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개연성이 가장 높은 사랑니는 물론 인체의 부속물 하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려면 최소 수백만 년은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그때가 오기도 전에 인간이 먼저 멸종할지도 모르니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다는 말이다. 게다가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퇴화기관들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내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꼬리뼈의 경우 상당수의 골반 근육을 붙들어주는 허브 구실을 한다. 또한 직립보행에 필수적인 기관이기도 하다. 때문에 미국 조지아주립대의 해부학자이자 생리학자인 케네스 살라딘 박사는 "꼬리뼈의 부재는 인간에게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조상들이 주로 초식을 했던 시기에 소화에 도움을 줬던 맹장도 마찬가지다. 미국 듀크대학 윌리엄 파커 박사와 랜달 볼링거 박사의 연구 결과, 맹장은 현재 소화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들을 지켜주는 일종의 안전가옥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일대학 진화생물학부 스티븐 스턴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은 건강한 면역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900~1,600종의 박테리아를 장내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질병으로부터 대대적 공격을 당하게 되면 맹장은 이들 박테리아가 안전하게 숨을 피난처 구실을 합니다." 새끼발가락은 어떨까. 인체의 균형 유지를 도와주는 것에 더해 달릴 때 발에 전해지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드물기는 해도 인체에는 정말로 쓸모없는 기관도 있다. 귀 뒤의 근육이 그중 하나다. 귀를 움찔거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이 근육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생명유지나 종족 보존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지만 진화는 이를 퇴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맹장처럼 초식생활을 했던 시절 식물을 효과적으로 씹는 데 유용했던 사랑니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 사랑니가 자연스럽게 자라날 정도로 큰 턱뼈를 가진 사람은 세계 인구의 단 5%에 불과하다. 이에 스턴스 교수는 "아마도 사랑니는 조금씩 퇴출이 진행 중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랑니보다 무용지물인 기관도 있다. 다름 아닌 남성의 젖꼭지다. 스턴스 교수는 "남성의 유두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면서도 "그렇지만 이 역시 절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일까. 인간은 남녀를 막론하고 배아 단계에서는 여성의 신체 발달 과정을 밟으며 임신 후 6주 이후에야 남성의 Y염색체가 발현되기 때문이다.
스턴스 교수의 말이다. "인간의 성장 과정상 두 개의 유두는 필수적입니다. 남성의 유두를 없애려고 하다가는 자칫 여성의 유두까지 사라지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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