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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숨겨진 특별한 에너지 氣

기(氣)는 고대로부터 동양의 문화적 근간으로 인식돼 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의학은 자연스럽게 기를 의술에 적용했으며 침구·부항·한약 등의 치료법을 통한 기의 조절을 핵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기를 이토록 중시했음에도 정작 그 실체는 명확히 정립되지 않고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는 과연 무엇이며 이는 의학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기(氣)'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기가 막히다', '기가 차다', '기를 꺾다' '기를 쓰다' 등 수 많은 예가 있다.

이를 살펴보면 기라는 것이 단순히 추상적인 심리나 철학적 개념이 아닌 어느 정도 객관적 신체 상태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히 정의된 바가 없다. 기의 어원에 대한 설명은 여러 곳에 소개되어 있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판단하기 힘든 상태다.

더구나 서양에서 도입된 현대의학에서는 기의 실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한층 신비적이고 비과학적인 개념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다만 근래 들어 한·중·일의학계를 중심으로 기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다소간의 변화가 일고 있다.

기(氣)는 에너지의 총칭

기는 여러 가지 학문의 개념이 혼재됨으로써 매우 다양한 성질을 포괄한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표준화연구본부 침구 경락연구센터의 이상훈 연구원은 먼저 그 용어 자체에서 의미를 짚는다.

그는 "음식을 뜻하는 '쌀미'에 수증기와 같은 기운을 뜻하는 '기운 기'가 합쳐져 기(氣)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다"며 "이는 기가 근본적으로 음식을 통해 얻어지는 에너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기는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총칭이다. 이를 생리적 차원으로 국한하면 인체를 구성하고 생명활동을 유지시키는 근원적인 물질 혹은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의미는 다양한 분화를 일으킨다. 한의학에서 흔히 쓰는 용어들, 가령 음식을 통해 흡수되는 기운을 말하는 곡기(穀氣), 몸을 호위하는 기운인 위기(衛氣), 몸을 영양하는 기운인 영기(營氣),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기운 인종기(宗氣) 등이 모두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기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 적 기, 음식물의 소화 및 흡수에 의한 후천적 기, 그리고 호흡으로 흡수된 청기(淸氣)로 나누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더해져 한 사람의 기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의 생명력으로 자연에서 얻은 후천의 생명력을 운영하여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가 쇠약해지면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고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기가 쇠약해졌다는 것은 곧 생명현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각종 생리작용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기의 쇠약이 소화기능 감퇴나 뇌 기능저하를 유발하면 기억력 감퇴, 판단력 저하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하락하면 각종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아울러 체온유지 능력 저하는 몸의 한열(寒熱) 변화를 심하게 하고 체수분 관리를 원활치 못하게 해 부종이나 다한증이 발병할 수도 있다.

자율신경계 등 생체제어시스템과 유관

그렇다면 기는 구체적으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 질문은 기가 인체의 어떤 부위와 특정한 관련이 있는 지에 관한 물음과 밀접한데 전문가들마다 다소 이견을 보인다. 그 이유는 이 같은 물음 자체가 현대의학의 해부학적 관점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쉬운 이해를 위해 굳이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여러 전문가들은 기가 인체의 자율신경계를 포함한 생체제어시스템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밝힌다. 이중 대뇌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고 인체 기능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경우 그 말단이 내장과 혈관에 분포돼 있어 소화, 호흡, 호르몬 분비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 연구원 역시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기는 호르몬이나 소화 및 호흡기 계통과 가장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인체 부위를 구체적으로 꼽자면 신장, 부신, 위, 장, 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기가 쇠하면 이들 기관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이 연구원은 "폐의 기가 쇠하면 천식, 비염 등 만성 호흡기질환에 노출될 수 있고 알레르기도 발생하기 쉽다"고 말했다. 참고로 한의학에서는 오장 중에서도 폐를 가장 중시한다. 심장의 명령을 오장육부에 전달하고 하늘의 기운과 접해 몸을 깨끗이 하면서 절기에 맞춰 장기를 조절한다고 전해지는 탓이다. 일각에서 인체의 모든 기가 폐에 모인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기가 쇠약해지는 근본 원인으로는 음식, 수면, 거 처를 비롯해 욕심, 스트레스 등 여러 물리적·정신적 요소가 두루 거론되고 있다.

