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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께 참회..” 20억치 판 기획부동산 직원의 고백 [기획부동산의 덫]

A씨가 근무한 기획부동산에서 판매한 토지가 위치한 지역. 북한강 오른쪽에 있는 토지로 보전관리지역, 준보전산지, 자연보전권역 등에 해당한다. 산 속에 있는 땅이어서 개발 가능성이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네이버지도




“제가 왜 이렇게 어리석었나 모르겠어요.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서 피해보신 분들에게 참회하며..”

7년 여 전까지 강남 테헤란로의 한 기획부동산에서 일한 60대 A씨는 이같이 고백했다. 그는 본지가 지난달 24일부터 연재한 ‘기획부동산의 덫’ 기획기사를 보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A씨는 “기자님의 기사를 읽고 저를 대변한 것 같아 글을 남긴다”라고 했다. 본지는 이후 A씨와 수 차례 전화를 하며 그의 사연을 들었다.

이같은 기획부동산 피해자는 수십만명으로 추산된다. 경기도 땅 매수자만 매년 수만명씩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년 간은 ‘경매회사’라고 홍보하며 커다란 면적의 임야 지분을 쪼개 파는 기획부동산이 급성장했다. 다만 논·밭과 임야를 파는 중소 규모 기획부동산은 십수년째 꾸준히 영업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들 기획부동산의 기본적인 수법은 ‘다단계 취업 사기’이다. 이러한 생생한 피해 사례로 A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참고 기사 [Q&A]수십만 서민 등친 땅 지분 쪼개기···사기 수법과 대처법]

A씨는 2000년대 중반 친구의 소개로 기획부동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논과 밭, 임야 등을 분할하여 파는 곳이었다. 그곳은 개별 토지도 팔고 지분도 팔았다고 한다. A씨는 그곳에서 8년여간 일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 10여명에게 총 20억원어치의 땅을 팔았다고 한다. 자신도 3~4억원어치 땅을 샀다고 한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뒤에서야 개발 될 것이란 말이 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땅을 팔 때는 회사를 믿고 현장에 가보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가보니 개발이 안 될 것 같았다는 것이다. A씨는 “여기에 금방 호텔이 들어선다 뭐가 들어선다 했는데 제가 가봤을 땐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해당 기획부동산에서 판 땅은 10년~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발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A씨가 근무한 기획부동산에서 판 토지. 하나의 토지를 분할한 뒤 각각을 지분으로 쪼개판 것으로 보인다. /A씨 제공


◇사실대로는 말 못해…"날마다 죄스러워"

A씨에게는 땅을 산 사람들이 ‘언제쯤 팔 수 있냐’고 계속 연락 온다고 한다. A씨는 “사람들이 툭하면 전화와서 ‘니가 팔아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팔아달라고 한다”고 했다. 이는 당시 회사에서 ‘몇 년 기다려서 (매매) 안되면 회사에서 책임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미 없어진 상태라고 한다. 이에 매수자들은 A씨에게 ‘니가 팔아준다고 하지 않았냐.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냐’고 한다는 것. 이중에는 ‘십 년 전에 산 가격으로라도 팔아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땅 가격을 알아보면 아직도 당시에 산 가격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다만 A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은 사기임을 말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왜 안되냐, 된다고 해놓고, 뭐가 생긴다고 해놓고.”라고 하면 “미안하다 기다려라”라며 “이 정치라는 게, 정치계에 따라서 대통령에 따라서 늦어질 수도 있고 빨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고. 이는 앞서 기획부동산에서 알려준 대답이라고 한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에게도 쓸모 없는 땅을 샀다고 말 못한다고 한다. 본지 취재 결과 기획부동산 직원들은 대개 A씨처럼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으로 일관한다고 한다. 다만 연락이 두절된 직원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사기를 당했음을 깨닫고 잠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A씨는 자신에게 땅을 산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했다. A씨는 “저도 저지만 저로 인해서 저렇게 고통받고 어렵게 힘들게 살아가니까 그분들에게 날마다 죄스럽다”며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했다. 이어 “남편도 없이 힘들게 사는 분들이 집 담보로 대출 받고 땅 샀다가 집을 팔게 되었다”며 “투자금을 회수 못해 전세난에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하는 등으로 가정 불화가 발생하면서 아들 부부가 이혼하게 생겼다고 한다”고 했다. 또 “저 때문에 막 그런 게 너무너무...”라며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으면 해주겠는데...”고 했다. “다들 이걸로 인해서 너무 힘들게 산다”며 “제가 판 분들만도 그러는데 모르는 분들(기획부동산 피해자들)도 다 똑같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A씨가 근무한 기획부동산의 땅 매매 계약서. ‘개발이 진행될 경우 을은 협조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눈에 띈다. 기획부동산들은 마치 개발을 책임지고 진행해줄 것처럼 보이려 이같은 조항을 넣는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A씨 제공




