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괴짜’ 허인회의 심장을 뛰게 하는 세 가지…“스피드, 아내, 그리고 아들”

20대 초반엔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매료

20대 후반엔 아내 만나 열정적인 사랑

30대 후반엔 아들 얻고 새로운 삶 경험

“그래도 내 머린 노랗고 심장은 뜨겁다”

한때 스피드에 매료됐던 허인회는 요즘은 아들에 푹 빠져 산다. 대회장에도 항상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그는 "아들이 원치 않더라도 골프를 꼭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골프가 직업으로서 만족도가 높다는 게 허인회의 설명이다. 사진 제공=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20대 초반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매료됐던 허인회는 20대 후반에는 아내를 만나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 30대 후반인 지금은 ‘아들 바보’가 됐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색은 그대로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뜨겁다.


그를 보면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떠오른다. 제임스 딘은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이다. 그도 얌전하거나 모범생적인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에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도 제임스 딘처럼 스피드에 광적으로 빠졌다. 심장의 쿵쾅거림을 좋아해서다. 그 순간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대학 시절 딱 한 번 맛본 슈퍼카의 폭발적 스피드는 그를 레이싱 트랙으로 이끌었다.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할 때면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한때 스포츠카 4대, 오토바이 2대를 보유했다.

그는 더 이상 트랙을 내달리지 않는다. 그의 심장을 쿵쾅 뛰게 한 여인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사랑 같은 거 잘 모르지만 꽂혔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사랑을 반대하자 돈, 스포츠카, 오토바이 등 모든 걸 두고 집을 박차고 나왔다. 두 사람은 모텔방을 전전했지만 달콤했다. 선수와 캐디로도 함께 필드를 누볐다. 골프장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다 아들을 얻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쿵쾅거림이 그를 찾았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 젖먹이 아들까지 데리고 셋이 필드를 다녔다. 지난해 아들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아빠 이런 사람이야”라고 외쳤다.

이쯤이면 다들 누군지 알겠지만 그는 ‘괴짜 골퍼’ ‘게으른 천재’ ‘필드의 사랑꾼’ 등의 수식어를 가진 허인회다. 스피드, 아내, 아들은 허인회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세 가지다.

아들에게 퍼팅을 가르쳐 주고 있는 허인회. 어린 시절 허인회는 아빠를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그런 ‘무서운 아빠’가 되고 싶단다.


“아이와 투어를 다니면 힘들지만 한 번의 웃음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아들을 끔찍하게 여긴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거에 깜짝 놀랐다. 아는 형들이 아이들한테 한 시도 눈을 못 떼는 걸 봤을 때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너무 팔불출 아냐 그랬다. 근데 내가 그러고 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는데 자식한테는 그렇게 되더라.”
아이가 생긴 후 많은 게 바뀌었을 것 같다.

“우선 담배를 안 피운다. 그렇다고 끊었다고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혹시나 몰래 피웠을 때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근데 진짜 안 피운다. 술도 잘 안 마신다. 술맛도 떨어졌다. 원래 술 취해서 늘어지고 비틀거리는 거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시지 않게 됐다.”

술과 담배 말고는?

“문득문득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차나 취미 같은 걸 통해 기분이 좋아졌다. 또는 사람들 만나서 술 마시고 노는 걸 즐겼다. 지금은 아이를 생각하면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든다.”

아이와 함께 투어를 다니고 있다. 힘들지 않나.

“준비할 게 너무 많다. 귀찮긴 해도 준비과정의 어려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게 아이의 웃음이다. 그 한 번의 웃음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그 자체의 행복지수가 귀찮음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지난겨울 태국 동계훈련도 아내, 아이와 함께 간 것 같던데.

“동계훈련이라고 말하긴 그렇긴 하다. 와이프 입장에서는 시부모님 계시는 곳인데 함께 해줘서 고맙다. 와이프가 청소부터 아이 밥 먹이는 것 등에 꼼꼼한 편이다. 근데 태국 환경이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열악하지 않나. 아무리 청소를 해도 벌레가 나오기도 하고 수돗물 사정도 국내보다는 못하다.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래도 석 달이나 잘 견뎌줬다. 거기서 아이 돌잔치도 했다. 중간에 아이가 한 차례 심하게 아파서 힘들기도 했다.”