경락·경혈 자극으로 회복

이처럼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인체의 질병 자체를 기의 부조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의학은 한 마디로 기를 다스려 병증을 치료하는 의술이라 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정(精)·기(氣)·신(神)·혈(血)로 분류하는데 기 가 그중 한 요소인 것. 당연한 말이겠지만 전통적 심신수련 법의 하나인 기공학에서는 네 요소 중기를 가장 중시한다.



특기할만한 점은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기는 치료 대상 이면서 동시에 오장육부를 다스리는 도구라는 사실이다. 이 연구원은 기치료의 원리에 대해 "오장육부의 불균형으로 기의 편차가 발생한 것을 자극을 통해 정상적 기의 흐름을 유도, 최종적으로 오장육부의 생리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의 자극은 주지하다시피 침술, 부항, 한약 등을 뜻한다. 정리하자면 도구(침구·부항·한약 등)로 인체에 자극을 가해 기의 변화를 이끌고, 이를 통해 생리적 항상성을 회복시키는 게 한의학의 의술이다. 이는 한의학의 근본 치료 원칙인 조기치신(調氣治神), 즉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다스려 인체 생리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물론 기를 설명할 때는 기가 모이거나 흐르는 지점인 경락, 경혈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험적으로 발견한 인체의 특정 감각신경 분포 부위라고 알려져 있다. 한의학자들은 오랜 경험을 거쳐 오장육부와 피부, 근육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들의 치료에 효과적인 지점들을 경락, 경혈로 명명한 것이다.

지금도 바로 이 지점에 침, 뜸, 지압 등의 물리적 자극을 가함으로써 각각에 관련된 오장육부를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치료효과가 실제로 기의 전달에 의 한 현상인지, 근육·근막·피부의 신경수용체 및 뇌신경계와의 복합적 반응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을 때 쇠했던 기가 다시 충만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있지 않을까. 한의학계에서는 시각과 목소리의 변화를 가장 흔한 예로 든다. 이 연구원은 "치료 후 환자들은 주로 눈앞이 밝아지는 현상을 경험한다"며 "이는 안구를 제어하는 섬세한 근육들이 균형을 되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목소리의 변화 역시 성대 및 구강의 미세한 제어, 호흡기관의 전체적 협력에 의해 이뤄지는 복잡한 반응"이라며 "목소리가 맑아지고 힘 있어 지는 것은 전신의 균형이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잘못된 기수련과 부작용

오늘날 기를 다스리는 곳은 병원뿐만이 아니다. 기에 대한 관심 증가에 힘입어 명상, 요가, 단전호흡, 기공 등의 분야에서도 기를 다루고 있다. 병원과 이들 사설 기수련 기관의 기치료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발견된다. 단적으로 말해 병원의 기치료는 신체의 생리·병리적 활동에 집중돼 있고 그 목적 또한 생리적 항상성을 회복에 있다.

하지만 명상, 요가에서의 기치료는 각 개인이 자신의 기를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필요에 따라 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전자가 생리적 항상성이 깨진 부분과 연관된 경락과 오장육부를 진단, 의료적 시술을 가한다면 후자는 체내의 나쁜 기운을 좋은 기운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잘 시술된 기치료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이보다 좋은 방법은 나쁜 기운이 머무르게 된 원인, 다시 말해 생리적 활동을 저하시킨 직접적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기수련을 통해 건강에 많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학계는 이를 기수련 부작용, 혹은 기공병이라 칭하며 잘못된 기수련에 의해 기의 부조화가 누적된 결과로 본다.