◇“수당 받으려 죽기살기로…그게 독약”

A씨는 기획부동산에서 한 달에 120만원씩 받고 일했다고 한다. A씨는 “부동산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온갖 말로 교육을 시킨다”며 “본인이나 지인들한테 한 두평씩이라도 팔라고 닦달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들이 저기(땅을 판매) 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라며 “그러기 때문에 또 정에 이끌려서들 다 온다”고 했다.

회사는 실적을 따지며 판매를 압박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직원들로 하여금 땅을 먼저 ‘찜’하게 하는 ‘신청금’ 제도를 운영했으며 여러 개 팀을 운영하며 팀끼리 경쟁도 시켰다고 한다. A씨는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한 건은 해야 한다”며 “삼 개월에 한 건도 못하면 자른다”고 했다. 다만 삼 개월가량 무보수로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땅 하나를 팔면 다시 보수가 지급된다는 것.

직원들은 땅 판매 수당을 받으려 열심히 판다고 한다. 기획부동산은 직원이 땅을 팔면 통상 판매 가격의 10%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A씨는 “멍청하게 눈이 어두워서 죽기살기로 팔았다”며 “그게 독약인지를 몰랐다”고 했다. 이어 “그 돈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며 “거기다 보태서 더 투자하라 투자하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 중 땅을 안 사는 사람은 100명 중 3~4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들은 땅이 쓸모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A씨는 “좀 오래된, 약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외 직원들은 A씨처럼 임원진에게 속은 상태에서 땅을 팔고 또 자신도 산다고 것. 결국 기획부동산에서 받은 총 보수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기획부동산 케이비경매 계열의 부천 소재 지점에서 올린 판매직원 모집 광고./출처=벼룩시장


◇“테헤란로에 수천명…정부가 없애야”

강남 테헤란로는 기획부동산의 ‘메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근처 도로에는 양쪽으로 사무실이 쭉 있으며 근무 인원은 몇천명이 넘을 거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기획부동산 아줌마들이 없으면 테헤란로 음식점이 장사가 안되고 근처 사무실에 공실도 많을 거라고 그랬다”고 했다. 기획부동산들은 사무실 위치 변경도 잦다고 한다. A씨는 “2년마다 사무실을 바꾼다”며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가보면 밤 사이에 사무실도 바뀌어 있다”고 했다.

기획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획부동산은 ‘깔세’를 이용한다고 한다. 깔세는 보증금 없이 선불로 일정 금액을 미리 선납하고 임차하는 임대차 계약을 말한다. 깔세 업자가 건물주에게 임대한 사무실에 전화기 부스 등을 설치해 ‘TM(텔레마케팅) 사무실'로 꾸민 뒤 기획부동산에 재임대하는 형식이다. 이처럼 사무실 보증금 부담이 없기 때문에 기획부동산은 손쉽게 사무실을 차릴 수 있고 언제든 사무실을 이전할 수 있다.

A씨는 “이렇게 피해자가 많은데 정부에서는 왜 몰라라 하고 있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며 “정부에서 기획부동산을 막아주어야 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어 “10년이 넘는 지금도 고통과 시달림에 죽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며 “더 화가 나는 건 지금 이 시간에도 제가 있던 기획부동산은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저 한 사람의 외침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런지 모르겠다”면서도 “정부에서 기획부동산이란 걸 없애주셔야 된다”고 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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