"엄마, 달려~" 태국 훈련 중. ‘스피드 광’이었던 허인회는 젊은 시절 자동차 4대와 오토바이 2대를 소유했던 적도 있었다.


허인회는 비시즌 기간 태국 보난자CC에 머물며 동계훈련을 했다. 그곳은 허인회의 아버지가 임차해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한때 허인회는 모자 정면에 ‘보난자’ 로고를 달고 다녔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던 그의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따뜻한 곳에 머물며 골프나 치자고 했던 게 사업으로 이어졌다.

옆에 있던 허인회의 아내 육은채 씨에게 시부모님이랑 지내면서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시부모님이 아이를 많이 봐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편했죠. 덕분에 오빠랑 둘이서 자유시간도 조금씩 얻었고요. 시아버지가 손주를 어찌나 예뻐하는지 가끔은 오빠한테서 아들을 보호해줘요. 호호. 저는 시부모님이랑 더 살뜰해지는 계기가 됐고요.” 허인회는 “아들이 가끔 할아버지한테 ‘아빠, 아빠’ 하기도 한다”며 “모르고 하는 소린 줄 알지만 그거 은근히 서운하더라”라며 웃었다.

해외에서 아이가 아팠을 때 힘들었겠다.

“아이가 처음으로 엄청 아팠던 건데 못 견디겠더라. 내가 뭘 해줄 수 없다는 거에 속상하고 주체가 안 될 정도로 화도 났다. 아이가 아팠던 일주일 동안 진짜 예민했다. 그 전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아이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신기하다.”

아이한테도 골프를 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와이프는 아이가 좋아하는 거, 아니면 의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데 나는 무조건 골프다. 사실 주변에서 나한테 골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건 오해다. 주니어 시절의 많은 노력 덕분에 이 정도까지 올라온 거다. 골프는 노력만 하면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나도 골프를 억지로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한테 엄청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아들이 날 미워하더라도 억지로 시킬까 생각 중이다.”

“어린 시절 난 골칫덩이 아들…아빠가 무서웠지만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아버지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아빠가 된 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나.

“아직 아버지의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들이 마냥 귀여워서 다 해줄 것 같다는 마음정도를 이해할 수준이다.”

어린 시절 아들로서 허인회는 어땠나?

“많이 부족하고 골칫덩이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불만이 많으셨다. 아버지는 골프 잘 치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인성이 바르고 착실한 걸 원하셨다. 하지만 난 사고뭉치에 말 안 듣는 아들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한테 맞았던 게 스물여섯 살이었다.”

스물여섯이면 적지 않은 나이인데, 뭣 때문에 맞았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갔다. 새벽에 집 앞에 도착했는데 아버지가 주무시지 않기에 차에서 잠깐 잔 후 들어갔다. 아버지가 출근하셨겠다 싶었는데 문 앞에서 마주쳤다. 술 냄새가 나니까 바로 아버지 손이 올라오더라. 맞고 쓰러졌는데 술에 취해 있었고, 아프기도 해서 그 상태로 잠들었다. 그때 턱이 돌아가서 2주 정도 얼굴에 붕대 감고 빨대로 죽만 먹었다.”

부모님 속 상하게 하는 말도 하고 그랬나.

“없다. 난 항상 혼이 나는 입장이었다. ‘잘못 했어요’ ‘잘 할게요’ ‘죄송해요’가 대화 내용의 주였다. 아니면 도망 다니는 아들이었다.”

반항을 안 한 걸 보니 그래도 착한 편이었나 보다.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왜?

“금전적으로 부모님의 혜택을 보고 있었다. 이미 어렸을 때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반항을 안 한 거다. 어렸을 때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란 영향도 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지한테 선 넘는 멘트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밥 먹다 작은아버지 뺨 올리는 수준이었다. 부모님께 말대꾸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싫은 거라도 일단 앞에서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해야 했다.”

그래도 나름의 반항은 없었나.

