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 중 타이레놀(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한 뒤 출산하면 아기의 자폐증 위험이 커진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그동안 두통, 발열 및 기타 통증 관리에 가장 안전한 약물로 여겨져 임신 중 유일하게 복용할 수 있는 해열제였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계 내에서 자폐증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고열이 태아 발달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큰 만큼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세트아미노펜은 기본적으로 타이레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임신 중 복용하면 태어날 자녀의 자폐증 위험을 매우 높일 수 있다”며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복용해야 하겠지만 조금만 복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임신부들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타이레놀 복용에 관한 질문과 불안을 호소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벌써 타이레놀을 여러 차례 먹었는데 괜찮은지 걱정이다”, “독감에 걸려서 열나지 말라고 많이 먹었는데 임신부는 아프면 약 먹으면 안된다는 건가”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 외에도 다양한 해열·진통제에 활용되는 약으로 임신부가 해열을 위해 복용할 수 있는 유일한 약으로 꼽혀왔다. 해열·진통제 계열로 이부프로펜 계열 약들이 있지만 태아의 신장 기능 저하 등을 우려해 복용이 제한된다.
다만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각국의 보건당국은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간 뚜렷한 연관성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FDA는 “아세트아미노펜의 라벨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면서도 “임신부가 특정 상황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안내했다. 이어 “아세트아미노펜과 신경계 질환 사이의 연관성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지만 인과관계는 확립되지 않았으며 과학 문헌에는 상반되는 연구들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의료계와 과학계에서도 이번 조치가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대 규모로 진행된 연구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군과 그렇지 않은 군의 자폐 위험도 차이는 매우 미미한 수준(0.06%포인트)”이라며 “심지어 같은 가정 내 형제 비교에서는 이 차이마저 사라졌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번 발표가 아세트아미노펜 일반의약품(OTC) 판매에 영향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타이레놀 외에도 종근당 ‘펜잘’, 대웅 ‘이지엔6에이스’ 등 다수의 제약사들이 같은 성분의 해열제를 판매중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른 해열제 성분인 아스피린과 이부프로펜은 태아에 미치는 악영향이 명확해 대체할 성분이 없다"며 "판매가 다소 줄 수는 있지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의약품 계열의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의 경우 의사와 상담을 거치는 만큼 타격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타이레놀은 지난해 국내에서 688억 원 어치가 판매됐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 대비 자폐증 유병률이 약 400% 늘었다는 미 보건당국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 아기에게도 주지 말라"고 촉구해왔다. 네이처는 타이레놀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더 큰 장애 요인은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여성은 복용하지 않는 여성보다 일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자폐증 유병률 증가의 대부분도 실질적인 증가보다는 진단 기술과 건수가 늘며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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