을 늘렸다. 결국 정부가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마구잡이식 신설을 억제하고 기존 부담금도 3년 단위 평가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그나마 90개 안팎으로 유지돼왔다. 부담금은 지난해 90개 항목에 걸쳐 20조9,000억원이 징수됐다. 국민 1인당 40만원꼴이다.





부처협의서 퇴출→존치 번복 일쑤

文 정부선 되레 구조조정 뒷걸음

부담금 정비는 규제혁파 척도

평가 구속력과 일몰 준수 시급





문제는 타당성 평가로 퇴출 판정을 받더라도 부처 협의 과정에서 되살아나기 일쑤라는 점이다. 부담금을 쌈짓돈쯤으로 여기는 부처 이기주의가 만연한 탓이다. 2017년 11월 작성된 기획재정부 평가단의 평가보고서를 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도 평가 대상인 42개의 부담금 중 11개는 타당성이 없다며 폐지 또는 통합, 조건부 폐지, 부과기준 개선 등의 권고를 받았다. 금액으로 따지면 3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듬해 5월 국회에 보고된 부담금 운용 종합보고서를 보면 광해방지의무자부담금과 전기사용자일시부담금은 퇴출 판정을 받았음에도 살아남았다. 환경개선부담금은 정부 차원에서 2016년 폐지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경유차 소유자에게 10만~30만원씩 징수하고 있다. 회수부과금과 재활용부과금 통합도 무산됐다. 한국정책학회에 보고된 ‘부담금 제도의 합리성 분석(2017년)’ 논문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평가 결과 폐지로 판정 난 22개의 부담금 가운데 실제 퇴출된 것은 18개 불과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기재부 평가단의 퇴출 권고는 그야말로 권고일 뿐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한번 만들어놓으면 기득권의 고착화 경향을 보인다. 쌈짓돈 수호를 위한 각 부처의 로비전도 치열하다. 부담금 평가와 심의 때는 제2의 예산전쟁을 방불케 한다.

문화관광부는 영화 티켓 한 장마다 입장권의 3%를 부담금으로 징수한다. 이 부담금은 지난 2014년 일몰 종료됐음에도 국회에서 오는 2021년까지 연장됐다. 영화 관람료 인상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린 한 영화관. /연합뉴스


출국할 때 1만원씩 내는 출국납부금은 타당성이 없다며 퇴출 판정을 여러 번 받았음에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은 대표적인 부담금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국회도 상임위원회 소관부처의 손을 들어주기도 한다. 영화 상영관 입장권 부담금(입장권의 3%)과 회원제골프장 입장료 부가금(최대 3,000원)은 각각 2014년과 2015년 일몰 종료돼야 함에도 국회 차원에서 연장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각종 부담금을 정비하는 것은 규제혁파의 척도가 된다”며 “정권 차원에서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공염불”이라고 꼬집었다.

현 정부 들어 부담금 구조조정 의지가 후퇴했다는 의구심도 든다. 평가부터 후해졌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2018년도 평가단 보고서를 보면 과거에 퇴출 판정을 받은 부담금이 ‘부과 적절’로 뒤집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국제교류기여금이 대표적이다.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여금은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의 필요성은 1992년 기금 도입 당시보다 현시점에 더욱 커졌다”며 존치 판정을 받았다. 이는 직전의 2015년 평가에서 “공적 영역의 국제교류사업 재원은 일반 조세에서 마련하라”며 ‘조세 전환’ 권고를 받은 것과 사뭇 다르다. 특히 여권을 발급받는 국민만이 국제교류에 기여하고 그 편익을 누리는 것이 아닌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2012년 평가보고서에는 아예 일몰(2017년 9월)을 준수하라고 적시했다. 기재부 소관인 연초경작지원출연금도 ‘폐지(2012년)’ ‘부과 필요성 재검토(2015년)’에서 2018년 ‘타당’하다며 존치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는 아예 폐기물처분부담금이 신설되기도 했다. 부담금 신설은 2011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대해 하승완 재정성과평가과장은 “중장기적 조세 전환을 권고하면 부처는 존치, 국민은 폐지로 각각 다르게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명확하고 분명한 평가 결론을 내겠다”고 설명했다.

해외 항공권을 구매하면 출국납부금과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라는 부담금이 각각 1만원과 1,000원씩 세금처럼 부과된다. 올여름 휴가철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모습. /서울경제DB


‘부담금 운용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확보하여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경제활동을 촉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부담금관리기본법 제1조 1항의 규정이다. 과연 이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책 목적이 달성됐거나 공익사업과 원인자의 관계가 불분명하다면 규제혁파 차원에서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평가의 구속력을 확보하거나 일몰 준수 규정을 보완할 필요도 있다. 부담금은 세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정주의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가 하면 국회의 관리·감독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소한만 허용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화를 보거나 여권을 만들고 출국할 때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니 말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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