“집에 늦게 들어가고, 술 마시고, 머리 염색하고, 귀고리 하고, 이게 내 나름대로는 엄청난 반항이었다.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게 머리 염색과 귀 뚫고, 오토바이 타는 거였다. 그걸 다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용납하셨나 보다.

“아니다. 도망 다녔다. 해외 투어에 가거나 집에 와도 곧바로 스케줄 있어 시합장에 가야 한다고 나갔다. 오토바이도 숨기면서 탔다. 걸리면 아버지가 다 부쉈다. 결혼을 한 후에야 이제 너도 한 가정의 가장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며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근데 지금도 ‘머리색이야 네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조금 짧게 자르면 안 되겠냐’고 하신다. 하하.”

어떤 아빠가 되고 싶나.

“무서운 아빠!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아버지를 엄청 존경하지만 여전히 무서워한다. 그래야 좀 기강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근데 벌써부터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와이프가 그런 부분을 잘 하고 있다.”

허인회와 아내 육은채 씨는 선수와 캐디로도 항상 붙어다녔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한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지만 둘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결국 우승을 합작하며 이겨냈다. 아내 육은채 씨는 “이제 스트레스 없이 투어를 함께 다닐 수 있겠다 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한 때 ‘캐디 아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스트레스 심했지만 우승으로 ‘훌훌’ 털어


아내와 함께 필드를 누볐는데.

“2014년부터 시작했다. 와이프의 캐디 경력이 화려하다. 일본 투어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뛰었고, 미국 PGA 투어 소니 오픈에서도 함께 했다.”

캐디 아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군에 있을 때는 와이프가 백을 멨다가 놀러 나왔냐는 비판이 일어 시합 도중 백을 내리고 교체한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제대하면 둘이 꼭 붙어 다니자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근데 성적이 조금 좋지 않으니까 와이프가 캐디를 해서 그런다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라고도 하더라. 그것 때문에 둘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근데 내린 결론이 그런 비판이 없어지게 우승할 때까지 하자였다. 그 결심을 하자마자 GS칼텍스 매경오픈(2021년)에서 우승했다.”

아내 육은채 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엉엉 울기도 자주 했다. 우승을 한 후 여론도 바뀌고 재밌게 다니고 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겼다”며 “아이를 낳은 후 곧바로 캐디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게 너무 재밌어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후에는 다시 캐디를 할 생각이 있을까. “아뇨. 캐디 할 때는 제 신분이 더 낮았지만 지금은 살짝 올라가 있잖아요. 괜히 핀잔 듣거나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뭣 때문에 해요. 하하.”

아내는 ‘남편 허인회’에게 몇 점이나 줄 것 같은가.



“전 200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와이프 기준으로는 10점? 마음에 안 들어 한다. 나름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도 치우고, 청소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와이프 입장에서는 하나 마나인가 보다. 모든 남편들이 다 그러지 않나 싶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속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 그게 가장 크다. 그건 너무 어렵다.”(웃음)

아내가 생각하는 허인회의 매력은 뭘까. “자상함이요. 그리고 항상 가족과 함께하려고 해요. 하루도 안 떨어지려고 해요. 지난해에도 저한테는 미안하지만 함께 투어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모텔 환경도 그렇고, 제가 10개월 동안 모유를 먹였는데 대회장에 수유실이 따로 있지 않아서 몰래 숨어서 먹여야 했어요. 그래도 오빠가 같이 다니자고 하는 마음이 고마워요.”

한때는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셨다고 하던데.

“애당초 여자를 못 만나게 하셨다. 아내를 몰래 만나고 일본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우승을 했다(2014년 도신 골프토너먼트). 인터뷰 때 일본 기자들이 누구냐고 묻기에 ‘여자친구’라고 했는데 ‘예비 신부’라고 기사가 나갔다. 그러자 아버지의 일본 사업 파트너 분들이 결혼 축하한다고 연락을 한 거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면서 곧바로 다음날 일본으로 날아오셨다. 아내랑 아버지가 마주치면 큰일날까 싶어 부랴부랴 아내를 한국으로 보냈다. 근데 결정적인 건 군 복무 중이던 2016년 5월에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혼인신고를 한 거였다.”

