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자녀 의혹 논란이 정부기관들의 ‘몸 사리기’로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침묵을 이어가다 겨우 아들 휴가 의혹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으나 2017년 6월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단장이었던 이철원 전 대령이 “청탁이 있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다시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야당은 추 장관 직위와 검찰 수사에 대한 이해충돌 여부를 국민권익위원회에 물었지만 권익위는 이례적으로 “법무부와 검찰에 사실 확인을 한 뒤 유권해석을 하겠다”며 판단을 미뤘다. 추 장관 딸 프랑스 유학 비자 청탁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으나 외교부는 사실관계 파악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검찰과 군, 정부 부처의 대응이 모두 시원찮은 상황에서 “정치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발언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추 장관의 거취 결정까지 고려한 발언으로 봤다. 그간 추 장관을 일방적으로 엄호하던 여권 분위기에도 변화의 조짐이 싹트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지만 않는다면 민주당과 정부 모두 ‘본질은 검찰개혁’이라는 자세를 더 밀고 나갈 것이란 게 아직까지는 중론이다. 추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유감을 표명하고, 부실 수사 의심을 받고는 있지만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하는 선에서 논란을 잠재우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권익위 “법무부·검찰에 사실관계부터 확인 후 이해충돌 판단”
지난 10일 국민권익위원회는 돌연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권익위는 “추 장관 아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해충돌에 해당하는지 유권해석에 앞서 추 장관의 검찰수사 관여 내지 영향력 행사 여부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엄격한 유권해석을 할 예정이고 유권해석은 사실관계 확인과는 전혀 별개인 법률적 판단 절차”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법무부와 검찰에 사실관계 확인 요청을 하게 된 것은 권익위가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부득이하게 취해진 조치”라며 “앞으로 권익위는 입법을 통해 조사권 확보 노력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나 검찰 측 협조 여부에 따라 결론이 더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이례적으로 미리 공표한 것이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실은 앞서 지난 3일 권익위에 △검찰의 추 장관 아들 미복귀 사건 수사가 이해 충돌에 해당하는지 △추 장관이 아들 휴가 민원 해결하기 위해 보좌관을 통해 군에 연락한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닌지 △직무관련성이 있지는 않은지 등을 질의했다. 국민의힘은 권익위를 통해 추 장관의 직무 배제를 추진하고 있다. 권익위의 판단은 해당 사건을 특임검사나 특별검사에 맡겨야 한다는 논의를 이끌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국회가 권익위에 특정 사안에 대한 유권해석을 문의할 경우 빠르면 2~3일 내에 답변을 주는 게 통상적인 관례다. 일반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10일 이내엔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초 정관계에서는 늦어도 11일께에는 권익위의 판단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권익위가 이날 입장문을 낸 것은 통상적인 기간을 넘겨 아무 해명 없이 답변이 미뤄질 경우 정치권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음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미 야당이 문의한 지 열흘이 지난 상태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미 법무부와 검찰에 사실관계 확인을 이번 주 안에 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고 늦을 경우 독촉할 것”이라며 “정확한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로서는 사실관계 파악을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野 “전현희, 추미애 사실관계를 왜 秋한테 묻고 판단하나”
야당 측은 권익위의 이 같은 해명에 즉각 반발했다. 성일종 의원은 10일 입장문을 내고 “제가 전날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통화해 보니 법무부에 사실관계를 확인받은 후에 답변을 제출하겠다고 했다”며 “추 장관에 대한 유권해석을 추 장관에게 물어보고 답변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가 질의한 내용은 복잡하거나 어렵지도 않은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전현희 위원장이 정치적인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이라며 “권익위는 일반 국민들에 대한 유권해석도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답변을 내놓느냐”고 물었다. 아울러 “전 위원장은 민주당 의원 시절 추 장관을 당 대표로 모신 적이 있다”며 “과거 자신의 상관인 추 장관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유권해석을 내놓겠다는 것은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성 의원실 관계자는 같은 날 본지 취재진에게 “이해충돌 유권해석을 하는 데 있어서 ‘사실관계 확인’은 전혀 필요가 없는 행위이고 전제가 되지도 않는다”며 “우리 질의 사항은 ‘검찰 인사권과 지휘권을 갖는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 관한 수사를 검찰이 하는 것이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느냐’인데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이란 사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권과 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 △검찰이 추미애 아들을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 등 필요한 사실관계는 모두 확인이 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권익위가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이라는 팩트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더 이상 무슨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권익위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건 추 장관이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는 데 필요한 사실관계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조국 사태 당시 박은정 전 권익위원장은 국회에서 “법무부 장관 배우자가 검찰 수사를 받는 경우 장관과 배우자 사이에 직무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며 “이해 충돌이나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땐 신고를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직무 배제 또는 일시 정지 처분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딸 佛비자 문의도 ‘사실’... 외교부 “파악 쉽지 않아”
추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한 권익위 판단뿐 아니라 추 장관 딸 프랑스 비자 청탁 의혹에 대한 외교부 자체 진상 규명 역시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TV조선은 2017년 당시 추미애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A씨가 추 장관 둘째 딸의 프랑스 유학 비자와 관련해 외교부에 청탁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A씨는 방송에서 “(추 장관 딸이) 유학을 가야 하는데 신청은 늦고 입학 날짜는 다가와서 좀 빨리 처리해달라고 (청탁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장관 지시를 받고 국회에 파견 나와 있던 외교부 협력관에게 비자를 빨리 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줬다”고 덧붙였다. A씨는 또 프랑스 대사관 측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추 장관이 국회 외교부 협력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추가 폭로도 했다.
