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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화장실 쓰겠다”는 트랜스젠더…손 들어준 日 대법원 [일본相象]


‘일본相象(상상)’은 이웃나라 일본의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한국과 닮은 사회적 현상·맥락을 짚어보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본 경제산업성의 50대 직원. FNN 보도화면 캡처




‘성중립 화장실(혼성 화장실 혹은 모두의 화장실)’이 지난해 3월 국내 처음으로 성공회대에 설치된 데 이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대 등으로 확산된 가운데 일본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파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수술을 받지 않고 호르몬 치료만 받은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직원에게 여자화장실 사용을 제한한 것이 위법이라고 최종 판단한 것이다.

지난 11일 아사히신문·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에 근무하는 50대 트랜스젠더 직원 A씨가 “직장 내 여성화장실 사용을 제한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 상대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고재판소 제3소법정은 "성 정체성(성 동일성) 장애로 인해 여성으로서 근무하는 경산성 직원에 대한 여성화장실의 사용을 제한한 국가의 대응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경산성에 입사한 후 1999년에 ‘성 정체성 장애(육체적 성과 반대의 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로 진단받았다. 그는 건강상 이유로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었으며 호르몬 치료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법률상 성별 전환은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만 가능해 호적에는 남성으로 남았다.

A씨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여성으로 살다가 2010년부터 여성 옷차림으로 근무하는 것과 여성 휴게실 사용이 허용됐다. 다만 경산성은 다른 여직원에 대한 배려를 이유로 사무실이 있는 층에서 2층 이상 떨어진 여성화장실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직원은 이 제한을 철폐해달라며 공무원 인사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인사원(한국의 인사혁신처에 해당)에 경산성에 대한 행정조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화장실 사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처우 개선을 인사원에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이에 그는 2015년 인사원 조치에 반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아사히TV 보도화면 캡처


최고재판소는 "인사원의 판정은 다른 직원에 대한 배려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한편 원고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해 받는 일상적인 불이익을 부당하게 경시했다"며 재판관 만장일치로 위법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도쿄지방재판소는 2019년 12월 1심 판결에서 "자신이 인정하는 성별에 맞는 생활을 한다는 중요한 법적 이익의 제약"이라며 인사원 판정을 취소했다.

반면 도쿄고등재판소는 2021년 5월 2심 인사원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을 통해 "경제산업성이 전 직원에게 적절한 직장 환경을 만들 책임을 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A씨가 최종 승소함에 따라 원고의 여성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인사원 판정을 취소하는 방향으로 뒤집혔다.

이 판결은 일본에서 성소수자의 직장 환경과 관련한 소송에서 최고재판소가 처음으로 내린 것으로 향후 공공기관과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사히신문은 “최고재판소는 ‘본인이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개인의 중요한 법적 이익’이라는 원고의 입장을 수용했다”며 “경산성은 이 직원에게 여자 화장실 사용 제한을 폐지해야 할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NHK는 "성 소수자들의 직장 환경에 관한 소송에서 최고재판소가 판단을 내린 것은 처음으로, 다른 공적 기관이나 기업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최고재판소의 결정과 관련해 판결 내용을 검토하고 새로 마련된 성소수자 이해증진법(LGBTQ법)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성공회대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연합뉴스


국내에서는 아직 일본과 같이 트랜스젠더 여성·남성이 특정 성별의 화장실을 이용하겠다며 소송을 건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중립 화장실 논의가 이어져 왔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응답자 수는 전체 조사자 591명 가운데 36%(212명)로 나왔다. 트렌스젠더 10명 중 3.6명은 성 정체성으로 화장실 이용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성공회대에 이어 KAIST가 지난해 12월 전산학부 건물 내의 남성용 장애인 화장실 일부를 ‘모두의 화장실’로 교체했고 준공 예정인 전산학부 증축 건물에 ‘모두의 화장실’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서울대도 2026년 준공 예정인 문화관 증축 및 리모델링 설계도에 ‘모두의 화장실’을 반영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을 앞두고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남녀 공용 화장실의 경우 ‘몰래카메라’로 인한 불법 촬영이나 성폭행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범죄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화장실 범죄가 2015년 1981건, 2016년 2044건, 2017년 2081건, 2018년 4224건, 2019년 4528건으로 5년 동안 약 2.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화장실문화시민연대는 지난달 23일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신민향 학생부모인권연대 대표는 성공회대를 비롯한 대학가의 성중립 화장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들며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간담회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정기관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참의견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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