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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프쿠아 은행의 디자인 혁신 경영

[design] 정경원의 '디자인 이야기'


일반적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은 디자인과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금융업의 특성상 매우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디자인경영으로 승승장구하는 금융기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움프쿠아 은행이 바로 그런 경우다. 글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ㆍ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

서비스 개선으로 위기를 극복하라

미국 오리건 주 캐년빌에서 창업한 움프쿠아 은행은 규모는 비록 작아도 알찬 운영을 해왔다. 그러나 제1차 금융파동의 여파로 1990년대 들어 큰 위기를 맞았다. 지역 은행의 특성상, 비즈니스 규모를 키우거나 다변화 하기 어려운 데다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994년 은행 전문 컨설턴트인 레이 데이비스 Ray Davis를 CEO로 영입했다.

취임사에서 변화를 강조한 데이비스 행장은 서비스의 획기적인 개선을 위해 전 직원을 '리츠 칼튼 호텔 서비스 스쿨'에 파견했다. 기계 적인 매뉴얼에서 벗어나 고객과 마음으로 통하는 서비스 방법을 배우게 하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직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교육을 마친 직원들이 제공하는 고품질의 서비스 덕분에 거래와 예금고가 늘어나자 "서비스만 좋으면 판매는 저절로 된다" 는 인식이 확산 되었다. 움프쿠아 은행은 직원들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고객들의 직원 서비스 평가를 인센티브와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ROQReturn on Quality 제도까지 실시했다.

그러자 직원들 사이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테일 업체들을 벤치마킹하는 등 조직문화에 자발적인 혁신이 일어났다. 그들이 주도한 '아주 멋진 호텔 Pretty Cool hotel' 이라는 캠페인은 은행의 내middot;외부 디자인과 서비스를 최고급 호텔 수준으로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각각의 지점을 하나의 점포로 간주해 독창적으로 디자인하자는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움프쿠아 은행의 디자인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회장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 개설

사내에 디자인 부서가 없었던 움프쿠아 은행은 2001년 지바 디자인 Ziba Design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외부 전문가들을 적극 활용했다. 지바 디자인은 데이비드 호킨스 David Hawkins를 프로젝트 리더로 임명해 움프쿠아 은행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은행의 포지셔닝 분석을 위해 주요 은행들을 X축(이성적-감성적 축)과 Y축(내향적-외향적 축)에 배치해 움프쿠아 은행이 더욱더 감성적이고 외향적이 되어야 한다는 회사의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그림 1).

이를 근거로 그동안 사용해 왔던 회사의 로고를 업데이트했다. 움프쿠 아 국립공원 지역의 상징인 '침엽수'와 '계곡의 물' 을 시각화한 심벌과 은행의 이름을 조합한 새로운 로고는 손으로 그린 듯한 디자인으로 감성적인 느낌이 들도록 고안되었다(그림 2).

이어 움프쿠아는 구성원들이 지향해야 할 인재상으로 '탐험가 Explorer'와 '돌보는 사람 Caregiver' 을 설정했다. '지배자 Ruler' 나 '현명한 자 Sages'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다른 은행들과 확연히 다른 이미지 차별화 전략을 취했다. 비즈니스 콘셉트에서도 효율성만을 중시하며 ' 빠른 은행 Fast bank' 을 추구하는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느린 은행 Slow bank' 이라는 방향이 설정되었다. 다른 은행들이 제공하는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서비스에 식상한 고객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람 중심의 은행으로 거듭나자는 것이었다.

포틀랜드 지점의 이름을 그 지역 특산물인 진주를 따서 'The Pearl' 이라 짓고, '초록공간 Green space' 을 조성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건축 회사인 TVA는 100평 규모인 내부 인테리어를 호텔과 리테일 숍의 이미지를 절충해 디자인했다. 카페 스타일로 좌석을 배치하고 도서관처럼 서가를 설치해 고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대형 디스 플레이를 통해 은행 상품과 서비스를 광고해 고객들이 쉽게 관심을 갖도록 했다(그림 3, 4).

은행을 홍보하기 위한 작은 책자나 안내문, 신용카드, 기념품 등도 참신하고 세련되게 디자인됐다(그림 5). 특히 고객들이 은행에 들어서면 곧바로 "Sip-Read Surf Shop Bank" 라는 사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객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신문과 잡지를 읽으며, 브랜드 머그잔과 티셔츠 등을 구입하는 등 전혀 '은행답지 않은'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것을 쉽게 고객에게 알려주는 사인이었다.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엔 은행 객장을 동창회, 음악회, 교양강좌 등 지역 이벤트가 열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했다(그림 6). 기존 은행들과 달리 감성적이고 외향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은행 업무를 마친 고객들을 서둘러 내보내기보다 오래 머무르며 즐길 수 있도록 최적의 서비스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고객들이 데이비스 회장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 라인"을 매장마다 개설해 고객의 불편사항과 건의사항을 청취한 것도 움프쿠아 은행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비즈니스 성과와 시사점

'토탈 움프쿠아 은행의 경험 Total Umpqua Bank Experience' 이란 주제를 앞세운 디자인경영이 은행에 전격 도입된 이후 지점들의 예금고가 크게 늘어났다. 포틀랜드 지점은 개점 1주일 만에 100만 달러, 9개월 만에 5,000만 달러 예금 유치에 성공했다. 새 CEO가 영입됐던 1994년 2억 달러에도 못 미쳤던 영업수익이 10년 후인 2004년엔 50억 달러가 되는 등 외형이 크게 신장됐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가 선정하는 "초고속 성장 100대 기업" 중 3위를 차지한 것도 그만큼 빠르게 실적이 개선됐다는 것을 의 미했다. 움프쿠아는 디자인상도 다수 수상했다. 2003년 포틀랜드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환경부문 은상, 2004년 미국 우수산업디자인상 IDEA 공모전에서 '디자인 탐구' 부문 금상 등을 받으며 회사의 디자인 혁신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움프쿠아 은행의 변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요 시사점으론 먼저 CEO 의 변화 의지와 실행력을 꼽을 수 있다. 은행의 구태의연한 서비스 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스스로 모범사례 벤치마킹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신속성과 자동화에만 집착하던 다른 금융계 기업들과는 달리 '느린 은행' 을 구현하기 위해 서비스 디자인, 경험 디자인, 실내환경 디자인 등을 융합시켰다는 것이다. 토털 디자인을 적용해 고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전달했다는 점이 움프쿠아 은행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셋째, 지바 디자인이나 TVA 같이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춘 외부 디자인회사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여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으로 최대한 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움프쿠아 은행의 디자인경영 성과는 대단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하는 게 날마다 즐겁고 흥분된다" 고 말할 만큼 높은 동기유발이 이루어졌다. 2006년 이래 줄곧 포춘이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에 오를 정도로 좋은 근무환경을 뽐내기도 했다. 특히 미국발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 매출이 83억 달러에 달하는 등 견조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정경원 본부장은…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을 지낸 바 있는 정경원 본부장은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와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장(부시장)을 겸임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서울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 시라큐스 대학과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각각 디자인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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