당시 호적을 파라고 했다던데.

“아버지가 ‘너 같은 아들 필요 없다. 그냥 죽인다’고 하셨다. 낳은 것도 내 맘대로 했으니까 죽이는 것도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하셨다. 좀 세게 말한 거다. 나도 지지 않고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이 친구랑 밑바닥부터 열심히 살겠다, 그러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벌어놓은 돈과 차 등을 모두 놓고 집을 뛰쳐나왔더니 통장에 있던 300만 원이 전 재산이더라. 모텔 생활 4개월을 했다. 그 후 시즌이 시작되고 상금이 들어오면서 모텔을 벗어났고, 돈을 좀 더 모으려고 처가생활을 시작했다. 와이프가 어렸을 때 살던 조그만 방에서 몇 개월을 지냈다. 그때 돈도 돈이지만 심리적으로도 엄청 힘들었다.”

아버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포기하지 않고 만났던 이유는 뭐였을까.

“꽂힌 거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처음 보자마자 ‘어, 나 이 친구랑 결혼해서 평생 살고 싶은데’ 그게 다였다. 연애할 때도 일단 날 만나라고 했다. ‘싫어도 만나, 그런 후 생각해 보고 싫으면 그때 헤어지자’라고 했다. ‘뭐 이런 새끼가 있나’ 했다고 하더라.”

지난해 iM뱅크 오픈 우승 후 가족 기념사진. 아들 앞에서 우승한 그는 50대에도 정규 투어에서 우승을 하는 게 꿈이다.


지난해 iM뱅크 오픈에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통산 5승째를 달성했다. 이제 30대 후반이다.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것 같나.

“시니어 투어 뛸 나이에 레귤러(정규) 투어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다. 그런 선수가 흔치 않으니까 꼭 해보고 싶다.”

남편의 말을 듣던 아내는 “그때는 (당신이) 이수(아들) 백도 메야지. 캐디 입장 한 번 느껴봐”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이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엄마들의 장기를 보여줬다. “아빠! 아빠나 똑바로 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자신의 인생을 골프에 비유하면 지금쯤 몇 번 홀에 와 있을까.

“2번 홀 티샷 정도 치고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이 길다고 생각해서다. 1번 홀 스코어는 버디다. 티샷 잘 치고, 두 번째 샷에서 조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1타 줄였다. 사랑하는 아내 만나서 결혼하고 예쁜 아이도 얻었으니까.”

인생의 멀리건을 하나 받는다면?

“아직은 아껴두고 싶다. 농담으로 하자면 비트코인 상장했을 때!”

코인에 투자했나.

“안 하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 중 한 명이 했다. 그 친구랑 골프 치면서 1타에 1달러짜리 내기를 한 적이 있다. 근데 자기는 현찰 없으니 대신 코인을 주겠다면서 ‘코인을 50개 준다, 100개 준다’고 했었다. 난 어떻게 받는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걸로 해준다고 하더라. 그럼 이따 저녁에 피자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피자집에서 코인으로 먹었다. 피자 두 판 먹는데 코인 20개 정도 썼던 것 같다. 나머지는 너나 쓰라며 받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당시에 100개만 받았어도 얼마인가. 하하.”

내기를 크게 한 적은 없나.

“없다. 나는 사실 재미로 웃고 떠드는 작은 내기는 해도 진짜 경쟁을 별로 안 좋아한다. 돈이 커지면 진심이지 않나. 그러면 신경전도 들어가고…. 난 그런 승부욕은 없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내기할 때도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알았어, 내가 졌어’ 그런다.”

골프선수로서 승부욕이 없는 건 단점 아닌가.

“맞다. 와이프도 내가 승부욕이 너무 없다고 한다. 근데 물욕은 좀 있다.”

갖고 싶은 건 뭔가.

“어렸을 때부터 차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 금액대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40억~50억 원대 차를 갖고 싶다. 하하. 원래 대학교 때는 코닉세그(스웨덴 슈퍼카 브랜드)를 좋아했다. 자동차 동호회 활동을 통해 우연히 한 번 타봤는데 그때 ‘맛’이 갔다. 내 인생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스피드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스피드였다. 그때 완전히 뿅 갔다. 난 외관이 예쁜 차보다 출력이 높은 차를 좋아하는데 금액 대비 성능도 따진다.”