추 장관 측이 2017년 국회 담당 외교부 직원을 통해 딸 프랑스 비자 관련 내용을 물은 것 자체는 사실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다만 이에 대해 일반론적으로 간략히 답하고 추가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 발급 담당 부처가 아닌 만큼 관련 안내만 했다는 것이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청탁이 있었는지 등 관련 사항을 모두 파악 중”이라면서도 “주프랑스 대사관 소속 관련 사항도 지금 파악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지 않으면 권익위는 물론 외교부까지 진상 파악에 긴 시간을 쏟을 것이란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추 장관 딸 사건 역시 아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동부지검이 맡기로 했다. 어느 부서가 담당할지는 미정이다.
추 장관 측은 8일 “비자 발급은 청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의혹을 극구 부인하는 입장문을 냈다. 추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변호인단은 9일 부대 배치 압력 의혹을 보도한 SBS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하기도 했다.
정세균 “국민에 민망... 정치적 방법으로 상황 정리할 수도”
이런 상황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추 장관 사건과 관련해 다소 미묘한 발언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정 총리는 이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추 장관의 아들 특혜 논란에 대한 해명이 충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국무위원 자녀 문제로 국민에 심려를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참 민망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조속히 정리돼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경제 때문에 힘든 국민들이 이런 문제로 걱정을 더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추 장관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온 다른 여권 인사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태도였다.
정 총리는 “추 장관과도 이 문제를 우리 젊은이들이 걱정한다고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며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를 종결을 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짚었다. 이어 “검찰이 이 문제를 수사하지 않고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다”며 ‘상황을 정리할 다른 방법’에 관해선 “정치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치적 방법이 추 장관의 거취를 뜻하는지를 두곤 “그런 것까지 말한 건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야당의 특별수사본부 설치 주장에 대해선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검찰이 빨리 수사를 매듭짓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손절설’까지 제기됐지만, 그래도 ‘본질은 검찰개혁’
이날 정 총리 발언은 여권 내의 조금 다른 분위기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여권 인사들은 그간 추 장관 의혹과 관련해 야권 정치인들에 맞서 추 장관을 앞다퉈 엄호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이는 △추 장관 아들 서씨의 휴가 미복귀과정에서 추 장관 측이 군부대에 전화를 걸어 휴가 연장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 △서씨를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 △서씨 자대 배치를 의정부에서 용산으로 옮겨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 △딸 프랑스 유학 비자 발급을 청탁했다는 의혹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 등이 연이어 제기될 때도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특히 정 총리가 제시한 ‘정치적 방법’에 대해선 여러 추정이 나왔다. 이른바 추 장관 ‘손절설’부터 여권 인사들의 ‘분열설’까지 각종 낭설이 난무했다.
다만 당정이 당분간은 추 장관에 힘을 실으면서 여론과 지지율 추이를 더 살필 것이란 전망이 현재로서는 가장 우세하다. ‘보여주기식 뒷북 수사’라는 비판은 있지만 서울동부지검의 신속한 수사 종료와 그 결과에 ‘법리적’ 판단을 맡기고, 국민 정서는 추 장관의 유감 표시 등 ‘정치적’으로 달래는 방법을 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다음 주 국회에 예정된 대정부 질문에서 추 장관이 유감을 표명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어쨌든 ‘본질은 검찰개혁’이기 때문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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