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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IEW]'나들이' 손숙·정웅인이 전한 묵직한 울림…"결국 사람 노릇이 우선시 돼야"

KBS2 드라마스페셜 2020 ‘나들이’. / 사진=KBS 제공




“어쩌자고 똑같은 병을…내 새끼들은 어떡하라고.”

부모가 되는 순간,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먹는 음식, 입는 옷은 물론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자신보다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떨이 과일만 먹고 남은 잔반을 처리하더라도 자식 밖에 모르는 ‘부모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갑자기 찾아온 병 앞에서도 자신의 현재와 미래가 아닌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지난 3일 아름다운 노년의 우정을 소재로 한 KBS2 드라마스페셜2020 ‘나들이’가 방송됐다. ‘나들이’는 장사의 달인 할머니와 어수룩한 과일 장수 아저씨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한민국 대표 연기장인 손숙과 정웅인이 아름다운 노년의 우정을 통해 사람이 그리운 요즘, 사람 냄새를 깊이 있게 전한다.

극은 치매 노모 밑에서 홀로 두 자녀를 키운 할머니 금영란(손숙 분)이 자신 역시 치매 진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과일 장수 방순철(정웅인 분)에게 떨이 과일만 사먹던 영란은 물건을 떼러 갈 때 자신도 좀 데려가 달라며 동행을 부탁한다. 순철을 따라 나섰다가 그의 어수룩한 면을 발견한 영란은 도합 50년 장사 경력을 살려 장사 수업에 나선다.

/ 사진=KBS 제공


영란과 순철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힘들게 키운 자식들은 영란을 엄마가 아닌 자신의 지갑처럼 대했고, 순철의 딸 역시 빚쟁이들을 피해 이혼 도장 하나 찍어준 게 다인 아빠에게 ‘아빠 노릇을 해달라’며 공무원 시험 학원비를 요구했다. 두 사람은 자식이 미울 때도 있지만 또 이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부모 마음’이란 걸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부모 마음’은 영란이 치매로 돌아가신 엄마의 무덤을 찾아 자식 앞에선 말 못한 사실을 고백할 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란은 “서방도 없이 황소 같은 애 둘씩이나 키우는 중에 엄마까지 노망나서 어떻게 진종일 엄마 밥상에 고봉밥을 올려”라며 “그래서 미안하다고 죽어서 갚는다고 했는데 어쩌자고 똑같은 병을…내 새끼들은 어떡하라고”라며 엄마를 원망한다.



결국 영란은 자식·부모 노릇도 마음만큼 잘 되지 않은데다 치매로 인해 사람 노릇까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얼마 전, 영란에게 돈을 부탁했다가 실수했다는 생각에 사과한 순철은 쓰러진 그를 목격한다. 그 옆에 영란이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돈다발을 보고 ‘딸에게 줘야된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부모 노릇 대신 사람 노릇을 하기로 선택한다.

드라마는 사람, 부모, 자식 노릇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극에서 정웅인은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 옆에 놓인 돈을 보고 딴 생각을 품었던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내 앞에서 그는 “뭐 못 해주면 부모 못 하는거냐? 나 사람 아니었다. 부모 전에 사람이 아니냐, 부모 되려고 사람 아니어도 되는 거냐”며 눈물을 흘린다.

/ 사진=KBS 제공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낀 순철과 달리 영란의 자식들이야말로 사람 노릇,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성조차 없었다. 엄마가 병실에 누워있는데도 두 아들은 순철에게 큰돈을 남겼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치매 걸린 어머니를 걱정하거나 ‘나를 책임질거냐, 보러 와줄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빈말로 답할 뿐이었다.

영란은 끝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 마음’을 대변했다. 자식들이 자신의 썩은 몸을 보는 게 싫어서 순철에게 그 돈을 다 주고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치매가 걸려 기억을 잃은 그를 찾아와 주는 이는 자식이 아닌 부모의 마음을 서로 이해하며 우정을 쌓아온 순철이었다.

영란이 요양 병원을 간 이후로도 순철과의 나들이는 계속됐다. 그와의 나들이는 오로지 부모도 자식도 아닌 사람 ‘금영란’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란은 송장처럼 누워만 지내다 순철을 쫓아다니면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순철과의 기억이 있을 때, 또 기억이 없을 때도 이어진 나들이에서 순철은 영란을 누군가의 엄마나 자식이 아닌 ‘금영란 씨’로 불러주었다.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는 자식이었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부모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식 혹은 부모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으로써 서로의 인생을 존중해주지 않고, 각자의 입장만 내세워 일방적인 책무만을 지우게 된다. ‘나들이’는 자식, 부모 역할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 결국 사람 노릇이 우선시 돼야 함을 일러준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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