그럼 소유했던 차 중 출력이 가장 높았던 차는?

“지금 가지고 있는 차다. 대략 750마력쯤 된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람보르기니 등은 순정이었다. 가능하다면 2000~3000마력짜리 차를 갖고 싶다.”

차에 대해서는 여전히 로망이 있나 보다.

“내 DNA는 스피드다. 심장이 뛰는 걸 즐긴다. 오토바이를 좋아했던 것도 돈을 제일 안 들이면서 스피드를 즐길 수 있어서였다. 내가 탔던 혼다 오토바이는 제로(0)에서 100km까지 도달하는 데에 2.3초 걸렸다. 그냥 빠른 걸 좋아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도 있는 데다 그만한 돈도 없다.”

한때 차 4대, 오토바이 2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때는 무슨 돈으로 구입했나.

“아버지 돈! 그러니 아버지 말을 잘 들어야했다. 오토바이는 몰래 돈을 모아서 중고로 샀고, 자동차는 아버지랑 우승이나 연습 등의 목표를 내건 뒤 그걸 따낸 거였다. 비싼 차만 있었던 게 아니고 500만~1000만 원짜리 중고를 사서 2000만~3000만 원 튜닝비를 들였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1억 원짜리를 사달라고 하는 것보다 튜닝비까지 포함해도 4000만 원짜리를 원하니 사 주신 거다.”

클럽 피팅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렸을 때부터 골프채를 보면 똑같은 모델인데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바꾸고 그냥 쓴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 아버지는 최고 기술자들이 만들었는데 왜 네 마음대로 바꾸느냐고 했다. 피팅 때문에 아버지랑 엄청 싸웠다. 결국 아버지가 그럼 똑같은 채를 여러 개 사 줄 테니 바꾸지 말고 그 중에 맞는 걸 쓰라면서 6개를 사 주신 적도 있다. 아버지도 대단하신 거다. 피팅 시행착오도 엄청 많았다. 정보도 부족하고 실제와 이론도 달랐다.”

태국 동계훈련 기간 중 오른 산에서 한 컷. 허인회는 “아내를 처음 보자마자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생의 멀리건? 아내 일찍 만나 소꿉친구였으면…사랑, 그런 거 잘 모르지만 마음이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 개조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편법을 좋아한 거다. 게임에서도 대등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편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현질(게임의 아이템 등을 현금으로 사는 것)을 했을 때 월등히 차이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피팅도 내 근력이나 기술에 비해 더 잘 치고 싶어서 연구한 거다. 2014년 한국과 일본에서 장타왕에 오른 것도 피팅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보면 된다. 자동차 튜닝처럼 피팅도 하면 할수록 깊게 빠진다.”

허인회 하면 어떤 골프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공을 잘 치는 선수. ‘걔는 공 좀 잘 치지’ 이런 얘기를 듣고 싶다. 선수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골퍼이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다시 아내와의 연애 시절 얘기를 잠깐 나눴다. 허인회는 이런 말을 했다.

“아까 인생의 멀리건을 하나 받을 수 있다면 언제 쓸 거냐고 물어봤죠? 되돌릴 수 있다면 와이프를 좀 더 일찍 만났으면 해요. 사귀는 건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때부터요. 그러면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했을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소꿉친구였으면 해요. 사랑, 뭐 그런 거 잘 모르는데 그렇더라고요.”

PROFILE

출생: 1987년 | KLPGA 투어 데뷔: 2008년 | 소속: 금강주택

주요 경력: KPGA 투어 5승, JGTO 1승

2023년 iM뱅크 오픈 우승

2021년 GS칼텍스 매경오픈 우승

2018년 KPGA 투어 인기상

2015년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우승(KPGA 선수 최초 군인 신분 우승)

2014년 JGTO 도신 골프토너먼트 우승, 한국과 일본 투어 동시 장타왕

2008년 필로스 오픈서 KPGA 투어 첫 우승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