지난 2001년 한국한의학연구원이 발표한 '기의 의학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기공병의 주 증상은 계속되는 피로와 전신통, 두통, 항강증(項强症), 견비통(肩臂痛) 등이 있다. 이는 대부분 몸의 긴장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련에 임할 때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밖에도 여러 논문에서 기수련의 부작용과 원인, 증상이 보고돼 있다. 호흡 시 무리하게 하복부나 상단전에 힘을 가하면서 장에 부담을 주고 흉통을 일으킨 사례, 호흡 수련 중 과도하게 호흡을 참아 저산소증·환각·환청을 경험한 사례 등이 있다.



진정한 치유

이런 부작용들은 대개 기수련을 중단하면 회복된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복원력이 있어 흐트러진 기의 흐름을 정상화시켜 준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누적된 기의 불균형이 한계치를 초과하거나 부작용 반응이 유달리 강한 사람들은 정식 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전신에 불이 붙은 듯한 느낌의 주화(主火), 감정조절 능력을 상실해 환시·환각에 시달리는 입마(入魔)가 대표적 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오늘날 기 자체에 대한 연구 는 현실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의 실체적 존재에 대한 확인보다는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기치료, 침구 치료의 효과처럼 생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한 실정이다.

아울러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근거를 확보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과학화·표준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기를 100%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기의 실체와 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엄마 손이 약손'이라는 믿음이 유전자에 각인돼 있고 그 효과를 몸소 체험하기도 한 우리에게 기는 생명현상의 비밀을 함유하고 있는 신비하고 특별한 에너지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원은 이렇게 강조했다. "한의학에서는 다양한 치료법을 동원해 보다 깊은 차원 의 기의 편차까지 다스려 생리적 균형을 회복시킵니다. 하 지만 이 또한 마음의 편차를 다스리기에는 충분치 못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물질적 풍요가 증가할수록 심신의 질환도 증가하고 있죠. 몸만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몸과 마음의 중간고리인 기에까지 관심이 증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편차를 스스로 제어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진정한 치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 기를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론 '의료기공'

의료기공은 외부의 자극보다는 기를 직접 제어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심신수련법이다. 음식 및 외부 자극을 통해 기의 변화를 일으켜 생체의 자기조절능력을 회복시키는 일반 한의학에 수련이라는 콘셉트를 접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료기공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양생(養生)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의학의 근저가 되는 동의보감에서는 병이 나지 않도록 미리 막아 천수를 누린다는 고대의 양생 개념과 의학을 하나의 체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기공 역시 한의학의 한 영역으로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의사들이 관장하는 의료기공과 비의료기공은 구분해야 하지만 말이다.

대한의료기공학회 안훈모 부회장(무의도한방병원)은 "한의학이 기를 기르고 조절하는 조기(調氣)요법이라면 그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 기공"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의료기공은 기의 충전 속도를 가속시키는 의술이다. 이를 도입한 병원에서는 침구·부항·방제 등 일반적인 한의학 치료법에 행동치료, 즉 수련을 덧붙여 환자들을 치료한다.

기공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병의 치료에 쓰이는 내양공(內養功), 체질의 강화에 도움을 주는 강장공(强壯功), 그리고 근육과 관절을 운동시켜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보건공(保建功)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도인법(導引法)이라고도 불리는 보건공이다. 최근 유행하는 요가도 도인법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의료기공 수련을 하면 여러 가지 긍정적 생리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와 장의 운동이 활발해져서 소화가 촉진되고 호흡의 리듬과 박자를 익히게 돼 호흡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또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심신이 안정돼 숙면을 취할 수 있고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수련자들의 경험을 통해 알려진 사실로, 그 작용기전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 있다.

안 부회장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공을 관장하는 데 보다 힘써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공에 얽힌 미신적, 신비주의적, 비 과학적 요소가 배제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료기공은 1950년대 중국에서 처음 형성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신비주의적 요소로 인해 의학계의 배제를 받다가 지난 1995년에 이르러 정식으로 대한의료기공학회가 설립되면서 기를 활용한 임상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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