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2028년부터 완전히 퇴출하기로 했다. 신규 수입 계약은 내년부터 즉시 금지되며, 기존 계약도 단계적으로 종료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추진돼온 탈(脫)러시아 에너지 전략이 구체적 이행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주간 회의에서 ‘러시아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시행을 위한 규정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17일 이전 체결된 단기 수입 계약은 내년 6월부터, 장기 계약은 2027년 말까지 모두 종료된다. 내년 1월 1일 이후 신규 계약 건은 모두 허용되지 않는다.
집행위는 공급업자들이 퇴출 시한 직전 대량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 채택 직후부터 신규계약을 차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와 관련해 EU 당국자는 “계약 파기에 따른 법적 분쟁 우려는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으로 방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U는 러시아 국적 고객에 대한 EU 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이용도 내년부터 전면 금지한다. 다만 에너지 공급망의 불안정을 우려해 특정 회원국에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비상 예외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EU는 2023년 기준으로 러시아산 가스를 총 35bcm(10억㎥) 수입했으며 이 중 약 20bcm은 LNG 형태였다. 이는 전체 가스 수입의 약 19%에 해당하며, 금액으로는 약 150억 유로(23조7000억 원) 수준이다.
러시아산 원유 역시 2027년 말까지 전면 퇴출된다. 전쟁 전에는 EU 석유 수입의 45%를 차지했지만 제재 이후 3%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다. 이에 따른 수입액은 약 70억 유로(11조 원)로 추산된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는 연간 약 220억 유로(34조7000억 원)의 수출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는 “이번 조치는 러시아 화석연료와의 완전한 결별을 목표로 한다”며 “다만 각국이 안정적으로 대체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과 국가별 계획 수립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모든 회원국은 오는 2026년 3월까지 ‘국가별 에너지 다각화 이행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해당 계획에는 러시아 에너지의 대체 공급선, 인프라 확충 방안, 비상시 대응 전략 등이 포함돼야 한다.
한편 이번 규정은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발효된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일부 국가는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인구 기준 과반(65%)을 충족한 15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가 가능해 EU 집행위는 무난한 가결을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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